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3일 수요일

[사설]한·미 FTA 날치기, 그 반역사적 폭거를 규탄한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1-11-22일자 사설 '[사설]한·미 FTA 날치기, 그 반역사적 폭거를 규탄한다'를 퍼왔습니다.
한나라당이 결국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국회의 비준동의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비준안은 재적 의원 295명 중 170명이 참석해 찬성 151명, 반대 7명, 기권 12명으로 가결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 다섯 번째 날치기다.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짓는 FTA 비준안은 국회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가운데 직권상정됐고, 기자석마저 출입을 봉쇄하는 초유의 언론 통제 속에 통과됐다. 당 지도부는 그제부터 날치기를 준비하면서도 24일을 D데이로 띄우는 등 전례없는 연막작전까지 펼쳤다. 5년에 가까운 긴 대치는 불과 4분짜리 여당의 단독 쇼로 막을 내렸다. 가히 ‘11·22 기습작전’이라 할 만하다.

우리는 무엇보다 한나라당의 한·미 FTA 날치기로 증명된 반역사성을 규탄한다. 누차 강조해온 대로 한·미 FTA는 한·미 양국 간 이익 불균형의 차원을 넘어 신자유주의 첨병인 미국식 경제의 틀을 우리에게 이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번 체결하면 되돌릴 수 없는 영구적 협정이기에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재고 또 재볼 것을 촉구해온 것이다. 한·미 FTA로 거대기업과 자본가 등 수혜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는 농어민·노동자·서민 등 다수의 사회적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복지체계와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우리 현실에서 심각한 사회통합의 위기가 우려되는 것이다. 나아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가의 역할, 공공정책의 중요성이 커진 상황에서 국가 권력을 시장에 넘겨주는 한·미 FTA는 시대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반역사성을 지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애당초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한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2008년 금융위기 전후에 달라진 상황을 살펴야 한다고 신중론을 제기했겠는가.

한·미 FTA의 문제점은 철저하게 미국 시간표에 맞춰 진행된 비준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한국 내 재협상론에 함구로 일관해온 미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야당에 발효 후 3개월 내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재협의 카드를 제안하자마자 ‘ISD 논의 가능’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 대통령의 한·미 FTA 밀어붙이기를 측면 지원하기 위한 립서비스일 뿐이지만 여당은 이를 기회로 “할 일 다했다”며 날치기 준비에 들어갔다. 지난달 중순 미 의회가 한·미 FTA를 비준하면서 국내 비준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것도 마찬가지다. 내년 1월1일 발효는 양국이 공식적으로 합의한 내용이 아니라 수석대표가 암묵적으로 의견을 모은 것일 뿐인데도 정부는 이를 마치 국익이 걸린 시한인 양 오도하며 행동대 격인 한나라당을 채근했다.
민주당 책임론도 간과할 수 없다. 당초 ‘10+2’ 재협상론으로 맞섰으나 말로만 결사 저지를 외쳤을 뿐 무기력한 대처로 일관해 사실상 방조자가 되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특히 ISD만 폐기 또는 수정하면 국회 비준을 물리력으로 저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스스로 입지를 축소시켰다. 일부 의원들은 ‘협상파’라는 이름 아래 공공연히 타협론을 제기했고, 저지 전선은 균열의 조짐을 보였다. 한·미 FTA에 대한 민주당의 ‘원죄’ 의식과 철학 빈곤은 전략과 전술 부재를 낳았고, 결과적으로 여당의 강행 처리에 빌미를 제공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일각에선 일종의 ‘미필적 고의’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할 정도다.

한·미 FTA 날치기 비준은 다수결을 내세워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고, 의회주의를 위기에 빠트린 폭거다. 날치기 무효 논쟁 등 거센 저항은 물론이고 정당정치의 불신 가중 등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을 몰고 올 공산이 크다. 민주당은 향후 국회 일정을 모두 중단했고, 시민사회단체는 한·미 FTA 폐기 투쟁에 돌입했다. 중대한 국익이 걸린 한·미 FTA 비준을 날치기하는 모습이 국제사회에 어떻게 비쳐졌을지도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한나라당은 한·미 FTA 반대를 ‘반미(反美)’로 몰고, 체결은 개방 시대에 불가피하다는 상식 이하의 논리로 강행 처리를 주장한 ‘청와대 편지’의 지시를 차질없이 수행한 거수기였음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그 배후조종자일 수밖에 없는 이 대통령의 FTA 만능주의와 역사의 심판대에 오른 한나라당의 맹목성이 놀랍고도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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