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8일 수요일

‘26년’ 본 5·18 생존자들…관객석에선 “쏴!”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1-28일자 기사 '‘26년’ 본 5·18 생존자들…관객석에선 “쏴!”'를 퍼왔습니다.

시사회에 참석해 무대인사를 나누고 있는 <26> 제작자인 최용배 청어람 대표와 주연배우 한혜진·배수빈씨, 5·18 생존자인 김공휴씨와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오른쪽부터). 광주/연합뉴스·뉴시스

5·18 진압 책임자에 총구 겨눈 장면에…그날의 울분 터져
생존자·유족 200여명, 영화 ‘26년’ 관람
 광주트라우마센터 주관 시사회
여학생 죽을땐 고개 숙이고
“폭도” 대사에선 개탄의 한숨
“사회 통합

“쏴!”갑자기 극장 객석에서 터져 나온 이 말은 32년간 쌓아온 울분처럼 들렸다. 영화에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의 자녀가 유혈진압 책임자에게 총구를 겨누며 눈물을 흘릴 때, “얼른 (방아쇠를) 당겨!”란 할머니의 소리도 흘러나왔다. 영화 초반에 계엄군의 총에 맞아 여학생이 창자를 쏟아내며 죽는 애니메이션 장면이 나오자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이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폭도였고, (진압은) 자위권 발동이었다”는 영화 속 전직 대통령의 대사에선 개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우리 아이 세살 때 남편이 죽었어요.”기자와 만난 60대 여성 관객 황아무개씨는 1980년 광주 거리에서 남편이 군인들한테 몽둥이로 뒷머리를 맞아 2년 뒤 후유증으로 숨졌다고 했다. “영화처럼 전두환 (전 대통령) 얼굴만 텔레비전에 나오면 가슴이 떨리고 화가 났죠. 영화를 보고 가슴이 아팠어요. 영화에 나오듯 피해자들은 계속 아파하고, ‘그 사람’은 나라가 계속 보호해주잖아요.”27일 광주 시내 극장에서 영화 (29일 개봉·감독 조근현)의 시사회가 열렸다. 5·18 생존자·부상자, 희생자 가족들을 포함한 200여명이 관람했다. 5·18 유족들이 진압 책임자를 단죄하러 나서는 내용의 영화를 5·18 당사자들이 처음 보는 행사였다. 제작진은 개봉 전까지 제작비를 후원한 1만5000 시민들과 그 지인들에게 영화를 미리 보여주는 3만1000명 초대 시사회를 진행하고 있다.80년 시민군으로 전남도청을 지킨 김공휴(53)씨는 관람 뒤 “망월동 묘역에 묻힌 영령들이 제작진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을 것”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그 사람을 처단하고 싶은 우리 마음을 표현해줘서 후련했어요. 주인공 ‘진배’(진구)처럼 나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있는 곳으로 습격을 갔다가 붙잡혀 쓰레기 매립장에 버려진 적도 있습니다. 영화에 나오듯 광주 사람들은 폭도도 아니고, 빨갱이가 아닌데도 아직도 폭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피해 당사자들 중엔 여전히 술에 기대 고통 속에 사는 분들도 있지요.”이번 행사는 5·18 유족과 생존자들의 정신적 후유증을 치유하는 ‘광주 트라우마센터’가 주관했다. 센터 참가자들은 “고문당하는 꿈을 꾸며, 5월의 꽃을 보고 피 흘리던 그날을 떠올린다”며 고통을 호소한다고 한다. “전남도청 앞 나무한테 ‘나무야, 너는 다 보지 않았냐. (우리가 얼마나 죽었는지) 네가 본 걸 말해다오” 하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센터 쪽은 “5·18 유혈진압으로 4154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이후 후유증으로 46명이 자살을 했다”고 밝혔다.전직 대통령에게 총을 겨누는 사격선수 심미진 역을 맡은 한혜진씨는 시사회에 참석해 “유족들의 아픔을 과연 내가 얼마나 공감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 두렵고 겁도 났다”고 토로했다. 그는 “영화 마지막에 크레인에 혼자 고독하게 올라 총을 쏘며 총성소리를 들었을 때 너무 커서 무서웠다. 희생자분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여전히 5·18로 아파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다”고 말했다.고등학교 3학년이던 80년에 다리에 총을 맞아 부상을 당한 강구영(51)씨는 “‘그 사람’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반성하지 않고, 영화처럼 5·18 희생자의 자녀들이 직접 단죄에 나설 수밖에 없는 사회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5·18 때 고등학생으로 전남도청 사수대로 참여한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도 진압 당사자의 사죄가 필요하다고 했다.“용서를 하느냐 여부는 피해자의 선택 문제이지만, 가해자의 사과는 피할 수 없는 의무입니다. 잘못한 사람이 유혈진압의 진실도 말하지 않고 사죄도 하지 않고 있어요. 우리 사회가 화해와 통합으로 가려면 5·18 유혈진압에 대한 진상규명과 가해자 사과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가해자 단죄의 짐까지 5·18의 2세들에게 맡길 순 없어요.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합니다.”시사회가 끝난 뒤, 배우들과의 대화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극장 화면엔 제작비를 후원한 시민들의 이름이 끝없이 흘러갔다.

광주/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