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7일 월요일

문재인이 불쌍하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2-27일자 기사 '문재인이 불쌍하다'를 퍼왔습니다.
[정희준의 '어퍼컷'] 지겹다, 386!

24일 민주통합당의 2차 공천자 발표를 본 나의 반응은 한 마디로 "에라이~"였다. 54명의 명단을 보면 486(386), 친노, 전·현직 의원들이다. 여기서 제외되는인물이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 이용희 의원의 지역구를 물려받는 '(아버지 잘 만난) 정치 신인' 이재한 후보 정도가 아닐까 싶다. 두 마디로 '기득권 나눠먹기'다.

30개 선거구 가운데 27곳에서 현역 의원이 다시 공천을 받았으니 재공천율이 무려 90퍼센트다. 실질적으로 정치 신인은 단 한 명도 없다. 1차 발표 때도 정치 신인은 찾기 힘들었고 당선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에는 전무했다.

그동안 민주통합당은 공천의 잣대로 '정체성'을 꼽았다. 그럼에도 세습 공천의 주인공인 이재한 후보뿐 아니라 자유선진당을 탈당해 (그냥 온 것도 아니고) '돌아온' 철새 정치인 이상민 의원도 공천을 거머쥐었다. 그는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공천에서 배제되자 자유선진당의 품에 안긴 귀순용사인데 이번에 '역귀순'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 한나라당과 무소속을 오간 바 있는 송훈석 의원도 경선의 기회를 잡았다.

심지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인 임종석 사무총장과 제일저축은행 금품 수수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화영 전 의원도 단수 후보로 확정됐다. 이제 또 다른 철새 김창수 의원, '청목회' 사건의 최규식 의원, 교비 횡령 혐의의 강성종 의원이 공천 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이쯤 되면 '×맨 김진표'가 낙천하면 이상할 정도다.


새누리당보다도 못한 민주통합당?

적어도 수도권에서 2040은 현재의 야권에 압도적 지지를 보낸다는 사실이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증명이 됐다. 7대3 아니면 8대2다. 이렇게 젊은 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야권이지만 특히 민주통합당은 거꾸로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니, 오히려 한나라당보다도 더 늙은 정당이 아닌가 싶다. 민주통합당이 노쇠한 정당이라는 사실은 이번 총선 준비와 공천과정이 완전무결하게 증명하고 있다. 특히 민주통합당이 기득권을 절대 놓지 않는 수구 세력이라는 것도 드러났다.

과거의 한나라당과 그 전신인 민자당(민주자유당), 신한국당은 '공천 학살'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노쇠함과 수구 이미지를 타개하기 위함이겠지만 '젊은 피'를 수혈했고 이들에게 당선 가능성이 큰 곳을 나눠줬다. 특히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민중당 활동을 하며 제적되고 구속됐던 인물들, 즉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최전선에 섰던 '빨갱이 같은' 인물들까지도 끌어들였다. 이렇게 해서 이재오, 김문수 같은 이들을 지금의 '대선 주자급'으로 키웠고 지금은 진보 진영으로 귀순한 김부겸, 김영춘 등도 중견 정치인으로 키웠다.

지겹다 386

한나라당은 노쇠한 정당이 맞지만 30대의 젊은 정치인들을 찾았고 또 키웠다.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노력은 꾸준했다. 16대엔 남경필, 원희룡이 있고 17대엔 김세연과 김희정을 공천하는 파격을 보였고 18대엔 홍정욱, 김동성, 강용석을 배출했다. 지금은 문대성 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동아대학교 교수)가 거론되고 특히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는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의 맞상대로 무려 스물일곱 살의 손수조 후보를 아예 당 차원에서 띄워주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경우 16대와 17대 때 이른바 386 세대를 끌어들인 뒤 후속 세대 배출이 거의 막혀버렸다. 작년 10·26 보궐 선거 이후 민주(통합)당은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의 점점 늙어가는 모습엔 개의치 않고 있다. 특히 386 정치인들은 지금 486이 되어 있음에도 자신들을 이을 후배들을 전혀 키우지 않았다. 그렇다. 아직 40대로 팔팔한 자신들이 오래 정치판에 남아있기 위해서라도 더 팔팔한 경쟁자를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586'이 될 때까지 해먹으려고 하나


▲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16대 때 국회에 진출한 386은 지금 486이 되었고 이들 거의 대부분은 곧 586이 된다. 그러나 497(40대, 90년대 학번, 70년대 출생)도 보이지 않고 308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다. 60년대 운동권이 후배들을 키워 70년대 운동권을 만들었고 그 70년대 운동권이 또 80년대 운동권을 배출해 이들을 스타로 만들었지만 한국의 진보 세력은 80년대 인물들에서 멈춰버렸다. 대학교 운동권도 명맥이 끊겼다.문제는 앞으로도 이들 486 세력이 진보의 아이콘인 양 계속 스스로를 내세우며 줄기차게 해먹을 태세라는 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문제가 중앙의 정치무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을 제외하면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는 부산의 진보 진영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얼마나 늙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젊은 세대와 불통 정도가 아니고 2030과는 완전히 따로 노는 집단이다. 나이 50 먹은 사람이 막내다. 그럼에도 젊은 세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작년 말부터 문재인 이사장이 거대한 바람을 일으키며 등장하자 부산의 진보 세력이 모이기 시작했고 세 규합에 나섰다. 그런데 그 세력은 1980년을 전후해 대학을 간 부산대 운동권 출신들과 그 주변 사람들에 머무른다. 요즘 말로 '1촌'을 넘어서지 못한다. 당연히 절반이 '흰머리'들이다. 한 지인이 문재인 이사장과 그들의 모임에 갔다 온 후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들 틈에 문재인 이사장이 앉아있는 모습이 참 안 돼 보이데…."

개혁과 쇄신에 있어서 새누리당보다도 못한 민주통합당을 보며 진보의 미래가 참 암담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번에 공천을 독식한 486들, 나중에 586이 되면 달라질까. 이제 후배도 좀 키우고 나눠먹는 습관도 길렀으면 한다.



/정희준 동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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