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4일 금요일

[사설]가계부채 900조원, 약발 안 듣는 억제대책


이글은 경향신문 2012-02-23일자 사설 '[사설]가계부채 900조원, 약발 안 듣는 억제대책'을 퍼왔습니다.
한국은행이 그제 발표한 지난해 4·4분기 가계부채가 912조9000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900조원을 넘어섰다. 4·4분기 중에만 늘어난 부채가 22조원으로 1년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고, 연간으로는 66조원이 늘어 전년 증가액(67조원)과 거의 같은 수준을 보였다.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으로까지 불리게 된 것이 어제오늘이 아니건만 부채 증가 속도가 여전히 가파르게 유지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가계부채 가운데 판매신용을 뺀 가계대출은 858조1000억원으로 4·4분기 중 19조원이 증가했는데 은행에서 나간 대출도 전분기(5조4000억원)보다 많은 6조2000억원이나 증가했지만 은행 이외의 대출이 두드러진 증가세를 나타냈다. 저축은행·신협 등 비은행 예금기관의 대출 증가액이 전분기보다 46% 많았고, 보험·증권 등 기타 금융기관 대출 증가액 역시 전분기 증가액의 2배에 이르렀다. 은행 대출창구가 조여지자 다른 금융기관들의 대출이 크게 증가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와 규모가 1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른 나라들이 부채를 성공적으로 줄여나가고 있는 것과 너무 대조적인 모습이다.

소득이 늘지 않아 대출자들의 상환능력이 점점 떨어짐에 따라 은행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 2금융권에서 빚을 내는 악순환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실제로 얼마 전 발표된 한은의 가계금융조사 결과에서 만기 일시상환 방식으로 돈을 빌린 대출자의 3분의 1가량이 만기 상환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기 집을 갖고 있는 가구의 경우 지난해 소득보다 부채증가 속도가 빨라 가처분 소득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이 172.3%로 전년(166.9%)보다 확대됐다.

정부는 지난해 6월 가계부채의 적정 증가를 위해 가계대출 관리를 강화하고 분할상환 대출을 활성화하는 등의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최근의 가계부채 증가 속도로 보면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계부채의 근본적 해결책은 일자리와 소득을 늘려 상환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에 이르기까지 일단 부채 증가속도를 제어하는 것이 중요한데 정부가 너무 안이하게 보고 사실상 손놓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정부는 과거 은행들의 대출 경쟁을 방치하고 저금리를 지나치게 오래 유지해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킨 전력이 있다. 대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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