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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0일 수요일

'협상'을 말하지만…서로 다른 곳 바라보는 北美


이글은 프레시안 2013-03-20일자 기사 ''협상'을 말하지만…서로 다른 곳 바라보는 北美'를 퍼왔습니다.
[TV로 보는 김정은의 북한] '상대의 변화가 먼저'인 북한과 미국

유엔의 대북제재와 북한의 반발, 정전협정 파기 위협 등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지만, 북한과 미국양쪽에서 '협상'이라는 말이 실종된 것은 아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호전적 수사의 한편으로 협상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모습들이 북미 모두에게 관찰되고 있다.

북미, 각자 '협상론' 제기

먼저, 협상이라는 말을 들고 나온 쪽은 북한이다. 북한은 장거리로켓 발사로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2087호에 반발해 위기를 고조시키면서 '앞으로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는 있어도 조선반도 비핵화를 논의하는 대화는 없을 것'(2003/1/23, 北 외무성 성명)이라고 밝혔다. 비핵화 논의는 없을 것이라는 점에 무게중심이 있긴 하지만, 북한이 원하는 방식 즉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이 이뤄진다면 협상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표출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유엔 제재 국면이 일단락된 뒤) 다른 방향에서 협상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3월 11일(현지시간) 아시아 소사이어티 회의에 참석해 "오바마 미 대통령은 불끈 쥔 주먹을 푸는 이들에겐 손을 내민다"며 "북한이 의미 있는 조치를 통해 진지함을 보인다면 미국은 북한과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의미 있는 조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오바마 미 대통령은 3월 13일(현지시간) ABC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핵실험을 중단함으로써 (대화를) 시작할 수도 있고 미사일 실험을 끝냄으로써 시작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할 뜻을 밝히는 "신뢰 있는 조치"를 취한다면 대화가 시작되리라는 것이다.

북한은 이에 대해 다시 입장을 내놓았다. 3월 16일 외무성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이 대조선적대시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북한)는 미국과 대화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뒤집어보면 '미국이 대북적대 정책을 포기하면 미국과 대화하겠다'는 뜻으로, 미국에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에 나설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 것이다. 이는 1월 23일 외무성 성명의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지만, 북한이 지금 바라는 것이 '미국과 어떻게든 협상테이블에 앉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착안할 점이 있다.

▲ 북한은 외무성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이 대북적대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과 대화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조선중앙TV캡처

서로 '변화' 요구하는 북한과 미국

북한과 미국 공히 협상을 말하지만, 두 나라가 바라보는 협상의 방향은 확연히 다르다. 미국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거나 적어도 그럴 의사를 밝혀야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미국이 대북적대 정책을 포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에 나서야 협상장에 나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말해 미국은 북한이 변할 것을 요구하고 북한은 미국이 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위기가 고조될수록 협상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 있다. 위기가 최고조에 달할수록 서로가 상대의 문제에 집중하게 되고 파국을 피할 길을 찾다 보면 협상으로 급반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지금 북미가 언급하는 협상론은 서로 '번지수'가 다른 것이어서, 한쪽이 입장을 선회하지 않는 한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물론, 북미의 상이한 입장 표명이 결국은 협상으로 가기 위한 힘겨루기일 수도 있다. 북한과 미국뿐 아니라 한국도 이같은 상황이 지속되는 데에 대해 부담감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완고해 보이는 듯한 양측의 엇갈린 입장은 이번 대치국면의 타개가 상당 기간 쉽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 북한학 박사인 안정식 기자는 SBS에서 한반도 문제를 취재, 보도하고 있으며 북한포커스(www.e-nkfocus.co.kr)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안정식 SBS 기자(북한학 박사)

