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1-11-16일자 사설 '[사설]‘백색테러’ 누가 묵인·조장하는가'를 퍼왔습니다.
우익 세력들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암살·파괴 등을 일삼는 것을 일러 ‘백색테러’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특히 자유당 독재정권 시절에 이러한 반문명적 행위가 공공연하게 저질러졌다. 당시 서북청년단 등의 우익단체와 이정재·임화수·유지광 등의 ‘정치깡패’들은 정권에 비판적인 야당인사들은 물론이고 학생, 연예인 등에게도 무차별적인 사형(私刑)을 가했다. 그런데도 이들 ‘백색테러단’은 처벌받기는커녕 보란듯이 더욱 기세를 떨쳤다. 정권 차원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가 ‘백색테러’라는 고색창연한 용어를 새삼 거론하는 까닭은 최근 우익단체들이 자행하고 있는 폭력행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엊그제 민방위훈련에 참석해 훈련상황을 보고받던 도중 어느 우익단체 회원에게 등과 목덜미를 맞는 등 폭행을 당한 것도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수도 서울의 시장이 공무수행 중에 우익단체 회원에게 얻어맞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 앞에서 할 말을 잃을 뿐이다. 놀라운 것은 박 시장을 폭행한 가해자는 지난 8월 ‘반값 등록금’ 집회에서 민주당 정동영 의원에게 “빨갱이” “김대중·노무현 앞잡이” 등의 욕설을 퍼부으며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등의 폭력을 행사했던 장본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뿐이 아니다. 이 우익단체 회원은 6월 민주노동당 강기갑·권영길 의원의 ‘반값 등록금 실현 1인 시위’ 때도 극언과 함께 폭력행사를 시도했다고 한다. 야권 출신 서울시장과 진보·개혁정당의 당대표, 대선후보를 지낸 최고위원 등이 번갈아가며 벌건 대낮에 동일인에게 폭행을 당하는 이런 상황이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참담하기만 하다.
우리는 자유당 시절의 ‘백색테러’를 연상케 하는 이러한 ‘우익폭력’이 근절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은 경찰을 비롯한 사법당국이 이를 묵인·방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따지고 보면 이번의 박 시장 폭행 사건도 가해자가 최초 범행 당시에 의법처리됐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나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 등 여권의 유력인사들이 진보단체 회원에게 폭행을 당했어도 과연 유야무야 넘어갔을 것인지 사법당국에 묻고 싶다.
그러나 우익폭력을 가능케 하는 근원적 토대는 민주주의의 정신과 제원칙을 무시하고, 비판세력에만 재갈을 물리는 이명박 정권의 사적(私的) 국가운영방식이 아닐까 싶다. 극우단체들이 천안함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를 가스통으로 위협하거나, 촛불집회 당시 진보정당 당사에 난입해 기물을 부수고 당원들을 무차별 폭행했는데도 사법처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러한 사례들의 근본 원인을 어찌 단순히 경찰의 직무유기에만 돌릴 수 있을 것인가. 수구언론도 촛불시위 등에는 온갖 색깔론을 동원하며 비난하면서도 우익폭력에는 침묵하거나 딴청을 부림으로써 정권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백색테러는 법치국가의 수치이자 민주주의의 공적(公敵)이다. 우익폭력의 창궐을 묵인·조장하면서 선진국과 국격을 입에 담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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