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9일 목요일

안철수의 ‘하루’는 민주화 위한 1년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11-28일자 기사 '안철수의 ‘하루’는 민주화 위한 1년'을 퍼왔습니다.

18대 대통령 선거일까지 딱 스무날이 남았다. 1987년의 13대부터 2007년의 17대 대선까지는 세 명 이상의 유력한 후보들이 경쟁하는 구도였지만, 이번에는 새누리당의 박근혜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이 맞서는 단순한 대진표가 짜졌다.

지난 23일 무소속 후보 안철수가 사퇴 선언을 한 뒤 닷새 동안 시행된 다양한 여론조사를 보면, 박근혜가 문재인을 오차범위 안에서 앞선다는 결과가 더 많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 발표된 리서치뷰의 여론조사(오마이뉴스 의뢰, 28일 발표) 결과를 보면 문재인 47.2%, 박근혜 46.8%로 초박빙이다. 

진보나 보수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매체는, 안철수를 지지하다가 부동층으로 돌아선 사람들 가운데 7~8%가 어느 쪽에 표를 몰아주는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래서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은 안철수가 문재인과 등을 지거나 최소한 소극적으로 지원하기를 ‘열망’하고 있다. 

보도를 보면, 지방의 어딘가에서 쉬면서 앞으로 어떤 정치적 활동을 할 것인지를 구상하고 있던 안철수는 28일 비공개로 서울에 와서 캠프 핵심 관계자들과 오찬을 했다. 그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할 때 제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 지지해주시는 분들의 입장에서 판단하겠다"고 말했는데, 선거를 어떻게 도울지에 관해 구체적인 계획을 짜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의 진중하고 여유 있는 자세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지금 안철수가 ‘소비’하는 하루는 민주화의 앞날을 위해서는 1년이나 다름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안철수에게는 정권교체를 위해 최전선으로 나가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문재인은 안철수가 사퇴를 선언하자 ‘미안하고 감사하다.’라고 짤막하게 인사를 전한 뒤 한동안 기다렸다가 “안철수 캠프와 공동으로 선대위를 구성하겠다.”라고 발표했다. 안철수가 선대위 대표를 맡을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가 정권교체를 통해 민주정부를 세우는 과정에서 대중을 상대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안철수는 ‘사퇴 선언’을 통해 “제게 주어진 시대의 역사와 소명을 결코 잊지 않고 온몸을 던져 어떤 가시밭길이라도 온몸을 던져 가겠다.”라고 약속했다. 

나는 그 가시밭길에 들어서는 첫걸음이 문재인과 합동유세에 나서면서 안철수의 ‘단독 토크 콘서트’를 병행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익히 알려졌듯이 안철수는 20대부터 40대까지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정치인이다. 그리고 젊은 가정주부들 다수도 그를 열렬히 지지한다. 그가 열정적인 자세로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면 지지자 대다수가 후보 사퇴에 대한 실망감과 상실감에서 벗어나 정권교체를 위해 투표장으로 달려갈 것이 분명하다. 

이번 대선은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통합당이라는 큰 정당과 안철수가 대표하는 ‘쇄신 지향의 새 정치세력’이 합심해서 국민연대를 이루어 민주적으로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런 정부는 대통령 혼자서 지배할 수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 4년 9개월은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부패한 권력과 금권, 민족공동체를 파괴하는 무모한 술수, ‘승자독식’의 비인간적 교육이 어지럽게 춤을 춘 난세(亂世)였다. 박근혜는 나라와 겨레가 이렇게 수렁에 빠진 데 대해 전혀 책임이 없는듯한 언동을 보이고 있지만, 그것은 집권당을 이끌어온 당사자로서 염치가 없는 일이다. 

나는 안철수의 요즘 하루가 민주화를 위해서는 1년이나 마찬가지라고 보는 까닭을 일본의 현대사에서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중국 침략과 태평양전쟁으로 아시아를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의 ‘극동 방어정책’에 힘입어 목숨을 건지고 지배세력의 자리를 더 굳혔다. 나치세력을 청산한 프랑스, 독일과는 정반대 길로 치달았던 것이다. 일본에서 진보적 정치세력이 두어 번 집권한 적이 있지만 그릇된 과거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이렇다 할 개혁을 추진하지도 못한 채 물러나고 말았다. 

1968년 7월 일본의 극좌 세력 ‘전공투’가 동경대 강당을 점거하고 ‘반미, 반체제, 반전’ 등 구호를 외치며 농성하다가 이듬해 1월 중순 경찰에 진압당한 이래 그 나라의 청년·학생운동은 자취를 감추었다. 대중의 동조를 얻을 수 없는 극한적 투쟁방식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정치적 역동성을 볼 수 없게 된 일본에 비하면 한국의 젊은이들은 민족사에 중요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활기차게 대처해 왔다. 근자에 한국의 ‘20·40세대’ 가운데 압도적 다수가 이번에 정권교체를 갈망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지배적으로 많다. 한국이 일본처럼 정치적 퇴행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강한 지표로 보인다. 20·40의 ‘아이콘’ 안철수가 하루라도 빨리 그들 앞에 나서서 “5·16쿠데타 이래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극소수 특권층의 지배를 강화해온 세력을 이번 대선에서 응징하고 진정한 민주정부를 세우자!”라고 외치면 젊은이들이 뜨겁게 호응할 것이다.

오는 12월 19일은 대한민국의 힘찬 도약은 물론이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도 유권자들이 슬기로운 결단을 내려야 할 역사적인 날이다. 박정희 정권 이래 지금까지 해직되거나 징계당한 언론인 2천여 명은 그날 밤 개표 결과를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안철수가 내일이라도 선거의 최전선에 나서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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