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0일 일요일

실업률 통계 오류, 언론은 이제껏 몰랐나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1-16일자 기사 '실업률 통계 오류, 언론은 이제껏 몰랐나'를 퍼왔습니다.
[비평] 박재완 ‘고용 대박’ 발언에 뒤늦게 야단법석… 잠재 실업률은 4배 껑충“

“귀신에 홀렸나 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고용 대박’이라는 표현을 쓴 걸 사과했다. 지난달 취업자 수가 50만명 이상이라는 보고를 받고 기자들을 만나 한 이야기였다. 박 장관은 14일 국회 예산안 심사에 출석해 이 같이 해명했다. 김 황식 총리도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정확한 통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면서 “실업률 등 주요 통계 지표를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지난 9일 “10월 고용지표가 서프라이즈 수준이었던 지난 8월보다 좋다”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 표현으로 하자면 고용 대박이 났다”고 말했다. 실업률과 고용률의 괴리는 숱하게 지적돼 온 문제지만 언론은 정부 발표를 단순 인용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지난달 한국개발연구원(KDI)와 통계청이 실업률 통계를 두고 한바탕 논쟁을 벌인 뒤였고 가뜩이나 집권 말기 정부 정책에 불신이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경제지들을 중심으로 통계 왜곡이라는 지적이 계속되자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국경제는 10일 사설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많고 고용은 충분치 않은데도 실업률만 기형적으로 낮다면 분명 통계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게 상식”이라면서 “이런 통계를 갖고 주무장관이 실업률 사각지대 논란이 해소됐다고 자평하는 건 취업전쟁에 내몰린 젊은이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면서 “분통이 터질 지경”이라는 논평을 냈다. 한나라당에서도 박 장관의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원희룡 의원은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통계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취업애로 계층를 조사하면 20%까지 나오고 이런 통계를 공개할 것인지를 두고 실랑이까지 벌였는데 이런 부분을 모르지 않을 기획재정부 장관이 고용 대박이라는 말로 국민을 호도하면 안 된다”고 질책했다.
동아일보는 “경기호전에 따른 실업률 하락이라는 해석은 자회자찬에 가깝다”고 비판했고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고용 없는 성장은 나쁘지만 나쁜 일자리만 늘어나는 성장 역시 나쁘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도 하루 늦게 11일 “‘고용 대박’이란 우스갯소리 할 땐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과대포장한 표현으로 취업을 포기한 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밑바닥 서민들의 상처를 자극했다”고 호된 비판을 쏟아냈다.
우리나라는 1주일에 1시간이라도 일을 한 사람은 취업자로 분류하는 반면 취업 준비생이나 고시생, 가정주부를 비롯해 구직을 포기한 사람들을 모두 비경제활동인구에 포함하기 때문에 실업률과 고용률의 격차가 크다. 실업률은 2.9%인데 고용율은 59.9% 밖에 안 된다. 어디에도 고용돼 있지는 않지만 실업자에도 포함되지 않은 인구가 상당수 있다는 이야기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실업률은 2위, 고용률은 21위로 격차가 크다.
KDI 황수경 연구원은 “지난주에 1시간 이상 일을 하지 않고 4주간 적극적 구직활동을 했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갖춰야만 실업자로 분류하는 현행 방식으로는 잠재 실업자를 잡아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황 연구원에 따르면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으로 실업률을 조사했더니 실업률은 5.4%, 잠재 실업률은 21.2%로 뛰어올랐다. 잠재 실업률이란 일자리를 얻고 싶지만 구직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을 포함한 비율이다.
황 연구원은 “조사 대상자에게 구직 활동 여부를 먼저 물어보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기준점 효과 때문인데 구직 활동을 안 했다고 답변한 사람은 취업을 원한다는 의사를 표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황 연구원은 “취업 가능성을 따지는 기간을 ‘지난 한 주’로 한정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황 연구원은 “구직활동 기간을 1개월로 늘리고 구직활동 여부를 묻기 전에 취업을 원하는지를 먼저 물어 잠재 실업자를 추려냈다”고 밝혔다.
일본의 경우는 기준 시점을 특정하지 않고 일이 있다면 즉시 취업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해 통계에 반영한다. 미국은 공식 실업률 외에 15주일 이상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의 비율(U-1)부터 불완전 고용 상태의 취업자를 포함하는 실업률(U-6)까지 다양한 실업률 통계를 제공한다. 미국은 일자리를 잃어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미국은 구직활동 여부와 무관하게 실업자로 간주한다는 게 큰 차이다.
만약 박 장관이 “고용 대박”이라는 황당무계한 표현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지난달 실업률 통계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고 넘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공식 실업률과 체감 실업률의 격차가 새삼 논란이 된 건 그만큼 국민들의 불만이 크고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까지 그런 불만을 무시하기 어려운 국면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언론이 뒤늦게 정치권의 논란을 중계하는 방식으로 실업률 통계의 맹점을 지적하고 나선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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