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1-11-04일자 사설 '[사설]대기업 따라하는 중견기업의 편법 증여·상속'을 퍼왔습니다.
조세피난처를 활용해 세금을 탈루하고 자녀에게 회사의 경영권을 넘겨준 중견기업 대표 등이 무더기로 적발됐다고 한다. 국세청은 그제 국제거래 등을 통해 편법적으로 부(富)를 대물림한 사실이 드러난 기업인과 전문직 종사자 등 11명으로부터 2800억원의 세금을 추징하고 14명을 추가로 세무조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재벌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부의 편법 상속·증여 행위가 중견기업들 사이에서도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국세청 조사 결과 중견 제조업체 대표 ㄱ씨는 조세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에 설립한 투자펀드에 본인이 보유 중이던 회사 지분을 싸게 넘긴 뒤 펀드 소유자를 아들 명의로 변경한 것으로 드러났다. 증여세를 한 푼도 안내고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겼다가 법인세와 증여세 800억원을 추징당했다. 역시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이 회사에 송금한 돈으로 자원개발사업을 해온 ㄴ씨는 투자소득을 페이퍼컴퍼니 명의의 해외 계좌에다 숨긴 뒤 부인 명의의 고급 아파트를 구입했다가 들통났다. ㄴ씨가 탈루한 소득세·증여세는 250억원에 이른다.
국세청은 편법 상속·증여에 대한 사회적 감시망이 강화됨에 따라 이를 피하기 위해 국제거래를 활용한 부의 대물림 시도가 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고 한다.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정부가 그동안 대기업의 세금없는 부의 대물림에 허술하게 대응함으로써 중견기업들까지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편법 증여·상속의 유혹을 받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재벌이 오너 일가 소유의 비상장 기업에 일감을 몰아주는 식으로 경영권을 물려주는 등 물을 흐려놓았고, 정부가 이를 제대로 정화하지 못한 결과다. 여기에다 조세피난처를 통한 탈세가 효과적으로 추적과세되지 못함에 따라 편법 상속·증여의 주요 경로로 부상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주요 재벌마다 조세피난처에 평균 10여개에 이르는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있지만 이를 활용한 세금 탈루를 적발했다는 발표를 들은 바 없다.
일반적인 세금 탈루도 마찬가지지만 천문학적인 부가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고스란히 대물림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민 정서로도 용서할 수 없고, 조세 정의를 위해서도 반드시 엄중히 단죄해야 마땅하다. 기업이 비싼 세무사·변호사를 동원해 이런 식으로 잔머리를 굴려 납세의무를 회피한다면 제대로 된 사회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국세청이 조사 중인 14건도 연 매출 5000억원이 넘지 않는 중견기업이 대상이라는데 무엇보다 대기업부터 본보기로 다스리겠다는 정책 의지가 중요하다. 윗물을 맑게 해야 아랫물도 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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