2013년 3월 3일 일요일

박근혜 ‘응징’ 발언 우려스러워


이글은 시사IN 2013-02-26일자 기사 '박근혜 ‘응징’ 발언 우려스러워'를 퍼왔습니다.
국제사회가 제재만으로 북한 핵을 제거할 방도는 없다. 그런 방법은 북의 핵 능력만 증대시켰을 뿐이다. 앞으로는 핵 능력 확산을 방지하는 협상밖에 길이 없다. 모든 카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은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북한의 군사적 역량과 위협이 이전과 달리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한 수준이라는 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12년 12월 1만㎞로 추정되는 장거리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 실험에서 그들의 주장대로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에 성공한 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비핵화는 웬만한 협상 가지고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만큼 북한은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얘기다. 물론 북한이 이번 핵실험 성공으로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은 아니지만 기술적으로 핵보유국인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지금처럼 국제사회가 제재와 압박만으로 북한 핵을 근원적으로 제거할 방도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대북 제재나 압박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실효성은커녕 북한의 핵 능력만 증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군사적 대안론은 중국의 동북 3성, 러시아의 연해주, 남한의 지정학적 구조 때문에 절대로 불가능하다. 또한 최근 한국에서 일고 있는 핵무장론의 경우 핵 도미노를 막아야 하는 미국 처지에서는 결코 허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역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은 더 이상의 핵 능력 증대와 핵무기 기술을 확산하는 걸 방지하는 협상으로 가는 길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다행히 북한의 핵실험은 안보 불안을 조성하거나 공격적인 성격을 띠기보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적대 세력으로부터 자신의 생존과 체제를 지키려는 몸부림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번 핵실험에서 북한은 자신이 미국 본토에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완성했다는 인식을 미국 측이 갖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실험을 통해 미국이 더는 북한과의 안전보장 협상과 교섭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강력한 카드를 보유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북한의 대미 핵전략은 협상을 통한 확산에서 확산을 통한 협상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AP Photo 북한 동창리 발사장에서 발사된 ‘은하 3호’ 로켓.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 역시 사태의 위중함을 모르지 않는다. 북한이 이제 미국 본토에 직접적 위협 국가가 되었다는 인식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지금까지 취해온 전략적 인내 정책은 수정될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오바마 정부의 외교안보팀이 대화파로 구성되어 있고 더는 북한 핵문제를 방치할 수 없는 절박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볼 때 앞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별개로 북·미 대화는 재정립될 것이다. 

박근혜 ‘응징’ 발언 우려스러워

물론 북한과의 협상은 예전보다 더욱 힘들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현재로서는 비핵화 정책을 유지하는 동시에 한쪽에서는 제재를 주장하면서도 또 한편에서는 협상을 시도하는 투 트랙 전략을 쓰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다시 말해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의 안전보장, 평화협정, 지원, 수교 등을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그동안 비핵화에만 매달리면서 남북 관계만 악화시킨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정책은 이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이미 3차 핵실험까지 한 북한에 대해 용납할 수 없으며 응징하겠다고만 하는 박근혜 당선자의 대북 태도는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핵보유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대북 강경책은 자칫하면 이명박 정부 때처럼 대미 의존만 심화시키고 군비만 확대하다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보다는 남북 간의 자율 공간을 만들어 북한 핵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데 주도적 구실을 하는 대북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한국이 앞장서서 대북 정책을 강경 기조로 바꾸면 안 된다. 

이창주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국제관계학부 석좌교수)

2013년 2월 16일 토요일

박근혜 당선인님, 이제 뭐라도 좀 하세요


이글은 미디어스 2013-02-15일자 기사 '박근혜 당선인님, 이제 뭐라도 좀 하세요'를 퍼왔습니다.
[기자수첩] 보안을 풀거나 협상을 하거나 포기를 하거나 해야 할 때

