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30일 금요일

"영애 박근혜, 기부금 낸 기업 민원해결 요청"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11-30일자 기사 '"영애 박근혜, 기부금 낸 기업 민원해결 요청"'을 퍼왔습니다.
[인터뷰] 의문사위 전 조사관이 살려낸 '김정렴 중대증언'

 
▲ 고상만 전 의문사위 조사관이 최근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을 펴냈다. ⓒ 구영식·돌베개

고상만 전 의문사진상규명위 조사관이 최근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을 펴냈다. 의문진상규명위에서 '장준하 의문사 사건'를 조사했던 그가 장준하 의문사의 진실을 추적한 책이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책을 다 읽고 나니 장준하 선생의 억울한 죽음의 실체가 그냥 눈앞에 분명하게 다가왔다"고 호평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관련한 '중대 증언'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9년 3개월(1969~78년) 동안 박정희 대통령을 보좌한 김정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퍼스트레이디 시절 박근혜가 최태민 목사의 구국선교단에 기부금을 낸 기업체 명단을 주면서 그 기업들의 민원을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증언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구국선교단에 기부금 낸 기업 민원 해결해 달라고 요청"

▲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 연합뉴스

고상만 전 조사관은 지난 2004년 2월 20일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김정렴 전 비서실장을 만났다. 2차에 걸친 출석요구에 반응을 하지 않자 직접 전화를 걸어 어렵게 마련한 자리였다. 

고상만 : "박정희 대통령이 장준하 선생님에 대해서 언급하거나 이야기하신 것을 들으신 적이 있었나요?"김정렴 : "박 대통령은 남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코멘트하는 법이 없습니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 동분서주하며 정신없이 살던 그때, 장준하라는 사람을 우리가 알 필요가 없었고 그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고상만 : "그럼 박 대통령은 장준하의 사망에 대해 알고 있었나요?"김정렴 : "모르지요."

고상만 : "박정희 대통령이 장준하의 사망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까?"김정렴 : "모르지요. 박 대통령도 신문 읽으시고, 텔레비전 보시니까."

장준하 사망 문제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보고 여부, 박 대통령의 반응과 지시사항 등 고 전 조사관이 얻고자 했던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조사가 다 끝난 뒤 사담을 나누는 과정에서 '중대한 증언'이 나왔다. 청와대에서 9년 3개월 동안 모셨던 박정희 대통령을 언급하길 극도로 꺼렸던 그가 박근혜 후보와 관련한 내용을 꺼낸 것이다. 고 전 조사관은 자신의 책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에서 그날 그의 증언을 이렇게 기록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던 어느 날이었다고 한다.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서거한 후 그 뒤를 이어 '퍼스트레이디'로 활약하던 박근혜 후보가 자신에게 뭔가를 적은 메모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메모를 살펴보니 기업체 이름이 세 개 적혀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김정렴이 '이것이 뭐냐'고 묻자 (박근혜 후보가) '구국선교단에 기부금을 낸 기업체 명단'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기업들이 바라는 민원을 원하는 대로 해결해 달라'는 말을 자신에게 했다는 것이다."([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254~255쪽)

김 전 실장의 증언은 퍼스트레이디였던 박 후보가 구국선교단의 자금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섰음을 보여준다. 그만큼 두 사람의 관계가 밀접했다는 것이다. 구국선교단은 최태민 목사가 만든 단체로 나중에 '대한구국봉사단'(1976년) '새마음봉사단'(1978년) 등으로 이름을 바꿨다. 박 후보는 최 목사가 지난 1975년 5월 임진강에서 연 구국기도회에 참석한 뒤 구국선교단의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1970년대 말 최 목사를 조사한 뒤 작성한 중앙정보부의 최태민 수사자료에는 "박근혜의 후원으로 구국봉사단을 설립, 매사 박근혜 명의를 팔아 이권 개입 및 불투명한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다"고 적시돼 있다. 선우련 전 공보비서관도 1977년 9월 20일 자 비망록에다 "9월 12일 밤 대통령은 근혜양과 김재규 중정부장 및 백광현 정보부7국장을 배석시킨 가운데 구국봉사단 최태민의 부정부패와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친국을 했다"고 적었다. 

