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9일 화요일

[사설] ‘경찰서장 폭행사건’ 침소봉대할 일 아니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1-28일자 사설 '[사설] ‘경찰서장 폭행사건’ 침소봉대할 일 아니다'를 퍼왔습니다.
경찰관에 대한 폭력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흥분한 시위대 몇몇의 과격한 행동은 행위당사자뿐 아니라 집회 참가자 전체를 욕되게 한다. 때로는 집회 자체의 정당성마저 훼손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촛불집회 도중 일어난 박건찬 서울 종로경찰서장에 대한 시위대의 폭행 사건도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공권력의 완전붕괴’ ‘무법천지가 된 나라’를 의미할 만큼 심각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누가 뭐래도 아직까지 시위현장에서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보이는 것은 힘없는 시민들이 아니라 경찰이다. 평화적인 집회를 강경진압해 시위대를 자극하는 것은 오히려 경찰이다. 국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날치기 통과 이후 열린 집회에서도 경찰은 엄동설한에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물대포를 쏘았다. 경찰서장에 대한 폭력에 앞서 ‘공권력을 동원한 경찰의 폭력행위’가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박 서장이 보인 ‘무모한 용기’다. 경찰의 물대포 발사 등으로 시위대가 매우 격앙된 상태임을 모를 리 없는데도 시위대 한가운데를 정면으로 뚫고 지나가려 했다. 집회·시위 현장에 나온 경찰서장이라면 시위대의 정서와 분위기를 면밀히 파악해 이에 상응하게 행동하는 것이 기본상식인데도 이를 무시했다. ‘시위대를 일부러 자극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고의적인 폭력 유발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박 서장의 지각없는 돌출행동이 이번 사태를 자초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경찰과 시위대의 폭력은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경찰의 강경진압은 시위대의 폭력을 부추기고 이는 또다시 경찰의 강경진압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폭력시위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공권력을 앞세운 경찰의 폭력행위 또한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경찰이 물대포 발사로 국민에게 위해를 가한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 경찰서장에 대한 폭력 문제만 침소봉대하는 것은 건전한 시위문화 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여당과 보수언론들이 이번 사건을 ‘호재’ 삼아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날치기 처리의 본질을 희석하려 하는 태도 역시 전형적인 ‘꼬리로 몸통 흔들기’다. 그런다고 날치기 처리의 문제점이 덮어질 것도 아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