초조하다. 너무나 초조하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 때문이다.
애초에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총리 후보로 지명할 때에도 지적됐던 문제다. 일정이 촉박하다는 거다. 인사청문회의 경우, 물론 꼭 기간을 다 채우지 않아도 되지만, 보통 20일 정도의 기간이 걸린다. 법에 청문회 기간을 최대 20일로 할 수 있도록 명시돼있기 때문이다. 헌법에 대통령 취임식을 2월 25일에 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니 최소한 2월 5일에는 각부 장관의 후보자들이 구성이 되었어야 한다. 물론 각부 장관의 경우 먼저 정부조직법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돼야 후보자를 지명할 수 있다는 난점이 있으나 그렇더라도 내정자 정도는 정해져 있어야 일 처리가 매끄럽다. 정부조직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그냥 ‘국무위원’으로 지명해서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는 편법을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정홍원 총리 후보자와 13일에 지명된 외교부, 교육부, 법무부, 국방부, 안전행정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경우는 상황이 좀 낫다. 이들의 경우 새로 신설되는 부처가 아니라 정부조직법개정안의 영향을 받을 일이 없어 어쨌든 인사청문회 일정만 서로 잘 협의하면 되는 것이며 정홍원 총리 후보자의 경우 20~21일에 국회인사청문회를 진행하기로 여·야가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조직법개정안이 표류하고 있어 향후 일정은 그야말로 안개속이다. 애초에 계획했던 일정은 14일 본회의에서 정부조직법개정안을 처리하고 그 직후 해당 부처의 장관 후보자를 발표하는 것이었겠지만 14일 본회의 처리가 무산되면서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18일 본회의 처리를 목표로 여야 원내수석부대표가 물밑 조율을 시도했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 열심히 협상을 하고 있는 여야 원내수석부대표. 왼쪽이 우원식 민주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 오른쪽이 김기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뉴스1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서로를 비난하기 바쁘다. 새누리당은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며 야당의 협력을 촉구하고 나섰다. 야당은 야당대로 머리에 뿔이 난 상태다. 우원식 민주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는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인수위원들이 계속 인수위 입장만을 설명하니 협상을 할 필요가 있는지 회의가 든다”며 “제출된 정부조직법안도 매우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실제 민주통합당 측은 애초에 요구했던 15가지 제안 가운데 △반부패 기구(국가청렴위원회와 고위공직자반부패수사처 신설, 대검 중수부 폐지)를 설치할 것 △장관급으로 격상된 청와대 경호실장 대신 중소기업청에 장관직을 신설하고 금융소비자보호기구를 설치할 것 △방송의 진흥과 규제 정책을 미래창조과학부가 아닌 방송통신위원회로 이전할 것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미래창조과학부로 이전하지 말 것 △외교통상부의 통상 기능을 독립기구화 할 것 △인재육성과 관련한 산학협력을 교육부로 남겨둘 것 등 6개를 추려낸 핵심요구사항을 제출하는 등 후퇴한 입장을 갖고 협상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의 입장이 너무 강경해 진전이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 14일 본회의에서의 처리 무산도 박근혜 당선인의 입장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들과의 오찬에서 ‘현 조직개편안은 당당하고 설득력 있다’고 말하며 민주통합당 입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바람에 새누리당의 협상 여지가 없어져버렸다는 것이다.
원내정치란 결국 난제를 대화와 타협을 통해 푸는 것을 주요한 방법론으로 한다. 정부조직개편안은 일단 국회에서 처리해야한다는 점에서 원내정치의 대상이므로 여기에도 이러한 방법론은 당연히 적용된다. 야당의 주장이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닌 이상 아무리 원안이 논리적으로 완벽한 것이라 해도 최소한의 의견 반영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 기분이 좋아 보이는 박근혜 당선인 ⓒ뉴스1

