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9일 토요일

‘이태원 방화’ 미군 수사, 이번에도 SOFA가 제동 걸었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1-11-19일자 기사 '‘이태원 방화’ 미군 수사, 이번에도 SOFA가 제동 걸었다'를  퍼왔습니다.

ⓒ민중의소리 유동수 디자인실장 불평등 협정 '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한미주둔군지위협정)'

주한미군의 여고생 성폭행 사건으로 들끓었던 비난 여론을 비웃듯 한 달 만에 또 다른 미군이 방화를 저질렀다. 하지만 경찰은 또다시 구속은커녕 신병을 미 헌병대에 인계했다.

미군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지만 수사기관인 경찰은 제대로 된 수사를 펼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다시 미군 범죄의 재발로 악순환되고 있다. 이 때문에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에 대한 요구가 다시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성남 K16부대소속 M(21)일병은 지난 15일 오전 2시30분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한복판에 있는 T주점에서 술을 먹은 뒤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T주점을 비롯한 주점 4개소를 방화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한미SOFA 규정에 따라 M일병의 인적사항만 확인한 채 미 헌병대에 인계했다. 기소 이전에는 신병 인도를 받지 못하고 현행범이 아니면 구금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관리의 입회 없이는 조사를 해도 법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초동수사를 하는 것 자체에 무리가 따른다. 

게다가 M일병은 최근 잇따라 발생한 성폭행 사건 등으로 미군의 야간 통행이 금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긴 채 술을 마시며 돌아다니다가 범죄를 저질러 한·미간 협정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미SOFA는 주한미군의 법적인 지위를 규정한 협정으로, 국제법과 국제관례상 외국군대는 주둔하는 나라의 법률질서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이 협정에 따르면 ‘특수한 임무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두 나라 법률의 범위 내에서 일정한 특권과 면제가 보장된다. 이에 미군 범죄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중대범죄' 사안에도 SOFA 때문에 구속 수사 불가능

한·미SOFA를 적용하면 중대한 미군범죄가 발생하더라도 한국 수사당국의 구속 수사가 불가능한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2001년 SOFA가 개정되면서 12개 중대 범죄에 한해 기소와 동시에 신병인도가 가능하게 됐지만, 여러 독소조항들로 인해 기소 시 신병 인도를 하는 경우는 극히 제한돼있다.

SOFA 합의의사록 제22조 제5항에는 12대 중대범죄로 방화를 비롯해 살인, 강간, 불법 마약거래, 흉기 강도, 폭행치사 등을 나열하고 있지만 중대범죄로 나누는 기준은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12대 중대 범죄 중 하나인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사망 초래’의 경우에도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을 초래하는 것은 중대범죄에 포함되지 않는다. 즉 피해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중대범죄일지라도 제대로 수사를 진행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군이 재판을 거부하면 한국은 추가기소도 못하고 속수무책

또한 우리나라 당국이 미군 피의자에 대해 재판 전 구속을 요청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미군은 ‘이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는 의무만 있을 뿐 강제력은 없다. 만약 경찰이 방화를 저지른 미군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하더라도 미군 측이 거절하면 구속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지난 동두천 성폭행 사건일 경우 언론을 통해 여론이 들끓어 오르면서 성폭행을 한 미군은 구속 기소됐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여론의 압력으로 인한 조치이다.

미군범죄, SOFA 때문에 재판 이후에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협정 제22조 제9항에는 '합중국 군대의 위신과 합당하는 조건이 아니면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미국의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재판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재판이 끝난 후 추가적으로 범죄사실이 밝혀지더라도 다시 재판을 진행할 수가 없다. 협정에 따르면 우리나라 검찰은 피고인이 무죄석방 판결을 받더라도 상소조차 하지 못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재판이 끝난 후 추가적인 증거가 나와도 다시 기소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1967년 경기도 평택군에서 발생한 미군의 방화 및 폭력 사건에 경우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는 이유로 ‘어이없게’ 무죄판결을 내려진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검찰은 당연히 항소해야 했음에도 불구, 위와 같은 조항 때문에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 

복역 중인 미군도 미국이 인도요청 할 수 있어

미군이 한국법원에서 징역형을 받고 교도소에 복역하게 되더라도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SOFA에 의하면 범죄를 저지른 미군이 복역 중이라도 미군 당국이 구금인도를 요청하면 형기 만료 전이라도 한국은 '호의적 고려'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가 재판이 끝난 범죄인을 인도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이 같은 경우 미군 당국이 인도받은 미군을 남은 형기까지 계속 구금하지 않고 석방할 가능성이 많은데다, 설사 미군 측에서 구금중이라 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이를 감시할 방법조차 없게 된다. 

한편 정부는 오는 23일 열리는 한·미SOFA 합동위원회에서 한국 수사 당국이 기소 전에 미군 피의자에 대한 구금인도 요청을 할 경우 미군이 이를 호의적으로 고려하도록 하는 내용의 합의권고문 작성을 미군 쪽에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 측은 SOFA 개정이 아닌 합의권고문 개선으론 강제성을 확보할 수 없어 초동수사권 확보와 공무 중 범죄 판단 여부, 미군기지 출입 문제 등 독소조항 규정을 전면 재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지현 기자cjh@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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