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1일 월요일

"낙하산 현병철이 인권위를 망치고 있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1-20일자 기사 '"낙하산 현병철이 인권위를 망치고 있다"'를 퍼왔습니다.
인권위 10년, 뼈아픈 반성과 비판… 한진중·삼성반도체 등에 왜 침묵했나

“인권위원회는 현병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국가인권위원회 10주년을 맞아 열린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다. 18일 오후 1시, 서강대 가브리엘관 109호에 열린 토론회에서는 "국가인권위가 현장성과 감수성, 그리고 독립성을 스스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뼈아픈 반성과 함께 “현병철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더욱 외압에 취약하고 내분을 조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오는 25일은 국가인권위 설립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회의를 계기로 논의가 시작돼 1997년 김대중 대선 후보가 인권위 설립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의 비판과 반발 속에 파행을 거듭하다가 2001년 4월 우여곡절 끝에 국가인권위원회법이 통과됐고 그해 11월 입법·사법·행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된 국가기구로 설립됐다. 태동기(김대중 정부)와 발전기(노무현 정부)를 거쳐 올해 10주년을 맞게 됐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원회 시절 국가인권위를 정부 산하기관으로 만들려다 무산한 바 있다. 인권 분야에서 아무런 활동도 없었던 법조인 출신의 현병철 위원장을 임명해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낙하산 인사를 강행했다. 시민단체들은 “현병철 이후 국가인권위의 위상과 역할이 크게 후퇴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인권재단 사람 등이 주축이 돼서 대안 인권위를 만들려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현병철 국가인권위 위원장, 그가 위원장으로 임명됐을 때 시민운동 진영에서는 현듣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을 정도로 아무런 인권운동 경력이 없는 낙하산 인사였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박주민 변호사는 “인권위가 집회 및 시위의 자유, 정보영역에서의 표현의 자유와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 역할”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인사 등 여러 부분에서 국가로부터 중립성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정민경 활동가도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의 의미를 환기시킨 점은 긍정적이지만 인터넷실명제에 대해 (입장이) 갈수록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활동가는 “장애인 차별 금지의 유일한 시정기구라고 할 수 있는 인권위가 ‘인력 부족’을 이유로 들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8년 4월 장애인 차별금지법이시행된 이후 장애인 차별 진정은 해마다 전체 진정 건수의 절반 수준에 이를 정도로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2674건 가운데 1677건에 이른다. 인권단체들은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개정하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윤상 소장은 “(인권위로) 성희롱 업무가 이관된 지 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성희롱 판단기준이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성희롱 문제를 기계적인 판단의 문제로 탈정치화시켜 성희롱이 사회적 차별과 인권의 문제로 자리 잡게 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될 소지가 높다”고 강조했다.
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는 “성적 지향을 차별 금지 사유로 명시한 유일한 법이 인권위법”이라면서 “(인권위가) 사회적 소수자들이 다리 뻗을 자리, 비밀 언덕을 만들기 때문”에 “불신과 불안 속에서도 다시 한 번 희망을 건다”고 밝혔다.
인권위의 ‘사회권’ 실현 노력에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인권운동사랑방 사회권팀은 인권위가 ‘한진중공업 고공농성자 등의 인권보호 관련 의견표명’을 부결시킨 점과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 한미FTA, 4대강사업 등에 대해 활동을 하지 않은 점을 들며 “조사하지도 구제하지도 못하는 인권위”라고 비판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