"9년 3개월 비서실장의 증언, 박 후보가 부인할 수 있을까"

▲ 김정렴 전 비서실장의 정치회고록 <아, 박정희>. ⓒ 중앙M&B

지난 28일 지하철 3호선 화정역 근처에서 기자와 만난 고상만 전 조사관은 "김정렴 전 실장의 증언은 최태민 목사가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자금책'이었고, 박근혜 후보는 그 돈을 낸 기업들의 민원을 해결해주는 '해결사'였음을 확인해주는 최초의 사례"라며 "9년 3개월이나 박정희 대통령을 보좌한 비서실장의 증언을 박 후보가 부인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고 전 비서관은 "김 전 실장이 구국선교단에 기부금을 낸 세 기업의 명단을 들려줬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라며 "건설회사 2곳과 섬유회사 1곳이었다는 얘기만 기억난다"고 말했다. 

당시 김 전 실장은 고 전 조사관에게 "박근혜에게 들은 얘기를 각하에게 직접 보고했는데 각하가 대로했다"며 "이러한 사실을 안 박근혜가 나를 많이 미워했다"고 말했다.  

고 전 조사관은 김 전 실장으로부터 나온 '뜻밖의 증언'을 반신반의했다. 그는 "김 전 실장이 장준하 의문사와 관련한 얘기를 하지 않기 위해서 엉뚱한 얘기를 한다 싶었다"며 "하지만 김 전 실장에게 받은 그의 회고록을 나중에 읽고서 그의 얘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고 전 조사관이 김 전 실장을 조사하기 전 그에게 받은 책은 (아, 박정희)(1997년·중앙M&B)였다. (아, 박정희)는 김 전 실장의 '정치회고록'으로 그의 '경제회고록'인 (한국경제정책 30년사)(중앙M&B)와 짝을 이루는 책이다. '정치자금과 친인척 관리'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의 6장에는 그가 고 전 조사관에게 들려준 얘기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육 여사 서거 후 큰 따님 근혜씨가 충효사상 선양운동을 시작했는데 이때 최모라는 목사가 구국선교단을 조직해서 가세하였다. 하루는 큰 따님으로부터 구국선교단을 지원하고 있는 어느 건설회사와 섬유공업회사의 현안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나는 딸로서 아버지 박 대통령을 돕겠다고 순수하게 충효선양운동을 시작한 큰 따님이 구국선교단에 이용될 위험성이 크다고 생각되어 즉각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만약 대통령이 보기에도 큰 따님에게 자금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비서실장이 자금을 추가로 마련하여 드릴 터이니 대통령이 큰 따님에게 직접 지원하되 그 대신 큰 따님에게는 금전문제에 개입되는 일이 없도록 원천봉쇄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다. 박 대통령은 나의 건의에 전적으로 찬성했다."([아, 박정희] 244쪽)

김 전 실장은 이 책에서 "나는 박 대통령의 양해를 얻어 모든 수석비서관들에게 구국선교단에 이용당하지 말도록 당부했다"며 "그후 박 대통령으로부터 추가자금조달 지시가 없었으며 박승규 민정수석비서관은 구국선교단의 동정을 살펴 큰 따님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많은 애를 썼다"고 전했다. 

▲ 김정렴 전 비서실장의 정치회고록인 <아, 박정희>에는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 목사의 관계를 보여주는 일화가 소개돼 있다. ⓒ 중앙M&B

"박근혜 후보, 김정렴 증언의 사실 여부에 답변해야"

고 전 조사관은 "김 전 실장이 박 후보에게 민감한 얘기를 이렇게 책에다 기록해놓은 것은 박 후보가 정치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고, 자신이 비서실장으로서 이렇게 친인척 관리를 철저하게 했다는 치적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아, 박정희)가 출간된 것은 박 후보가 정치에 입문하기 직전인 지난 1997년 6월이었다.     

고 전 조사관은 "박 후보는 그동안 최태민 목사·구국선교단과 관련한 의혹을 부인하거나 '나와는 관련없는 일'이라고 말해왔다"며 "하지만 김 전 실장의 증언은 박 후보의 해명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내가 김 전 실장의 증언을 공개하는 이유는 전 국민에게 진실을 속이는 후보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 후보가 전 국민을 속이고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래서 김 전 실장의 증언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박 후보는 답변해야 한다."

고 전 조사관은 자신의 책에도 "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이 내게 들려준 그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이는 그동안 알려진 박근혜 후보의 주장이 실은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지는 최초의 사례가 아닌가"라고 적었다.

구영식(ys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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