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8일 수요일

백령도초병 “천안함좌초 중대상황실서 전달받아”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1-27일자 기사 '백령도초병 “천안함좌초 중대상황실서 전달받아”'를 퍼왔습니다.
[천안함 공판중계] 김승창 상병, 사고현장 인근 “섬 전체에 관측초소 있다…물기둥 못봐”

천안함 침몰사고 당시 현장을 유일하게 목격한 것으로 알려진 백령도 해병대 소속 초병이 사고 직후 ‘PCC(초계함·천안함)가 좌초됐다’는 보고를 해병대 소속 중대본부로부터 전달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에 따라 천안함이 백령도 서해상에서 두동강 나 침몰된 초기 상황에 대해 천안함-2함대사령부-합동참모본부 뿐 아니라 해병대에서도 좌초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천안함 사고가 발생한 2010년 3월 26일 밤 9시22분 당시 백령도 서해안 247초소에서 근무했던 김승창 상병(전역)은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박순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전 천안함 민군합조단 민간위원)의 명예훼손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진술했다.
당시 해병대 6여단 62대대 6중대 소속이었던 김씨는 이날 법정에서 “당시 해안 경계작전에서 초병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밤 9시23분경 두무진 돌출부에 가깝고 (서쪽을 정면으로 볼 때) 2~3시 방향(북서방향)에 가까운 곳에서 ‘쾅’소리와 함께 하얀불빛이 보였다”며 “불빛이 희미하게 퍼져있다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당시 근무는 김씨와 박일석 당시 상병(전역)이 근무하면서 상황을 함께 목격했다.
김씨는 당시 상황을 인지한 직후 곧바로 6중대 상황실에 ‘낙뢰’라고 보고한 이유에 대해 “당시에 해상에 큰 소리가 들렸는데 평소 낙뢰가 떨어질 때 그런 현상이 있다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고했다”며 “당시에 불빛을 봤을 때 밝아졌다가 사라지는 모습만 봤다. ‘쾅’하는 아주 큰 소리가 한차례 들렸다. 낙뢰로 추정했다”고 밝혔다.

구글어스의 백령도 서해상 지도에 합조단 발표 사고지점과 KNTDS상 최종 소실지점, 백색섬광 발화예측지점 등을 표시한 것.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변호인단

김씨는 물기둥을 봤느냐는 신문에도 “보지 못했다. (합조단에서 조사받을 때도) 일관되게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강조했다. 하얀 불빛이 수중폭발에 의해 생긴 물기둥이 아니라 낙뢰였다고 것이다. 김씨와 박일석 당시 상병이 목격한 하얀 불빛을 두고 국방부 합동조사단은 최종보고서에 “물기둥”이라고 기술했었다.
특히 김씨는 사고 발생 직후 중대 상황실에서 PCC(초계함:천안함의 정식 명칭 ‘PCC 772 천안’)가 좌초됐다는 상황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김씨는 “당시 PCC가 좌초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사고직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PCC가 좌초됐다고 들었다. 중대본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PCC 좌초 상황이라는 얘기를 들은 경위에 대해 “(사고발생 상황을 보고한 뒤 중대본부에)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PCC가 좌초됐다, 비상상황이다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중대본부 상황 근무를 서고 있던 장교 또는 사관 상황병 중 한 사람한테 전달받았는데 누구인지는 정확하지 않다”고 증언했다.
앞서 김씨는 사고직후인 2010년 4월 2일 작성한 진술서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247초소에 근무자가 계속 근무했고 이후 ‘PCC 좌초 인지후’ 연화리 쪽으로 중대본부 인원이 전투배치했다고 들었다”고 진술했었다. 김씨가 들은 곳이 중대본부였다는 것.
이후 김씨와 박일석 상병은 지시에 따라 ‘좌초된 PCC’에 탐조등을 비췄다고 김씨는 전했다. PCC에 탐조등을 비추라고 지시한 것도 중대상황실이었던 것같다고 김씨는 밝혔다. 김씨는 당시 PCC에 대해 “(우리가 본 것은) 그 정도 크기이면 PCC 정도되는 배로 추정했다”며 “야간엔 민간어선이 없다”고 밝혔다.

천안함 함미

김씨와 박 상병이 당시 탐조등을 비춘 PCC의 위치 역시 국방부 합조단이 발표한 사고지점(폭발원점-백령도 서방 2.5km)와 크게 차이가 난다. 탐조등을 비춘 위치에 대해 김씨는 “(두무진) 돌출부에서 정반대 방향이었다. (서해를 정면으로 보고) 9시 방향(정남쪽) 정도였다”며 법정에 게시된 해도 상에 변호인이 지목한 위치를 보고 답했다. 이는 거의 해안에 인접한 곳이며 위치도 연화리 남쪽에 해당되는 곳으로 합조단이 발표한 사고지점과는 크게 다르다.
이와 관련해 사고 이틀 뒤(2010년 3월 28일) 작성된 박일석 상병의 진술서에 따르면, “9시30분경 247초소 기준 방위각 170도 2km 지점에서 해군함정 3척이 와서 구조했다. 해안탐조등으로 247초소 근처 해안을 비추면서 해군들이 이쪽으로 올 수 있게 비췄고, 생존자가 있지 않을까 탐조등을 계속 비췄다. 그 후 247초소 방위각 3km 지점으로 해군함이 계속 와서 ‘좌초된 PCC’를 구조”했다고 기재돼 있다.
한편, 당시 상황을 목격한 247초소 외에도 백령도 북쪽해안가(두무진)부터 남쪽해안가에 이르는 전 지역에 관측초소가 있는 것으로도 밝혀졌다. 김씨는 ‘두무진 쪽에서부터 백령도 아래 쪽 끝까지 관측초소가 있느냐’는 변호인 신문에 “있었던 것으로 안다. 섬 지역에는 초소가 전부 있다”며 “모두 우리 중대(6중대 관할)였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백령도 연화리에 설치된 천안함위령탑 사고지점을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조현호 기자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