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9일 화요일

[사설]‘서장 폭행’이 반 FTA 강경진압 빌미 될 수 없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1-11-28일자 사설 '[사설]‘서장 폭행’이 반 FTA 강경진압 빌미 될 수 없다'를 퍼왔습니다.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이 지난 26일 밤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대에 둘러싸여 폭행당했다며 경찰이 강경진압 태세로 돌아섰다. 그러자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은 “명백한 야권세력의 폭거이자 공권력에 대한 테러”로 규정하고 시위대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도 어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제복을 입은 경찰관에 대한 폭력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말하며 강경진압 방침을 두둔했다. 시위 현장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사건을 두고 무슨 엄청난 사태가 일어난 것처럼 주장하며 강경대응을 외치는 풍경은 ‘공식’처럼 익히 보아왔던 바다.

우리는 결코 폭력을 미화하거나 두둔할 생각이 없다. 박 서장에 대한 폭행이 있었다면 사실을 확인하여 당사자를 처벌하면 된다. 그러나 폭행 사건이 일어난 배경은 도외시한 채 공권력이 무시당한 것만 내세우며 강경진압에 나서는 것은 전형적인 논점 흐리기식 대응이라는 비판을 면할 길 없다. 우발적인 폭력 현장을 정치 공세와 여론몰이를 통해 부각시켜 사안의 본질인 FTA 반대 운동을 묻으려는 발상임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이다. 일부 언론은 연초 미국 경찰이 워싱턴 DC의 빈센트 그레이 시장이 연좌데모를 하자 곧바로 수갑을 채운 것을 거론하며 공권력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양국 간 정치적·사회적 배경이 다른 것을 무시한 기계적인 대입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강경진압의 구실로 삼는 박 서장에 대한 폭행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점이다. 폭행의 당사자로 지목돼 긴급체포된 시위참가자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실제 화면상으로는 시위대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박 서장이 직접 폭행당하는 장면이 확인되지 않는다. 종로서가 폭행의 증거라고 언론사에 제시한 사진의 박 서장 머리 주변의 손은 종로서 형사들의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박 서장이 시위대를 비집고 들어간 배경도 의문이다. 아무리 공무집행이라 해도 경찰복 차림의 종로서장이 흥분한 시위대 사이에 들어간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위험한 상황임을 알면서 일부러 들어간 것이라면 매우 부적절하고 무모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공권력은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시위에 대한 권리 역시 보장돼야 한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생명이다. 경찰서장이 폭행당했다고 국민의 이익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FTA 날치기 통과에 항의하는 시위 자체를 막아서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 우리의 시위 문화도 개선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 극히 우발적인 사건을 빌미로 경찰이 강경대응하는 것은 오히려 시위대를 자극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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