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9일 수요일

[사설]저급한 한·미 FTA 인식 드러낸 ‘청와대 편지’

이글은 경향신문 2011-110-08일자 사설 '[사설]저급한 한·미 FTA 인식 드러낸 ‘청와대 편지’'을 퍼왔습니다.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을 촉구하느라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보낸 편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김 수석은 편지에서 한·미 FTA 반대는 사실상 ‘반미(反美)’이고, FTA 체결은 개방 시대에 불가피한 만큼 여당은 강행처리를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편지는 정무수석의 이름을 빌렸지만 대통령과 청와대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뜯어보면 한·미 FTA에 대한 청와대의 인식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 싶어 개탄스럽다.

첫째, 한·미 FTA 반대가 반미 선동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주장은 표현의 저급성을 떠나 불순한 논리적 비약이다. FTA 찬·반 세력을 자로 잰 듯 나눌 수는 없으나 대체로 이익을 보는 거대 다국적 기업이 찬성하고, 삶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농어민과 노동자, 서민이 반대한다는 사실은 이 정권도 인정하는 바다. 여권이 뒤늦게나마 피해계층 대책 마련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촛불시위 때도 그랬듯이 생존권 차원의 FTA 반대를 반미·친북 등 색깔론으로 몰아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더욱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 자명하다. 둘째, 한·미 FTA 체결이 개방이라는 논리도 구태다. 청와대는 ‘김일성’과 ‘박정희’라는 이름까지 거명하면서 박정희의 개방 덕으로 남측이 남북 대결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는 물론이고 2008년 국제 금융위기도 제한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과도한 개방과 탐욕스러운 미국형 자본의 탓으로 판정난 지 오래다. 위기 극복에 나선 각국이 국제공조 노력과 더불어 시장에 빼앗긴 국가권력을 되찾으려고 하는 건 뭘 의미하는가. 셋째, 강행처리 촉구는 가뜩이나 위기를 맞고 있는 정당정치를 더욱 위태롭게 만든다. 오죽했으면 여당의 원내대표가 “의회주의의 공격으로 비칠 수 있는 행동을 조심하라”고 했겠는가.

어떤 현상에 대한 저급한 인식은 저급한 대응을 부를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본격적 토론의 무대에 오른 한·미 FTA 추가 논의를 중단하고, 강행처리할 것을 주문하는 것도 그런 이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한·미 FTA에 대한 청와대의 근본적 시각 교정이 없는 한 현재의 여야 대치는 더욱 심화되고 궁극적으론 파국을 향해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국가 운영을 책임진 청와대라면 한 정권의 가시적 성과보다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갖춰야 한다. 한·미 FTA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는데도 진지하게 여론을 수렴할 생각은 하지 않고 흑백논리만 앞세워 FTA 비준만 밀어붙이려 든다면 정권의 협량성만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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