2012년 2월 24일 금요일

강용석은 패배한 것일까, 언론은 '공범'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2-23일 기사 '강용석은 패배한 것일까, 언론은 '공범''을 퍼왔습니다.
단정한 동아에 확신 더한 뉴라이트 매체까지 반성은 없었다

강용석 의원이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하지만 그가 제기했던 의혹의 정도와 의혹을 확대재생산한 언론의 작태를 보고 있노라면 의원직 사퇴만으로 이번 사태를 갈무리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실제, 임기가 채 2달도 남지 않은 국회의원직 사퇴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국회의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본회의도 열리지 않을텐데, 실제 사퇴 처리가 될지도 미지수다.
23일자 언론들은 기본적으로 ‘강 의원이 패배했다’는 프레임 위에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무분별한 폭로가 ‘사실’에 무릎을 꿇었다는 얘기다. 이 프레임은 위험하다. 자칫, 강 의원이 대단한 진검승부라도 벌이다가 물러난 것 같은 메시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강 의원의 노림수이기도 했다.
물론, 몇몇 언론들은 이번 사건의 책임이 강 의원의 의혹 제기를 무분별하게 받아쓴 언론에게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분명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강 의원이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 몇 시간 전인 22일 아침, 언론의 논조는 많이 달랐다. 조중동만 보더라도 중앙이 아예 관련 건을 다루지 않았다. 중앙이 강용석 의원의 발언을 아예 무시했던 배경에는 아마도 강 의원이 삼성 일가의 문제를 폭로했던 전력도 작용했을 것이다. 조선이 상대적으로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데 반해 동아의 경우 매우 공세적이고 단정적인 태도로 박 시장을 몰아세웠다.


▲ 22일자 동아일보의 1면, 3면 캡쳐. 재검을 불과 앞둔 시간까지 동아일보는 박 시장 아들의 MRI가 본인의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던지기 위해 무진장 애쓰는 모습이었다.

22일자 동아일보는 1면 헤드라인으로 강 의원이 제기한 의혹을 다뤘다. 진단서를 발급한 의사를 찾아 인터뷰 한 동아는 진단서 발급한 의사의 코멘트인 “그 체형에서 나오기 힘든 MRI"를 굵은 글씨 제목으로 뽑았다. 동아가 주목했던 건 ‘체형’이었는데, 이는 불과 몇 시간 뒤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23일자 언론들은 강 의원이 의혹을 제기하며 가장 기초적인 사실관계인 박 시장 아들의 몸무게조차 확인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는데, 이 비판은 고스란히 동아에게 돌려져야 할 비판이기도 하다.
22일 동아의 기사는 3면으로 이어진다. 단정적인 표현이 계속 이어진다. 박 시장 아들의 대학 졸업 사진까지 동원 돼, “그 체형에서 나오기 힘든 MRI"라는 문구가 여러 차례 반복된다. 동아의 기자는 진단서 발급 의사에게 집요하게 ”당시 체형은 안 봤느냐“고 물었고 결국 ”디스크만 판단했다“는 대답을 이끌어 냈다. 다른 건 제쳐두고 ‘디스크만 판단했다’는 내용은 기사를 읽는 이로 하여금 ‘판정에 뭔가 석연치가 않은 점이 있다’는 확신을 주기에 무리가 없었다.
1면과 3면에 걸쳐 강 의원이 제기한 의혹을 확정적으로 다루고, 사건을 몰아갔던 동아는 그러나 채 하루도 되지 않아 펼쳐진 정반대의 상황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강 의원이 박 시장 아들의 인격을 살해한 것이라면, 22일자 동아의 보도는 뭐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방조자 아님 공범 혹은 교사?


▲ 보수매체를 표방하는 '빅뉴스'의 변희재 같은 이는 아예 박 시장 아들의 병역비리를 단정하고, 대놓고 강용석 의원을 추앙하는 분석 기사를 쓰기도 했다

동아 외에도 ‘뉴데일리’와 ‘빅뉴스’ 같은 보수를 표방하는 인터넷 매체들 역시 강 의원이 제기한 의혹을 받아쓰는데 열과 성을 다했다. 네이버 뉴스캐스트에 포함되어 있기도 한 ‘뉴데일리’의 기사는 여과 없이 포털을 타고 확대됐다. ‘빅뉴스’의 변희재 기자 같은 이는 21일 오전, 아예 결과를 확신하며 수도권 총선이 “'강용석 VS 박원순'구도로 급속 재편”될 것이란 분석기사까지 내놓았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다. 의지와 목적을 갖고 기사를 써댄 언론들 외에 다른 매체들까지 관련 보도에 본격 합류한 시점에 등장한 의료 단체가 있다. 전국의사총연합이라고 불리는 전문단체는 ‘박원순 시장 아들의 MRI 필름 주인공이 박 시장 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의학적 소견을 발표해 논란에 불을 당겼다. 의사협회도 아니고 매우 낯 설은 단체인데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젊은 의사 위주로 회원 6000명 규모의 단체’라고 소개했다. 조선이 관련 보도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시점 역시 전의총이 입장을 제출한 즈음이다. 
‘나영이 주치의’로 알려진 한석주 교수에 이어 의사 단체까지 MRI의 문제를 지적하자 어느 정도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전의총의 노환규 대표는 의료계의 대표적인 ‘정치 의사’로 불리는 인물이다. 당연히 보수 언론에서 그의 성향을 모를리 없었다. 역사교과서를 왜곡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대표적 뉴라이트 단체 ‘교과서 포럼’의 회원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얼마 전에는 전국의사협회 총회에서 폭력을 행사해 의협 집행부에 의해 검찰에 고발됐던 이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즉, 성명도 공식 논평도 아닌 ‘문건’으로 알려진 전의총의 입장은 전문가 집단의 공식적인 판단이 아니라 박 시장을 공격하지 위한 정치적 행위일 가능성이 다분했다. 전문가적 판단을 하기 위해선 MRI를 해독하는 등 기초적 정보가 필요했을 텐데, 전의총의 그 누구도 박 시장 아들의 몸무게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결국, 박 시장 아들에 대한 인격살인에 적극 부역하거나 소극적이나마 동참했던 언론의 행태는 잘못된 정보를 사실 확인 없이, 편향된 정보원의 해석을 정치적 무기로 활용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성은 동아도, 조선도 없다. 강용석의 의혹 제기를 낮은 시청률을 극복할 '뉴스 마케팅’ 재료로 적극 활용했던 종편 역시 강 의원이 패배했단 사실에 호들갑을 떨뿐, 이 예견된 패배에 자신들이 어떤 기여와 역할을 했는지는 전혀 아랑곳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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