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3일 목요일

[사설] 이 대통령, 임기말을 ‘정쟁’으로 지새우겠다는 건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2-22일자 사설 '[사설] 이 대통령, 임기말을 ‘정쟁’으로 지새우겠다는 건가'를 퍼왔습니다.
임기를 1년 남긴 대통령에게 거는 국민의 기대는 매우 소박하다. 지난 4년을 겸허히 성찰해 사과할 일은 사과하고,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고, 그동안 벌여놓은 일을 원만히 마무리함과 동시에 총선·대선 등 각종 선거를 중립적으로 공정히 관리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제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4주년 특별기자회견은 이런 바람을 철저히 외면했다. 그는 성찰할 대목에 자화자찬했고, 사과할 일은 변명으로 피해 갔으며, 정치적 중립 의지를 다져야 할 시점에 정쟁의 한복판에 불꽃을 지고 뛰어들었다.
친인척·측근 비리 의혹에 대해 이 대통령은 ‘사과’나 ‘사죄’ 등의 표현을 하지 않았다. 고작 “가슴이 꽉 막힌다”느니 “국민께 할 말이 없다”는 정도였다. 이 대통령의 어법으로는 이것이 사과라고 청와대 쪽은 설명하니 국민으로서는 엎드려 절 받기다. 더욱이 내곡동 사저 문제에 대해서는 진실 왜곡까지 했다. 이 대통령은 “제가 챙기지 못해 이런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명했으나 사실과 다른 발뺌이다. 이 대통령이 내곡동 터를 방문하고 구입을 승인했다는 것은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의 증언에서도 확인된 터다. 내곡동 사저는 이 대통령이 ‘챙기지 못해’ 일어난 문제가 아니라 ‘너무 챙겼기’ 때문에 빚어진 사건이다.
이 대통령의 회견을 관통하는 또다른 핵심 단어는 ‘오해’였다. 편중 인사와 회전문 인사에 대한 비판에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해야 효과적”이라느니 “특별히 의도적으로 한 게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 정부의 친재벌적 정책에 대한 비판에는 “반기업 정서는 나쁘다”는 엉뚱한 말까지 했다. 이 대통령은 마지못해 ‘국민의 눈에 그렇게 비치면 고치겠다’고 말했으나, 잘못에 대한 시인 자체가 없으니 임기말까지 이대로 가다가 끝내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이 대통령이 회견에서 가장 역점을 둔 대목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제주 해군기지 등에 대한 야당 지도자들의 과거 발언록을 끄집어내 공격한 것이다. 특별회견의 방점도 사실상 여기에 찍혀 있다. 이는 형식적으로는 정책의 정당성 옹호지만 실질적 내용은 이 대통령의 정치적 생존술이다. 대야 공격의 선봉장을 자처함으로써 여당 내에서 실추된 위상을 회복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대야 공세 지점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물론 이 대통령이 야당에 대해 공격을 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다. 야당 지도자들이 과거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이 말꼬리 잡기 식의 치졸한 정쟁에 몰두하는 것이 옳은지는 회의적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제만 해도 야당 지도자 발언록을 뒤지는 일은 새누리당 당직자들에게 맡기고 대통령이라면 협정의 내용을 뜯어보고 국익을 하나라도 더 챙기려 힘쓰는 것이 도리다.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이 각별히 요청되는 시기에 정반대 행보로 정국을 더욱 혼탁하게 만드는 이 대통령의 모습이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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