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2일 화요일

불통언론, 불통정권, 불통후보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1-22일자 기사 '불통언론, 불통정권, 불통후보'를 퍼왔습니다.
[김광원 칼럼] 괴담설은 조중동의 단골 메뉴

대표적 보수언론을 자임해온 조선일보가 앞장서 대한민국을 ‘괴담의 나라’로 만들고 있다. 내친 김에 2040(20대~40대)세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결합을 그 괴담의 늪으로 지목한다. 그 근거도 여론조사라는 객관적 얼개임을 강조한다. 조선일보뿐만이 아니다. 소위 조중동이 한통속이다. 조중동이 왜 그런지 알 만 하다. 어디 한두 번 겪는 일인가.  
그 괴담의 동의어가 ‘유언비어’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조중동이 굳이 유언비어라는 용어를 기피하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미 대한민국은 80년대에 ‘유비 통신’과 ‘카더라 방송’의 나라였다. 1980년 봄 광주사태를 입에만 올려도 권력과 언론은 유언비어로 몰았다. 어디 그 때뿐이던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약방의 감초처럼 써먹던 수법 아닌가. 그 불편한 기억이 조중동으로 하여금 유언비어 대신 괴담을 불러낸 셈이다.
유언비어가 정보사회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더구나 사안의 중대성이 클수록, 언론의 왜곡이 심할수록 유언비어는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괴담의 늪은 바로 조중동과 권력의 야합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괴담의 소통은 언론의 불통에 다름 아니다. 조중동은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을 ‘괴담의 나라’로 묘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명박 정권이야말로 조·중·동의 엄호 속에 그 괴담의 진원지 역할을 해오고 있다. 불통정권의 특징이다. 정권출범 초기부터 불법탈법을 불사하며 방송을 나팔수로 만들고, 조중동에게 종합편성채널을 안기는 것이 불통의 씨앗이었다. 중대 사안마다 정권의 일방적 밀어붙이기와 역성드는 주류언론의 주장만 있으니 그 정보회로가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다. 
‘괴담의 나라’가 아닌, ‘괴담의 정권’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배경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정권초기인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논란으로 빚어진 촛불사태부터 괴담론은 보수의 고질이었다. 미네르바 사건과 BBK, 천안함·연평도 사태는 물론 내곡동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예는 끝이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둘러싼 논란 또한 같은 양상이다. 조·중·동의 엄호 아래 이명박정권의 괴담론은 계속된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최근 열린 국가정책 조정회의에서 “최근 한미 FTA를 둘러싸고 인터넷과 트위터 등을 통해 괴담 수준의 유언비어들이 나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외교통상부는 ‘한미 FTA 괴담 7가지 오해와 진실’이라는 자료를 배포,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괴담으로 표현했다. 검찰은 ‘FTA 괴담’에 대해 구속수사를 하겠다고 나섰다가 꼬리를 내리기도 했다. ‘유비 통신’시대의 복사판이다.
집권 한나라당은 야당의 극력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 비준을 강행할 태세다. 여야 간에 최대의 쟁점이 되고 있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에 관한 한나라당의 태도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과 연동돼 있다. 많은전문가들의 문제점 지적과 야당의 거센 반대에도 아랑곳없다. 특히 국민의료 등 국민생활과 직접 관련된 문제들이 제기됨에도 오불관언이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전 대표의 입장 역시 마찬가지다. 박 전 대표는 FTA비준안의 11월 강행처리를 지지하는 발언을 계속해왔다. 그는 “ISD가 국제적 통상협정에서 일반적 제도이고 표준약관같이 거의 모든 협정에 다 들어있는 제도 아니냐”며 야당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또 여야의 ISD협상과 관련, 한·미 양국 장관급 이상의 ‘ISD재협상 서면합의서’를 받아와야 한다는 민주당 요구에 대해서도 “그게 뭐 그렇게 의미가 있겠느냐”며 “종이 한 장이 문제가 아니다”고 깔아뭉갰다. 
평소 언행에 조심했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한나라당 내 쇄신파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명박대통령과는 대척점에 서왔던 박 전 대표의 한계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박 전 대표는 그동안 여야 대결이 있을 때면 신중한 입장과 함께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세종시 파동 때는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가 하면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때는 “국민과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라며 이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소통의 정치는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SNS를 괴담의 주무대로 보는 보수언론의 주장은 매우 음모적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 참여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내걸고 의견을 세상에 내놓는다. SNS야말로 소통과 자정성을 생명으로 한다. SNS가 사회적 미디어(Social Media)로서의 역할을 급속히 확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괴담의 배후로, 2040세대를 그 주인공으로 몰아가는 조중동이야말로 불통의 설계사다.
박 전 대표는 최근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는 보도다. 안철수의 청춘콘서트가모델로 보인다. 문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고 그 진정성이다. 무늬만 소통이어서는 ‘불통 후보’를 벗어날 수 없다. 지금 보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소통의 자세다. 당장 그 소통의 출발은 조중동 괴담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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