이것은 새누리당의 구조 상 박근혜 당선인이 결단을 해야만 가능할 수 있다. 그런데 박근혜 당선인은 이러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애초에 구상한 원안만을 고집하고 있다.
정부조직법이 통과가 안 되니 미래창조과학부가 어찌 될지를 알 수 없고, 실물경제 일부와 신성장동력 등을 관리하고 발굴할 미래창조과학부의 운명을 알 수 없으니 경제부총리를 겸하는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하는 것도 어렵다. 일본이 돈을 쏟아 붓고 유로존이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에서 국제적인 수준의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가 연일 나오고 있는데 새 정부 경제정책의 키를 누가 담당할지조차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당연히 불안하다.
도대체 무엇이 어찌될지 알 수 없으니 언론은 무책임한 예측기사만 쏟아내고 있다. 언론에서 언급하는 경제부총리 후보군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눈덩이처럼 불어간다. 이한구, 김광두, 김광림, 윤증현, 류성걸, 이용섭, 강봉균, 김진표, 이헌재, 한덕수, 김석동, 권오규, 최경환, 장하준…. 나올 수 있는 이름이 다 나온다. 새로운 이름이 나올 때마다 언론은 ‘급부상’이라는 타이틀을 뽑는다. 이제 며칠이 더 지나고 상황이 달라지면 ‘이르면 내일’ 이라는 표현이 또 등장할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당선인께 부탁드린다. 제발 뭐라도 좀 하시라. ‘내가 생각해봤는데 경제부총리는 3배수 정도로 압축을 해서 이러 이러 이러한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라는 브리핑을 해주시든지, 아니면 국회에서의 협상을 잘 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새누리당에 좀 제시를 해주시든지, 그것도 아니면 취임식 이전 정부 구성 포기 선언을 하시든지 하셔야 한다. 이것은 충심에서 드리는 고언이다. 국민들의 답답함과 불안함을 더 이상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 ‘이 분들을 절대로 놀라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이제는 버리셔야 한다.

김민하 기자  |  acidkiss@gmail.com

2012년 11월 20일 화요일

‘명분있는 협상’이 ‘정권교체의 진심’ 증명했다…다음은?


이글은 미디어스 2012-11-19일자 기사 '‘명분있는 협상’이 ‘정권교체의 진심’ 증명했다…다음은?'을 퍼왔습니다.
상대는 본선에서 기다리고 있다…지지층 간 비판은 의미없어

▲ 대선후보 초청 농정 대토론회에 나란히 참석하여 대화 중인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모습 ⓒ뉴스1

닷새 만에 단일화 협상이 재개되었다. 새정치선언문의 내용은 정치개혁안을 담기에는 추상적이고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안철수 후보의 경우, 이전 기사에서 지적했듯(링크) ‘단일화 과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혁신’과도 연관이 있고 그 ‘정치혁신’의 본질은 ‘기득권 내려놓기’이며 이것이 이루어져야 ‘정권교체’도 가능하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선언문은 분명 기자가 분석했던 ‘정치혁신’=‘정권교체’=‘기득권 내려놓기’=‘단일화 과정 문제 해결’=‘고통분담’이라는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복잡하다면 복잡한 논리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선언문이 이 논리의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선언문 이면의 정치공학

하지만 그렇다고 선언문의 의의를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선언문에서 중요한 것은 내적 논리가 아니라 그 이면에 깔린 정치공학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의 입장에서 이 선언문은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서 이탈한 안철수 후보를 다시 이끌어낸 정치적 성과물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선언문을 꼼꼼하게 뜯어보면 그간 안철수 후보 측에서 주장해온 논변은 상당 부분 수용했지만, ‘국회의원 정수 축소’ 등 많은 비난을 받았던 구체적인 공약들은 미묘하게 피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중앙당 혁신’과 같은 언급들은, 한국의 정당에 대한 정당한 불신을 정당정치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는 허술한 제도로 구현하여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는 정책 제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선언문의 내용만을 두고 보면 딱 부러지게 정책 제안이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문재인 후보 측은 안철수 후보가 말하는 ‘정신’은 수용하면서도 정책적으로 미숙한 부분에 대해선 설득을 통해 타협안을 제시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선언문이 추상적이라는 것은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다. 만약에 선언문이 더 구체적이었다면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이 더 많았을 것이다.
한편 안철수 후보의 입장에서도 이 선언문은 중요하다.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 상승과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 하락이라는 경향성이 감지되는 지금 시점에서, 안철수 후보가 ‘문안 단일화 협상’을 무난하게 이끌어가다 자연스럽게 탈락했을 경우 그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민주당의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의 문제’를 비판하며 공세를 취했고, 이 공세에 대해 문재인 후보가 상당 부분 자신의 것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얘기는 조금 달라졌다. 안철수 후보로서는 이 행동을 지지율을 반등시키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로 여길 수 있다. 또 만일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그냥 무난하게 물러가는 것보다는 민주당의 문제를 한번 더 지적하고 양보를 얻어내는 모양새가 ‘정치혁신’을 위한 안철수의 노력을 돋보이게 한다. 말하자면 이 경우에 그는 단일화 과정에서 패배하더라도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에게 안후보가 '정치혁신‘을 위해 할 만큼 했으며 ’명분있는 퇴각‘을 하는 것이라 여겨질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즉 안철수 후보의 입장에서 이 협상안은 그가 이기든 지든 운신할 수 있는 명분을 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제살 깎아먹기'만은 아니었던 단일화 공방

