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2-11-19일자 기사 '‘명분있는 협상’이 ‘정권교체의 진심’ 증명했다…다음은?'을 퍼왔습니다.
상대는 본선에서 기다리고 있다…지지층 간 비판은 의미없어

▲ 대선후보 초청 농정 대토론회에 나란히 참석하여 대화 중인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모습 ⓒ뉴스1
닷새 만에 단일화 협상이 재개되었다. 새정치선언문의 내용은 정치개혁안을 담기에는 추상적이고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안철수 후보의 경우, 이전 기사에서 지적했듯(링크) ‘단일화 과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혁신’과도 연관이 있고 그 ‘정치혁신’의 본질은 ‘기득권 내려놓기’이며 이것이 이루어져야 ‘정권교체’도 가능하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선언문은 분명 기자가 분석했던 ‘정치혁신’=‘정권교체’=‘기득권 내려놓기’=‘단일화 과정 문제 해결’=‘고통분담’이라는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복잡하다면 복잡한 논리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선언문이 이 논리의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선언문 이면의 정치공학
하지만 그렇다고 선언문의 의의를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선언문에서 중요한 것은 내적 논리가 아니라 그 이면에 깔린 정치공학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의 입장에서 이 선언문은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서 이탈한 안철수 후보를 다시 이끌어낸 정치적 성과물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선언문을 꼼꼼하게 뜯어보면 그간 안철수 후보 측에서 주장해온 논변은 상당 부분 수용했지만, ‘국회의원 정수 축소’ 등 많은 비난을 받았던 구체적인 공약들은 미묘하게 피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중앙당 혁신’과 같은 언급들은, 한국의 정당에 대한 정당한 불신을 정당정치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는 허술한 제도로 구현하여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는 정책 제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선언문의 내용만을 두고 보면 딱 부러지게 정책 제안이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문재인 후보 측은 안철수 후보가 말하는 ‘정신’은 수용하면서도 정책적으로 미숙한 부분에 대해선 설득을 통해 타협안을 제시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선언문이 추상적이라는 것은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다. 만약에 선언문이 더 구체적이었다면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이 더 많았을 것이다.
한편 안철수 후보의 입장에서도 이 선언문은 중요하다.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 상승과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 하락이라는 경향성이 감지되는 지금 시점에서, 안철수 후보가 ‘문안 단일화 협상’을 무난하게 이끌어가다 자연스럽게 탈락했을 경우 그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민주당의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의 문제’를 비판하며 공세를 취했고, 이 공세에 대해 문재인 후보가 상당 부분 자신의 것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얘기는 조금 달라졌다. 안철수 후보로서는 이 행동을 지지율을 반등시키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로 여길 수 있다. 또 만일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그냥 무난하게 물러가는 것보다는 민주당의 문제를 한번 더 지적하고 양보를 얻어내는 모양새가 ‘정치혁신’을 위한 안철수의 노력을 돋보이게 한다. 말하자면 이 경우에 그는 단일화 과정에서 패배하더라도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에게 안후보가 '정치혁신‘을 위해 할 만큼 했으며 ’명분있는 퇴각‘을 하는 것이라 여겨질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즉 안철수 후보의 입장에서 이 협상안은 그가 이기든 지든 운신할 수 있는 명분을 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제살 깎아먹기'만은 아니었던 단일화 공방
그렇다면 문재인 후보의 입장에서 이 협상안의 의미는 무엇일까? 앞서 살펴보았듯 이것은 문재인 후보와 그 지지자들에겐 ‘자기가 왜 삐졌는지도 모르고 삐진 척하는 간철수’를 다시 이끌어냈다는 정치공학적 의미 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지금까지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공방은 제살 깎아먹기인 측면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저지해왔다는 측면도 있다. 물론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가 3자구도에서도 박근혜 후보를 앞지를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했다면 가장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서, 각기 다른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는 두 후보가 나름의 색깔을 드러내며 갈등을 통해 단일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단일화 후보간 지지이전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 된다. 안철수 후보가 거듭 강조하고 있다시피 안철수 후보의 지지층과 기존의 야권 지지층이 모두 동의하는 단일화가 이루어져야 정권교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두 후보의 지지자들이 후보에게 요구하는 것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가 권력을 잡는 것 자체는 아니다. 말하자면 두 후보가 권력분점에 대해 합의한다고 지지율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양 후보의 지지층은 한국 정치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가지고 있고 그 견해 위에서 그 후보를 지지한다. 그리고 이 견해가 다소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에 단일화시 이탈하는 층이 생긴다. 이는 두 후보가 러브샷을 하며 정치적 스킨십을 높인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갈등을 빚으며 합의문을 도출하는 등 두 후보가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모습을 보여줄 때 지지층이 정치적으로 납득할 수 있다.
