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7일 화요일

“전국 상인들 죽겠다는 아우성 안 들리나”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1-27일자 기사 '“전국 상인들 죽겠다는 아우성 안 들리나”'를 퍼왔습니다.
[현장] 유통법 개정안 처리 무산 “중도성향 상인들 분노…캐스팅보트 쥐겠다”

지난 23일 오후 찾아간 합정역 인근에 세워져 있는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마포구 주민대책위원회’ 농성 천막에는 망원 시장 상인이 농성 교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망원시장과 월드컵시장 상인들은 하루 2시간씩 교대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망원시장에서 토스트와 김을 판다는 도형률(39)씨는 하루 전인 22일 국회에서 유통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됐다는 소식을 듣고 “지식경제위에서 여야가 합의해서 당연히 통과될 줄 알았다”며 “법사위에서 반대할 줄은 예상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서 여야는 현행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월 2일에서 3일로 늘리고 영업시간제한도 현행 자정~오전 8시에서 오후 10시~오전 10시로 4시간 늘리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을 합의해 통과시켰다.
그러나 지난 22일 새누리당이 영업제한 시간을 다시 ‘자정~오전 10시’로 조정하자고 주장하면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 상정이 무산됐다. 여야 간 극적 합의가 없는 이상 유통법 개정안 연내 처리는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 마포구의 망원시장과 월드컵시장 상인들은 대책위를 꾸리고 지난 8월 10일부터 합정역 인근 메세나폴리스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메세나폴리스 지하에 홈플러스가 입점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 지난 23일 오후 찾아간 합정역 인근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마포구 주민대책위원회' 농성장. 천막 뒤로 메세나폴리스 건물이 보인다. ⓒ조현미 기자

현재 6호선 지하철로 합정역에서 네 정거장 떨어져 있는 월드컵경기장역에는 홈플러스가 있다. 매장규모는 4800여평으로 홈플러스 매장 가운데 전국 매출 1위로 알려졌다. 합정역에 입점을 준비하고 있는 홈플러스 매장 규모는 4300여평이다.
망원시장에서 12년 동안 캐주얼 의류를 팔고 있는 김지선(48)씨는 “상암동(월드컵경기장역) 홈플러스가 들어와 있는데 여기(합정역)까지 들어오면 타격이 크다”며 “법사위에서 통과가 안 되자 우리집 아저씨는 난리가 났다. 어딘가 항의전화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유통업체에서 뭔가 있었으니까 새누리당에서 뒤집어엎은 것 아니겠냐”며 “대형마트도 문제지만 대기업들도 문제”라고 말했다. 메세나폴리스에는 의류 브랜드인 유니클로가 입점해있다. 김씨처럼 옷을 파는 자영업자 입장에선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전통시장은 대선 후보들이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다. 천막농성장을 찾은 이날에도 신문 지면(경향·국민·서울·세계·조선·중앙)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22일 경기 고양 능곡시장을 방문한 사진이 실렸다. 김씨는 “여기 농성장에도 문재인 후보만 두 번 왔다 갔다”며 “박근혜 후보는 한 번도 못 오시던데 왜 못 오는 거냐”고 반문했다.

▲ 지난 23일 세계일보 5면 사진기사.

김씨가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망원시장은 합정역과 월드컵경기장역 중간 쯤에 위치하고 있다. 망원시장이 끝나면 다시 길 건너 월드컵시장이 이어진다. 252미터 길이의 망원시장에는 88개, 월드컵시장에는 52개의 점포가 있다. 
이날 오후 찾아간 망원시장과 월드컵시장은 평일 낮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장을 보러 나온 주민들로 북적거렸다. 상인들에게 말을 걸기 어려울 정도였다. 시장 중간 중간은 주택가로 바로 연결돼 있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였다.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결사반대’라고 적힌 형광색 조끼를 입고 장사를 하는 상인들도 눈에 띄었다. 곳곳에 ‘홈플러스 입점되면 시장매출 40% 감소’, ‘골목상권 집어삼키는 거대자본 규탄한다’는 현수막이 보였다.
월드컵시장의 한 건어물 가게에서 만난 주민 정복진(71)씨는 “홈플러스에서 1만원인 것도 여기는 5000~6000원이면 산다”며 “값도 싸고 싱싱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재래시장까지 안 온다”고 말했다.
정씨는 “딸이 하는 얘기로 지하철역 바로 옆에 있는 홈플러스(SSM)는 저녁 8시만 되면 사람들이 계산하려고 줄을 선다”며 “시장보다 더 비싸도 지하철역 바로 옆이니까 젊은 사람들이 다 들어간다”고 전했다.
정씨와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던 한 상인은 “처음 월드컵경기장에 대형마트(당시 까르푸)가 생기고 나서 두 달 동안 시장에 사람이 없었다”며 “10년도 더 된 일인데 당시 일이 생각나서 이번에는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 지난 23일 오후 망원시장. 장을 보는 주민들로 북적거린다. ⓒ조현미 기자

서울시가 의뢰한 한누리 창업 연구소의 상권조사에 따르면 홈플러스 합정점이 입점할 경우 2.4km 반경 내에 홈플러스 매장이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3개를 포함해 5개로 늘어난다.  
중소상인들은 이번에 유통법을 개정하면서 현재 등록제로 운영되고 있는 대형마트를 허가제로 바꾸자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망원시장상인회에서 만난 김진철 비상대책위 총무는 유통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3일 동안 국회에 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개정안에 허가제를 넣자고 요구했지만 지경위에서 잘렸고, 최소한 영세상인을 도와주자고 여야가 합의를 한 것인데 법사위에서 막혔다. 분명히 대형마트의 로비가 있었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법사위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이 최근 한 발언을 상기하며 “법사위에서 막을 이유가 없다”며 “상임위에서 여야가 합의해서 올라온 법안을 교통정리만 하는 위원회에서 막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성토했다.
권 의원은 최근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며 “법사위는 해당 상임위에서 올라온 안건을 존중한다”며 “법사위의 역할은 법의 체계와 자구 심사”라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후보들이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지만 전국의 상인들이 죽겠다고 아우성하는 소리는 안 들리나 봅니다. 상인들은 분노한 상태입니다. 정치하는 분들이 우리가 죽어가는 소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 월드컵시장 입구. 홈플러스 입점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조현미 기자

그는 “상인연합회에서 뭉쳐서 크게 이의제기를 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이런 처우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세를 보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고 전했다.
“그동안 상인들은 중도성향이 많았습니다. 스스로 노력해서 벌고 먹고 사는 사람들이어서 중산층이라고 자부했지요. 여든 야든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형마트로 인해 상인들이 벌어 먹고 살아야 할 돈이 대형마트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영업제한 시간이 4시간 늘어나면 업계 매출 손실이 8조원이라고 합니다. 그 돈을 어디서 빨아갔겠습니까.”
업계에 따르면 자영업자는 600만명에 달한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하면 어림잡아도 2400만명이 자영업자 가족이다.
김씨는 “갈수록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야 할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어 최후의 수단으로 자영업을 하고 있다”며 “자영업자는 늘고 갈수록 장사는 안 된다. 600만 자영업자들이 이번 대선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기 위해 세 규합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미 기자 | ssal@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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