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8일 월요일

[사설]최은배 판사의 ‘한·미 FTA 비판’은 정당하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1-11-27일자 사설 '[사설]최은배 판사의 ‘한·미 FTA 비판’은 정당하다'를 퍼왔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공무원은 정치적 사안에 대해 철저히 입을 닫아야 한다’거나 ‘공무원은 집권세력의 정책이나 정치적 지향에 반대해서는 안된다’는 규범으로 통용된다. 이를테면 공무원에게 정치적 침묵 또는 집권자에 대한 복종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국가 최상위 법규범인 헌법은 이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7조 2항이 바로 그것이다. 즉 국가권력이나 집권세력이 정치적인 이유로 공무원에게 신분상의 불이익을 줘서는 안된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국가공무원법 65조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조항도 특정정당을 위한 투표행위의 권유 등 ‘당직자’로서의 활동을 금지하고 있을 뿐 표현의 자유와 같은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은 제한하지 않고 있다.

인천지법 최은배 부장판사가 페이스북에 ‘한·미 FTA 비준안 날치기’를 비판한 글을 올린 것을 두고 수구언론들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이라고 비난하면서 ‘반미주의자’라는 색깔론적 공세까지 펼치고 있는 모양이다. 이들의 공격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양승태 대법원장이 격노했다’는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대법원은 최 판사의 글의 적정성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공직자윤리위원회를 열기로 했다고 한다. 수구언론의 트집과 대법원의 경솔한 처사는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조항을 오독(誤讀)하고 있거나,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을 억누르기 위한 행태라고밖에 볼 수 없다.

최 판사는 국회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강행처리한 직후 페이스북에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서민과 나라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22일을 잊지 않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의 어디를 살펴보더라도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관련한 헌법과 법률의 조항을 위반했는지 알 수가 없다. 헌법·법률을 떠나 시민적 상식으로 보더라도 국가 공동체의 구성원 다수가 공감하고 있는 내용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수구언론들은 “뼛속까지 친미” 등의 표현을 문제삼고 있다지만 이 또한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이 주한 미국대사에게 자랑삼아 한 발언이 아닌가. 대통령의 형이 하면 괜찮고, 판사가 하면 안된다는 말인가. 특히 최 판사의 글이 지인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페이스북이라는 사적 공간에서의 견해임을 감안하면 더욱 문제삼을 것이 못된다. 설령 그것이 공적 공간에서의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공직자 이전에 시민으로서의 정당한 의사 표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최 판사의 글에 저급한 색깔론을 입히거나 징계 운운하는 단세포적 차원의 논의를 뛰어넘어, 이 글의 근본 취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공무원은 공직자인 동시에 시민이며, 공동체의 가치와 지향을 위해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민주주의가 작동하게끔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판사 역시 이러한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사회적 현상이나 쟁점에 대해 침묵하면서 법전만 들추기보다는 국가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발언해야 하며, 발언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미 FTA에 찬성하는 견해 또한 같은 차원에서 존중받아야 한다. 최 판사의 한·미 FTA 비판은 정당하다. 대법원은 최 판사의 윤리위 회부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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