2007년의 기억, 그리고 '진심'의 문제
특히 문재인 후보 입장에서 안철수 후보의 거듭된 압박으로 이해찬 대표 등이 자진사퇴하게 된 상황은 가슴이 아프겠지만 정치공학적 입장에서 볼 때는 일종의 ‘선물’이라고까지 볼 수 있다. 2007년 대선 상황을 돌이켜보자. 그 평가가 얼마나 공정했느냐의 여부를 떠나 당시 참여정부는 ‘역대 최저 인기’라는 참담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열린우리당의 대부분의 의원들이 차기 총선에서의 생존을 위해 당을 떠나려고 안달이었고, 우여곡절 끝에 대통합민주신당이 만들어졌다.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승리한 것은 ‘참여정부를 부정하는 세력과는 연대하지 않겠다’고 말한 이해찬 후보가 아니라 참여정부의 ‘과실’에 대해 반성하고 다니던 정동영 후보였다. 친노성향 지지자들은 정동영 후보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빨리 반성하는 사람’이라고 비아냥댔다. 반성을 요구하면 십 초만에 바로 사과가 나왔다. 참여정부의 공과에 대해 제대로 직시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기 보다는, 평가를 피해가려는 ‘꼼수’와도 같은 몸부림이었다. 그 결과 ‘500만표차 패배’라는 대선 사상 초유의 참패가 나왔다. 사람들은 참여정부도 믿지 않았지만 정동영의 사과도 믿지 않았다. 구체성이 없고 성찰없이 너무 빠른 시간에 나오는 사과는 '진심'이 아니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이명박 정부의 실정은 야권 내에서 ‘친노’계를 다시 부활시켰다. 이제는 또 “사실 참여정부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시 정치권에 합류하고 정치에 대해 발언한다. 그러나 유권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참여정부와 친노는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용인이 되었지 전혀 흠결이 없다고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2007년에 그 공과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참여정부가 저번에 집권했을 때보다 더 잘해서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되돌리고 극복해줬으면 하는 것이 대부분의 유권자들의 심경일 것이다.
문재인 후보의 지지층이 참여정부에 대한 ‘불신’보다 ‘믿음’에 기운 이들이라면, 안철수 후보의 지지층은 ‘믿음’보다 ‘불신’에 기운 이들이다. 이 ‘믿음’과 ‘불신’의 혼합의 정도에 따라 문에게도 기울고 안에게도 기운다. 이 경우 두 지지층이 서로 한 후보를 지지해도 된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서로의 견해를 진심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문재인이 참여정부가 잘했다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공과를 인지하고 더 잘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고, 안철수가 친노를 타파해야 할 낡은 것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정치혁신을 이끌어 갈 주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문재인, 안철수 덕분에 '대인배'의 이미지 획득하다
두 후보의 갈등이 제살 깎아먹기가 되는 것은 이 ‘확신’이 없는 양 후보와 그 지지자들이 서로를 난타할 때다. 단일화 협상 중단 이후 며칠 동안의 상황이 그런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찬 대표의 퇴진과 문재인 후보의 ‘단일화 방식 전면 위임’은 그들이 자기 견해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러한 증명이 유권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을 것이다.
사실 문재인 후보는 오랜 친구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적당한 타이밍에 승부수를 던질 수 있는 타입은 아니다. 그의 장점인 신중함은 만약 집권을 하게 된다면 특장을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와 같은 선거국면에서는 ‘몸이 굼뜨다’는 느낌을 주는 아쉬운 부분이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문재인 후보가 진작부터 ‘친노 2선 후퇴’를 실행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문재인 후보는 이를 실행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승리를 예감한 박근혜 후보 역시 ‘친박 2선 후퇴’를 제대로 실현해내지 못하면서 이 머뭇거림이 결정적인 실책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승부수를 던지지 못하는 문재인 후보에 대해 거듭 안철수 후보가 여러 가지를 요구하면서 그는 안철수 후보의 다소 무리한 요구들을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위해 용인하는 도량이 넓은 캐릭터라는 이미지를 갖추게 되었다. 이는 문재인 후보가 홀로 출마해서는 얻어내기 어려웠을 이미지다. 박근혜 후보와의 양자대결만이 전부였다면 ‘신사다운’ 이미지는 오히려 단점으로 여겨졌을 수가 있다. 하지만 동지도 될 수 있고 적도 될 수 있는 애매한 관계인 안철수 후보와의 협상을 잘 이끌어내면서 그의 장점이 부각되게 되었다. 이해찬 대표가 늦게나마 퇴진한 것은 ‘문재인 후보의 리더십’을 증명해내지는 못했지만, 안후보 측이 공격하는 ‘친노’라는 이들이 단지 권력에 대한 욕망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예선 수습하고 본선 준비해야 할 때
그렇다면, 서로 단일후보가 되기 위한 양측의 자연스러운 활동 및 충돌이 문재인 후보의 ‘늦은 움직임’의 단점을 조금이라도 상쇄해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제는 두 후보의 지지층이 서로를 신뢰하고 정권교체를 원하는 유권자를 포괄하기 위한 어떤 약속들을 던져야 할 때다. 먼저 단일화 협상을 성공시킨 후 시간적으로 길지 않은 양자대결의 국면에서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60% 가까운 유권자들을 규합해낼 수 있는 어떤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난 두 달 동안 점진적으로 고조되어 온 양 후보 지지층 간의 날선 갈등도 자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두 후보의 진정한 상대는 예선이 아니라 본선에서 선수를 기다리고 있다.
한윤형 기자 | ahriman@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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