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9일 화요일

[기고]한미FTA의 감춰진 2센치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1-11-28일자 기사 '[기고]한미FTA의 감춰진 2센치'를 퍼왔습니다
수출이 증가하면 일자리도 늘어나고 양극화도 해소될까?

한미FTA 비준안이 통과되었습니다.

ISD를 포함한 여러 가지 독소 조항에 대한 입장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한나라당이 날치기로 통과시켰습니다. 모두가 한미FTA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러나 독소 조항을 재협상하면 한미FTA를 그냥 발효시켜도 될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심각하게 지적하지 않습니다.

독소 조항만 제거하면 한미FTA 그냥해도 좋은 것인가?

한미FTA에 대해 원론적으로 반대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FTA = 수출 = 지고지선의 좋은 것’의 등식이 머릿속에 고정관념처럼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지고지선이란 없는 법입니다. 한 가지를 얻으면 반드시 한 가지를 내놓게 되어 있는 법, 그것은 정부의 경제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정책을 검토할 때에는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을 비교해서 좋은 영향이 더 클 때에만 채택해야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수출은 적어도 과거에는 참 좋은 것이었습니다.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가 관련 기업으로의 특혜나 경제력 집중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국민들에게 좋은 일자리가 돌아가고 또 절대 빈곤으로부터 해방되는 효과가 훨씬 더 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우선 수출로 인해 창출되는 일자리가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왜냐하면 기업들의 투자는 생산성 효율화를 위해 일자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또 많은 기업들은 생산능력을 인건비가 싼 중국이나 베트남 등으로 이전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수출이 늘면 중국이나 베트남 일자리가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번 자동차 부문 재협상 결과는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자동차 부분 재협상에서는 완성차 관세 인하는 5년 이후로 연기하고 부품 관세는 즉각 인하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관세 구조 하에서 자동차 회사는 완성차를 수출하는 것보다 부품을 수출하여 미국 현지에서 조립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따라서 미국에 자동차 수출이 늘어나더라도 자동차 조립라인의 일자리는 미국에서 늘어나고 국내 공장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소위 수출의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더 이상 수출 증가가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수출과 내수는 서로 분리되어 따로 놀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입니다. 오히려 환율이 올라서 수출은 잘 되지만 높아진 수입물가로 내수가 망가지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수출이 늘어나 봐야 수출기업만 좋고 우리 국민에게는 별 혜택이 없는 것입니다.

내수 시장이 침체되고 소득 양극화는 심해지는 FTA, 해야할까요?
수출이 가져오는 내수시장 활성화 효과가 사라진 상태에서 저렴한 인건비로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국내로 들어오면 국내 소비자는 저렴한 물건을 소비하게 되어 좋기는 합니다. 대신 그 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기업은 점점 더 경영 여건이 어려워집니다. 근로자 월급을 중국이나 베트남 근로자 수준으로밖에 줄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국내에서 창출되는 일자리가 ‘88만원’짜리로 채워지는 원인입니다.

농·수·축산업이 존폐의 위기에 놓이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미국 서비스 기업들이 국내에 마음 놓고 들어오면서 우리 자영업자들의 생존기반을 위협하게 됩니다. 이들 업종은 그렇지 않아도 소득이 적은 업종입니다만, FTA로 인해서 빈사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이미 충분히 혜택을 받고 있는 대기업들만 더 잘살게 되고, 중소기업이나 농민 그리고 자영업자는 더 살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우리 청년들을 위한 ‘괜찮은 일자리’는 없고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88만원 일자리’만 양산됩니다. FTA를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정책적 선택일까요?

주지하다시피 한나라당은 한미FTA 비준안을 날치기로 처리해 버렸습니다. 
과연 한나라당에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본 국회의원이 한명이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차기 대선주자로 복지를 대선공약으로 준비하고 있는 박근혜 의원은 이런 것을 알고 비준안에 찬성했을까요.
그보다 더 먼저, 과연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런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한미 FTA 협상에 임했는지, 또 자동차 부문 재협상을 결정했는지요.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내년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이계안 전 열린우리당 의원

한미FTA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는 없을 지도 모릅니다. 
이미 협상 개시 이전부터 자동차, 의약품, 쇠고기, 스크린쿼터의 4개항을 개방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 한미FTA를 그만두면 이미 개방한 4개 시장에서 손해만 보는 셈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에 더 많은 물건을 팔려고 노력해야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독소 조항들을 꼼꼼히 살펴서 제거하는 일에서부터 양극화 심화 문제나 일자리 감소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보완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느 나라건 정부의 존재 이유 중 중요한 하나는 외적을 상대로 싸워서 국민들을 지켜내는 데에 있습니다. FTA가 소리 없는 전쟁이라고 한다면, 상대국을 대상으로 싸워서 보다 좋은 협상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정부의 할 일일 것입니다. 한편 이런 힘든 협상을 할 때 정부의 가장 든든한 후원군이 되는 것이 바로 국민이고 또 여론입니다.

이번 한미FTA를 지켜보면서 느끼는 것은 미국 정부는 정부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국민 여론을 적당히 활용해서 우리나라와의 협상에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고, 협상개시를 위한 4대 선결조건을 관철했을 뿐만 아니라, 다 해놨던 FTA 비준안을 재협상을 통해서 바꾸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재재협상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날치기 통과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 추운 날씨에 시청 앞 광장에 물대포를 쏘아댄 우리 정부는 과연 누구를 대상으로 싸우고 있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자고로 우리 역사에서 외침이 있을 때 관군이 이를 물리친 기록이 몇 번이나 있을까요. 강감찬, 을지문덕 장군 정도 아니었을까요. 외적이 쳐들어오면 관군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의병이 분연히 일어나 지켜온 나라가 아니었습니까? 의병의 역사를 자랑스런 역사라고 교과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계안(전 국회의원·2.1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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