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8일 수요일

PD수첩 ‘검사와 스폰서’ 뒷 이야기가 궁금하세요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1-28일자 기사 'PD수첩 ‘검사와 스폰서’ 뒷 이야기가 궁금하세요'를 퍼왔습니다.
PD수첩 제작진 프로그램 탄압사 담은 ‘응답하라! PD수첩’ 책 발간해…취재 뒷이야기도 공개

"어떻게 보면 프로그램을 말살시킬 수 있는 하나의 메뉴얼이 되지 않을까 걱정도 든다. 이런 식으로 하면 모든 프로그램, 모든 언론이 말살될 것이다"
'PD수첩에 가해진 폭력과 저항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달린 '응답하라! PD수첩'이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조능희 전 PD수첩 PD가 한 말이다.
PD수첩 제작진들이 지난 2008년부터 현재까지 PD수첩 탄압사를 담아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조능희 PD의 말처럼 27일 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는 PD 수첩 전직 PD들이 모여 국민에게 PD수첩의 잔혹사를 보고하는 자리가 됐다.
이들의 처지는 그 자체로 PD수첩의 현재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기자회견 앞에 선 한학수 PD는 지난해 5월 시사교양국에서 경인지사 수원총국으로 쫓겨난 후 부당전보가처분신청에 승소해 시사교양국 PD로 복귀했지만 파업 이후 대기발령을 받고 현재 MBC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을 찾아서), (검사와 스폰서) 방송으로 정국에 파장을 일으켰던 최승호 PD는 지난 7월 해고를 당했다. 조능희 PD는 지난 2008년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가) 아이템을 방송한 후 명예훼손으로 기소됐고 4년여 간의 소송 끝에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조 PD는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고, 현재는 사회공헌실에서 방송경영 일을 하고 있다. 자리를 함께한 정재홍 작가는 지난 여름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며 다른 PD수첩 작가 5명과 함께 해고 조치됐다.
PD수첩은 지난 1월 방송 이후 현재까지 불방이 되고 있다. PD수첩 작가를 해고하고 이에 항의해 PD들이 제작을 거부하자 MBC 경영진은 시용PD와 시용작가들을 채용해 12월초 '가짜 PD수첩'을 제작하고 있다.
'응답하라! PD수첩' 은 PD수첩 제작진의 고뇌를 바탕으로 부당한 압력을 담담히 고백하는 형식이지만 내용이 만만치 않다. 책을 엮은 이유가 "한국 언론에서 다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기록을 생생하게 남겨야 한다"고 밝힌 것처럼 탄압에 맞선 언론인들의 저항의 역사로 기록될만한 가치도 높다.
방송에서 하지 못한 뒷이야기도 생생히 전하고 있다. 임채원 PD는 "아줌마 하나 크레인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거 아무도 신경 안쓴다...(중략)...그리고 내가 OK를 해도 윗선에서 안 되게 할 것이다라는 얘기를 들었죠"라고 털어놨다. 한진중공업 사태 당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 지도위원의 크레인 농성에 대한 MBC 경영진의 날것 그대로의 인식을 보여준다. 
지난해 5월 미군이 부대에 고엽제를 파묻었다는 폭로가 나온 후 PD수첩이 취재에 나서 우리 군인들과 노동자들을 동원해 철모에 고엽제를 담아 맨손으로 뿌리게  했다는 증언까지 확보하고 아이템으로 보고했지만 하루 만에 보류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PD수첩 팀장은 김환균 PD에게 "김 PD 고엽제 그걸로 방송하면 시청률이 얼마나 나올 거 같아?"라고 물었고 "7%는 나오지 않을까 싶다"라고 하자 "그럼 말이야 7%가 안 나오면 인사 조치를 감수할 자신 있어?"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책에서는 "도대체 시청률을 가지고 인사 조치를 운운하며 협박을 한다면 어떤 PD가 도전적이고 실험적으로 방송을 만들 수 있겠냐며 항의했다. 국장은 대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응답하라! PD수첩'은 PD수첩 탄압사이면서도 역설적으로 어떤 인물이 탄압에 나섰는지를 폭로하고 있는 셈이다.