그렇다면 문재인 후보의 입장에서 이 협상안의 의미는 무엇일까? 앞서 살펴보았듯 이것은 문재인 후보와 그 지지자들에겐 ‘자기가 왜 삐졌는지도 모르고 삐진 척하는 간철수’를 다시 이끌어냈다는 정치공학적 의미 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지금까지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공방은 제살 깎아먹기인 측면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저지해왔다는 측면도 있다. 물론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가 3자구도에서도 박근혜 후보를 앞지를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했다면 가장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서, 각기 다른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는 두 후보가 나름의 색깔을 드러내며 갈등을 통해 단일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단일화 후보간 지지이전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 된다. 안철수 후보가 거듭 강조하고 있다시피 안철수 후보의 지지층과 기존의 야권 지지층이 모두 동의하는 단일화가 이루어져야 정권교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두 후보의 지지자들이 후보에게 요구하는 것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가 권력을 잡는 것 자체는 아니다. 말하자면 두 후보가 권력분점에 대해 합의한다고 지지율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양 후보의 지지층은 한국 정치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가지고 있고 그 견해 위에서 그 후보를 지지한다. 그리고 이 견해가 다소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에 단일화시 이탈하는 층이 생긴다. 이는 두 후보가 러브샷을 하며 정치적 스킨십을 높인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갈등을 빚으며 합의문을 도출하는 등 두 후보가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모습을 보여줄 때 지지층이 정치적으로 납득할 수 있다.

2007년의 기억, 그리고 '진심'의 문제

특히 문재인 후보 입장에서 안철수 후보의 거듭된 압박으로 이해찬 대표 등이 자진사퇴하게 된 상황은 가슴이 아프겠지만 정치공학적 입장에서 볼 때는 일종의 ‘선물’이라고까지 볼 수 있다. 2007년 대선 상황을 돌이켜보자. 그 평가가 얼마나 공정했느냐의 여부를 떠나 당시 참여정부는 ‘역대 최저 인기’라는 참담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열린우리당의 대부분의 의원들이 차기 총선에서의 생존을 위해 당을 떠나려고 안달이었고, 우여곡절 끝에 대통합민주신당이 만들어졌다.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승리한 것은 ‘참여정부를 부정하는 세력과는 연대하지 않겠다’고 말한 이해찬 후보가 아니라 참여정부의 ‘과실’에 대해 반성하고 다니던 정동영 후보였다. 친노성향 지지자들은 정동영 후보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빨리 반성하는 사람’이라고 비아냥댔다. 반성을 요구하면 십 초만에 바로 사과가 나왔다. 참여정부의 공과에 대해 제대로 직시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기 보다는, 평가를 피해가려는 ‘꼼수’와도 같은 몸부림이었다. 그 결과 ‘500만표차 패배’라는 대선 사상 초유의 참패가 나왔다. 사람들은 참여정부도 믿지 않았지만 정동영의 사과도 믿지 않았다. 구체성이 없고 성찰없이 너무 빠른 시간에 나오는 사과는 '진심'이 아니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이명박 정부의 실정은 야권 내에서 ‘친노’계를 다시 부활시켰다. 이제는 또 “사실 참여정부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시 정치권에 합류하고 정치에 대해 발언한다. 그러나 유권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참여정부와 친노는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용인이 되었지 전혀 흠결이 없다고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2007년에 그 공과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참여정부가 저번에 집권했을 때보다 더 잘해서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되돌리고 극복해줬으면 하는 것이 대부분의 유권자들의 심경일 것이다.
문재인 후보의 지지층이 참여정부에 대한 ‘불신’보다 ‘믿음’에 기운 이들이라면, 안철수 후보의 지지층은 ‘믿음’보다 ‘불신’에 기운 이들이다. 이 ‘믿음’과 ‘불신’의 혼합의 정도에 따라 문에게도 기울고 안에게도 기운다. 이 경우 두 지지층이 서로 한 후보를 지지해도 된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서로의 견해를 진심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문재인이 참여정부가 잘했다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공과를 인지하고 더 잘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고, 안철수가 친노를 타파해야 할 낡은 것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정치혁신을 이끌어 갈 주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문재인, 안철수 덕분에 '대인배'의 이미지 획득하다

