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1-11-08일자 사설 '[사설]개악된 역사교과서는 다시 바뀔 수밖에 없다'를 퍼왔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끝내 역사학계가 공인하지 않는 역사교과서를 밀어붙이기로 했다. 교과부가 어제 최종 확정해 발표한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은 앞서 역사교육과정 개정안 고시를 강행할 때 보여준 몰역사성과 비민주성을 거듭 확인해주고 있다. 움직일 수 없는 사실(史實)과 학문적 엄정성은커녕 이념의 잣대만 들이댄 남루한 집필기준으로 중등 역사교과서를 어떻게 집필할 수 있다는 것인지, 또 그런 교과서로 아이들에게 어떻게 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교과부는 집필기준의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강변했다. 교육과정에 따랐고, 역사교육과정 개발 추진위원회(역추위)의 심의도 거쳤다는 것이다. 후안무치하다. 역사교육과정 개정안 무단 변경에 반발한 위원 9명이 사퇴했을 때 역추위는 사실상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다. 고장난 역추위가 제대로 집필기준을 심의했을 리 만무하다. 문제의 출발은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이배용 위원장을 역추위 위원장으로 앉히면서부터다. 역사교과서는 정부가 주무르겠다는 뜻이었다. 교육과정 개정안의 ‘민주주의’가 느닷없이 ‘자유민주주의’로 바뀐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절차상 하자다.
절차의 문제만이 아니다. 집필기준에 드러난 학문적 하자는 더 심각하다. 정부가 현 정권 임기 내에 역사교과서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바꾸려는 속도전 탓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조차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던 주장은 거짓으로 판명났다. 다의적인 민주주의가 옳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 변명이 궁해지자 “왜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면 안되는가”라고 억지를 부리는 게 고작이다. 이게 학문을 했다는 사람들이 할 소리인가.
정상적 절차도 안 거치고 학문적으로도 정의되지 않은 집필기준이라면 역사교과서의 왜곡은 불가피하다. 정치학에서조차 분명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자유민주주의로는 민주주의에 담긴 자유와 평등, 박애와 연대의 다채로움을 온전히 담아낼 도리가 없다.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라 부르지 못하고, 독재를 독재라고 가르치지 못하는 역사 수업으로 어떻게 대한민국의 빛나는 성취를 교육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유민주주의’에서 말하려는 ‘자유’에는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는 교과부의 독선이 함축돼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이렇게 뒤틀린 역사교과서는 왜곡의 수정을 위해 또 한번의 교육과정 개정을 예고할 뿐이다. 국가적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이주호 장관은 교육과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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