PD수첩이 지난 2009년 1월 용산 참사 당시 프로그램을 긴급편성해 방송을 나흘 앞두고 있을 때 경찰청 대변인실 홍보담당관을 포함한 2명의 경찰이 PD수첩 사무실을 방문하는 일도 있었다. 이미 방송 일주일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소속 이모 행정관은 "용산 참사 사건이 촛불로 번지지 않도록 강호순 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이메일을 경찰청 홍보 담당관에게 발송해 파문이 일었는데 PD수첩을 찾은 경찰관은 "군포(강호순 사건) 쪽을 좀 불리시고 용산 건을 약하게 하시면 안 될까요"라며 사실상 보도 축소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 PD수첩 제작진이 지난 27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아이템 및 방송 불방 압력과 취재 뒷이야기를 담은 <응답하라! PD수첩(휴먼큐브)>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PD수첩 제작진이 지난 27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아이템 및 방송 불방 압력과 취재 뒷이야기를 담은 <응답하라! PD수첩(휴먼큐브)>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섹검'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파문을 일으켰던 (검사와 스폰서)편 취재 후기는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방송 이후 특검 수사까지 진행하고 재판까지 열렸지만 재판 이후 입수한 판결문을 통해 검찰이 성접대를 받은 것을 PD수첩 방송 이전에 이미 인지하고도 스스로 자정시킬 기회를 차버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7월 부산 동부경찰서는 정용재씨를 변호사법 위반으로 수사하던 중 정씨가 검사들을 접대한 정황을 파악해 통화내역을 확인하기 위한 청구서를 부산지검에 보냈다. 하지만 부산지검은 "정씨와 검사들의 최근 통화내역은 정씨의 범행과 직접 관련이 없다"면서 이에 대한 수사를 중단했고 정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검사 접대 기록이 적힌 수첩을 찾아냈지만 수사는 하지 않았다.
또한 지난 2009년 8월에도 정씨가 부산지검에 검사 접대 내용을 밝히는 정식 진정서를 접수했지만 진정 사건을 맡은 서모 검사는 정씨와 한차례 전화통화를 했을 뿐 사건 종결 전 작성한 보고서에서 부산지검 접대 건을 빼버렸다.
지난 2010년 1월 정씨로부터 사건 내용을 전해들은 최모씨가 대검찰청에 접수했을 때는 고소장에 스폰서의 접대를 받은 것으로 명시된 한모 감찰부장에 고소장이 보고돼 고소 내용을 부인했고 다시 부산지검에 이첩시켰다. 그런데 부산지검에 도착한 고소장은 정씨로부터 접대를 받은 이모 검사에게 배당돼 흐지부지되고, 정씨가 다시 진정서를 접수시켰지만 진정서를 이미 한차례 종결시켰던 서모 검사에 배당돼 아무런 수사 없이 또다시 진정서를 종결 처리해버렸다.
정씨는 세차례에 걸쳐 법적 처벌을 감수하면서 검찰을 찾았지만 묵살되면서 결국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PD수첩이었다.
(검사의 스폰서)편을 제작한 최승호 PD는 "스스로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여러 기회를 검찰이 전부 다 깔아뭉개버렸다. 제보자가 갈데가 없으니까 결국은 PD수첩으로 오게 된 것"이라며 "만약 검찰에서 이 사건에 대해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면 오늘날 검찰의 모습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PD수첩 탄압사를 담은 이번 책은 언론의 기능이 망가졌을 때 권력을 견제할 수 없고 결국 국민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돌아간다는 진실을 담고 있는 셈이다.
한학수 PD는 "우리가 좌천되고 해직된 것은 개인의 불행이지만 그 아픔은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견제 받지 못한 검찰, 경찰이 얼마나 부패하고 국민들을 무시하는가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며 “현 제작진으로서 우리가 가진 조그마한 양심의 소금 한 조각을 국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 PD수첩 제작진이 지난 27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아이템 및 방송 불방 압력과 취재 뒷이야기를 담은 <응답하라! PD수첩(휴먼큐브)>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에 더해 김재철 사장 체제의 MBC의 망가진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으로서 PD수첩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가짜 PD수첩'이 되지 않도록 지속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12월 11일 방송이 예정된 것으로 알려진 PD수첩에 대한 우려도 크다. MBC 경영진은 시용PD와 시용작가들을 동원해 PD수첩 방송을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해고를 당한 정재홍 PD수첩 작가는 "6명 작가 전원을 해고한 것은 PD수첩이 축적한 인프라 자체를 없앤다는 것"이라며 "PD수첩의 성역없는 비판 정신을 말살하고 새로운 PD수첩을 만드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PD수첩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시청자로부터 MBC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정영하 MBC 노조 위원장은 "대선 방송을 편파 방송으로 일관하는 것을 국민들이 용서치 않을 것"이라며 "다시 MBC를 세워야 하는데 그 시금석이 뉴스데스크와 PD수첩이 제자리로 돌아가 제 역할을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진 기자 | jinpress@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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