두 후보의 갈등이 제살 깎아먹기가 되는 것은 이 ‘확신’이 없는 양 후보와 그 지지자들이 서로를 난타할 때다. 단일화 협상 중단 이후 며칠 동안의 상황이 그런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찬 대표의 퇴진과 문재인 후보의 ‘단일화 방식 전면 위임’은 그들이 자기 견해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러한 증명이 유권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을 것이다.
사실 문재인 후보는 오랜 친구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적당한 타이밍에 승부수를 던질 수 있는 타입은 아니다. 그의 장점인 신중함은 만약 집권을 하게 된다면 특장을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와 같은 선거국면에서는 ‘몸이 굼뜨다’는 느낌을 주는 아쉬운 부분이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문재인 후보가 진작부터 ‘친노 2선 후퇴’를 실행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문재인 후보는 이를 실행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승리를 예감한 박근혜 후보 역시 ‘친박 2선 후퇴’를 제대로 실현해내지 못하면서 이 머뭇거림이 결정적인 실책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승부수를 던지지 못하는 문재인 후보에 대해 거듭 안철수 후보가 여러 가지를 요구하면서 그는 안철수 후보의 다소 무리한 요구들을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위해 용인하는 도량이 넓은 캐릭터라는 이미지를 갖추게 되었다. 이는 문재인 후보가 홀로 출마해서는 얻어내기 어려웠을 이미지다. 박근혜 후보와의 양자대결만이 전부였다면 ‘신사다운’ 이미지는 오히려 단점으로 여겨졌을 수가 있다. 하지만 동지도 될 수 있고 적도 될 수 있는 애매한 관계인 안철수 후보와의 협상을 잘 이끌어내면서 그의 장점이 부각되게 되었다. 이해찬 대표가 늦게나마 퇴진한 것은 ‘문재인 후보의 리더십’을 증명해내지는 못했지만, 안후보 측이 공격하는 ‘친노’라는 이들이 단지 권력에 대한 욕망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예선 수습하고 본선 준비해야 할 때

그렇다면, 서로 단일후보가 되기 위한 양측의 자연스러운 활동 및 충돌이 문재인 후보의 ‘늦은 움직임’의 단점을 조금이라도 상쇄해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제는 두 후보의 지지층이 서로를 신뢰하고 정권교체를 원하는 유권자를 포괄하기 위한 어떤 약속들을 던져야 할 때다. 먼저 단일화 협상을 성공시킨 후 시간적으로 길지 않은 양자대결의 국면에서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60% 가까운 유권자들을 규합해낼 수 있는 어떤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난 두 달 동안 점진적으로 고조되어 온 양 후보 지지층 간의 날선 갈등도 자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두 후보의 진정한 상대는 예선이 아니라 본선에서 선수를 기다리고 있다.

한윤형 기자  |  ahriman@mediaus.co.kr

2012년 7월 4일 수요일

중국 “한국이 벌집을 건드렸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04일자 기사 '중국 “한국이 벌집을 건드렸다”'를 퍼왔습니다.

한-일 군사정보협정 파문
 관영언론 ‘환구시보’ 주장
“한일 군사협정 잠재적 위협
모든 영향력 이용해 막아야”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한-일 군사정보협정)에 대해 직접적 언급을 자제하던 중국이 관영언론 등을 통해 처음으로 반대 뜻을 분명히 밝히고 나섰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산하 (환구시보)는 3일 사설에서 한-일 군사정보협정을 ‘잠재적 위협’으로 규정하고, 중국은 영향력을 이용해 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설은 “중국은 한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많은 수단을 갖고 있다”며 “한국 내부 역량이 이명박 정부가 중국에 좋지 않은 조처를 취하는 것을 막아내지 못할 때는 중국은 손에 가진 수단을 사용해 중국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구시보)는 이날 ‘한-일 군사정보협정이 벌집을 건드렸다’는 제목의 1면 전면 기사에서 협정 체결 과정을 둘러싼 한국 내 논란을 소개한 뒤 사설을 통해 “노무현 정부 시기 한국은 스스로 ‘동북아 균형자’ 입장을 취했으나, 이명박 취임 이후 몇년 동안 한국은 정치적으로는 미·일에 크게 기울고 한-중 무역관계는 급속하게 발전하는, 정치와 경제가 따로 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은 한·일이 군사동맹을 맺고 중국에 잠재적 위협이 되는 데 대해 절대 반대한다는 태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중국을 억제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이런 상황에 대해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군부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산하 국방대학 한쉬둥 교수는 (CRI) 사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이번 협정이 체결되면 동북아에서 미국이 새로운 군사적 틀을 짜고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 큰 영향을 주게 된다”며 우려의 뜻을 밝혔다. 그는 “미국은 동북아에서 새로운 군사적 구도를 구축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을 반드시 하나로 얽어매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류웨이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협정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화와 협상만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유일한 길”이라며 “한반도의 정세가 복잡, 민감하므로 관련국들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유리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2011년 11월 29일 화요일

[기고]한미FTA의 감춰진 2센치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1-11-28일자 기사 '[기고]한미FTA의 감춰진 2센치'를 퍼왔습니다
수출이 증가하면 일자리도 늘어나고 양극화도 해소될까?

한미FTA 비준안이 통과되었습니다.

ISD를 포함한 여러 가지 독소 조항에 대한 입장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한나라당이 날치기로 통과시켰습니다. 모두가 한미FTA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러나 독소 조항을 재협상하면 한미FTA를 그냥 발효시켜도 될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심각하게 지적하지 않습니다.

독소 조항만 제거하면 한미FTA 그냥해도 좋은 것인가?

한미FTA에 대해 원론적으로 반대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FTA = 수출 = 지고지선의 좋은 것’의 등식이 머릿속에 고정관념처럼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지고지선이란 없는 법입니다. 한 가지를 얻으면 반드시 한 가지를 내놓게 되어 있는 법, 그것은 정부의 경제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정책을 검토할 때에는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을 비교해서 좋은 영향이 더 클 때에만 채택해야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수출은 적어도 과거에는 참 좋은 것이었습니다.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가 관련 기업으로의 특혜나 경제력 집중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국민들에게 좋은 일자리가 돌아가고 또 절대 빈곤으로부터 해방되는 효과가 훨씬 더 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우선 수출로 인해 창출되는 일자리가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왜냐하면 기업들의 투자는 생산성 효율화를 위해 일자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또 많은 기업들은 생산능력을 인건비가 싼 중국이나 베트남 등으로 이전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수출이 늘면 중국이나 베트남 일자리가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번 자동차 부문 재협상 결과는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자동차 부분 재협상에서는 완성차 관세 인하는 5년 이후로 연기하고 부품 관세는 즉각 인하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관세 구조 하에서 자동차 회사는 완성차를 수출하는 것보다 부품을 수출하여 미국 현지에서 조립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따라서 미국에 자동차 수출이 늘어나더라도 자동차 조립라인의 일자리는 미국에서 늘어나고 국내 공장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소위 수출의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더 이상 수출 증가가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수출과 내수는 서로 분리되어 따로 놀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입니다. 오히려 환율이 올라서 수출은 잘 되지만 높아진 수입물가로 내수가 망가지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수출이 늘어나 봐야 수출기업만 좋고 우리 국민에게는 별 혜택이 없는 것입니다.

내수 시장이 침체되고 소득 양극화는 심해지는 FTA, 해야할까요?
수출이 가져오는 내수시장 활성화 효과가 사라진 상태에서 저렴한 인건비로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국내로 들어오면 국내 소비자는 저렴한 물건을 소비하게 되어 좋기는 합니다. 대신 그 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기업은 점점 더 경영 여건이 어려워집니다. 근로자 월급을 중국이나 베트남 근로자 수준으로밖에 줄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국내에서 창출되는 일자리가 ‘88만원’짜리로 채워지는 원인입니다.

농·수·축산업이 존폐의 위기에 놓이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미국 서비스 기업들이 국내에 마음 놓고 들어오면서 우리 자영업자들의 생존기반을 위협하게 됩니다. 이들 업종은 그렇지 않아도 소득이 적은 업종입니다만, FTA로 인해서 빈사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이미 충분히 혜택을 받고 있는 대기업들만 더 잘살게 되고, 중소기업이나 농민 그리고 자영업자는 더 살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우리 청년들을 위한 ‘괜찮은 일자리’는 없고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88만원 일자리’만 양산됩니다. FTA를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정책적 선택일까요?

주지하다시피 한나라당은 한미FTA 비준안을 날치기로 처리해 버렸습니다. 
과연 한나라당에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본 국회의원이 한명이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차기 대선주자로 복지를 대선공약으로 준비하고 있는 박근혜 의원은 이런 것을 알고 비준안에 찬성했을까요.
그보다 더 먼저, 과연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런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한미 FTA 협상에 임했는지, 또 자동차 부문 재협상을 결정했는지요.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내년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이계안 전 열린우리당 의원

한미FTA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는 없을 지도 모릅니다. 
이미 협상 개시 이전부터 자동차, 의약품, 쇠고기, 스크린쿼터의 4개항을 개방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 한미FTA를 그만두면 이미 개방한 4개 시장에서 손해만 보는 셈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에 더 많은 물건을 팔려고 노력해야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독소 조항들을 꼼꼼히 살펴서 제거하는 일에서부터 양극화 심화 문제나 일자리 감소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보완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느 나라건 정부의 존재 이유 중 중요한 하나는 외적을 상대로 싸워서 국민들을 지켜내는 데에 있습니다. FTA가 소리 없는 전쟁이라고 한다면, 상대국을 대상으로 싸워서 보다 좋은 협상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정부의 할 일일 것입니다. 한편 이런 힘든 협상을 할 때 정부의 가장 든든한 후원군이 되는 것이 바로 국민이고 또 여론입니다.

이번 한미FTA를 지켜보면서 느끼는 것은 미국 정부는 정부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국민 여론을 적당히 활용해서 우리나라와의 협상에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고, 협상개시를 위한 4대 선결조건을 관철했을 뿐만 아니라, 다 해놨던 FTA 비준안을 재협상을 통해서 바꾸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재재협상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날치기 통과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 추운 날씨에 시청 앞 광장에 물대포를 쏘아댄 우리 정부는 과연 누구를 대상으로 싸우고 있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자고로 우리 역사에서 외침이 있을 때 관군이 이를 물리친 기록이 몇 번이나 있을까요. 강감찬, 을지문덕 장군 정도 아니었을까요. 외적이 쳐들어오면 관군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의병이 분연히 일어나 지켜온 나라가 아니었습니까? 의병의 역사를 자랑스런 역사라고 교과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계안(전 국회의원·2.1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