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일 수요일

‘일방통행’ 투자자국가소송제도


이글은 한겨레신문 hook 2012-01-31일자 기사 '‘일방통행’ 투자자국가소송제도'를 퍼왔습니다.

<씨네21> 기자로 일했고, 뉴욕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며 글을 썼다. 현재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 중이다.

[최하나의 ‘여기는 하버드 로스쿨’]
2012년 새해 봄 학기가 시작된 첫 주, 하버드 로스쿨에서는 인도의 양자투자협정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렸다. 인도의 로펌에서 국제중재를 담당하는 변호사들이 연사로 참석한 이 행사가 특히나 흥미로웠던 까닭은 인도와 양자투자협정을 체결한 바 없는 미국의 투자자들이 어떻게 인도가 제3국과 맺은 양자투자협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그 전략에 초점이 맞추어졌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투자자의 권익보호라는 관점에서 진행된 이 세미나는 그동안 인도가 체결한 양자투자협정이 대부분 “투자자”를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형식에 근거해 투자 기업의 국적을 정의하고 있기에, 자회사나 명목상 회사 등의 설립을 통해 미국 투자자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경로가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거꾸로 투자유치국인 인도 정부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허점이 많다는 것을, 또 그로 인한 피소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미 FTA를 둘러싼 논쟁에서 이른바 “투자자국가소송제도”가 핵심 화두로 부상했다. 그리고 놀랍지 않게도 미국의 영향력 행사, 중재인단과 국제중재기관의 중립성 여부를 비롯해 이 조항의 파급 효과를 놓고 수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한미 FTA, 한국과 미국의 파워 다이내믹이라는 구체적인 맥락을 떠나서도 투자자국가소송제도에는 적지 않은 구조적 결함이 존재한다.


한미FTA를 통해 투자자국가소송제도는 핵심화두로 부상했다.

양자투자협정이나 자유무역협정 등 국제협정의 투자자국가소송 조항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국제투자중재의 두드러진 구조적 특성은 국가 간에 체결된 투자협정이 개인 투자자/투자기업에 소송권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국가를 상대로 한 국제분쟁에서 소송은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질 뿐, 당사국의 개인은 직접적인 소송권한이 없다. 때문에 외국 정부로 인해 피해를 입은 개인이 구제를 찾고자 할 경우, 개인은 보통 외교적보호(diplomatic protection)를 통해 자국 정부에 대신 구제절차를 취해줄 것을 청해야 한다. 하지만 이 경우, 개인은 자국 정부에 호소하기 이전 피해를 입은 국가의 사법권 내에서 가능한 구제절차를 모두 밟아야 한다는 요건 (exhaustion of local remedies)를 만족시켜야 한다. 또한 그처럼 시간과 비용을 탕진해가며 모든 절차를 마침내 소진한다고 하더라도, 본국 정부가 그러한 개인을 대신해 분쟁을 개시한다는 보장은 없다. 이와는 사뭇 대조적으로 투자자 개인에 직접적인 소송권을 부여하며 구제절차 소진이라는 제한조차 통상 두지 않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는 투자자라는 옷을 입지 않은 개인은 누리기 힘든 파격적인 혜택이다.
투자자국가소송제도를 투자자에게 한층 더 우호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러한 직접 소송권이 일방통행이라는 점이다. 투자자국가소송 조항의 매개인 투자협정에는 통상 투자유치국이 투자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짊어져야할 의무가 존재할 뿐, 그에 대칭하여 투자자에게 CSR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의 의무를 묻는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투자자만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에, 해당국은 언제나 피고다. 이러한 피소 가능성은 향후 발생할 모든 잠재적 투자자에게 앞서 소송권을 건네는 투자자국가소송 조항을 통해 가늠할 수 없는 규모로 증폭된다. 이는 투자협정에 담긴 투자자국가소송 조항이 특정 국가와 특정 투자자가 개별적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와 달리, 파악될 수 없는 숫자의, 파악되지 않는 정체의 투자자들의, 파악될 수 없는 규모의 소송 가능성에 해당국가의 문을 활짝 열어놓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송권의 비대칭성은 투자 분쟁이 해결되는 중재 과정을 들여다볼 때 한층 더 문제적이다. 국제투자중재는 분쟁 발생 시 그때 그때 해당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임시로 구성되는 개별중재재판소에 의해 이루어진다. 즉, 개별분쟁을 위해 구성되는 개별중재재판소의 존재 여부는 분쟁의 여부에 달려있고, 이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유일한 당사자인 투자자의 손에 달려있다. 그런 면에서 투자자국가소송이라는 시스템의 존립 여부자체가 투자자의 손에 달려있는 셈이라는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개별 중재인와 중재기관의 중립성 여부를 떠나서라도, 이 제도 자체가 구조적으로 투자자에 편향되어 있다는 비판은 그런 면에서 일리가 있다.
투자자국가소송제도의 또 다른 구조적 결함은 그 이중성에 있다. 투자자국가소송은 대부분 정부규제가 분쟁의 대상이다. 하지만 투자유치국 정부가 공리를 위해 만든 규제가 정당한 가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임시로 구성된 삼인의 중재인단이다. 이보다 더욱 문제적인 불협화음은 이 중재인단이 내리는 판정의 파급 효과를 해당국의 국민이 감당하게 되는 반면, 이러한 결정의 과정은 일반적인 국제상업중재와 마찬가지로 통상 대중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비공개로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공익에 관한 분쟁, 공공이 떠맡게 될 부담, 하지만 공적영역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이탈한 결정과정. 투자자국가소송제도의 정당성을 침식하는 것은 이와 같은 공적영역과 민간영역의 불편한 결합이다.


ICSID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 체약국과 다른 체약국 투자자간의 중재절차를 관장한다.

투자자국가소송제도의 또다른 문제점은 판정에 있어서 일관성의 결여다. 개별조약을 놓고 개별중재재판소가 그때그때 판정을 내리는 투자자국가소송에는 공식적인 판례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유사하거나 동일한 사실관계를 놓고 서로 다른 중재재판소가 상충되는 판정에 도달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잠재적 모순은 개별주주, 자회사, 명의 뿐인 회사 등을 통한 우회적 소송을 손쉽게 허용함으로서 “포럼쇼핑”(원고가 소송을 제기함에 있어 다수의 사법권 중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곳을 선택하는 것)을 조장하는 투자협정의 허점을 통해 악화되고 있다.
투자자국가소송조항을 매개로 소송을 제시하기 위해서 투자자는 “외국인” 투자자이어야 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투자유치국과 투자협정을 체결한 국가의 국적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세미나에서 인도 변호사들이 강조했듯이 기업투자자가 의도적으로 투자협정을 이용하기 위해 투자협정 체결국의 형식상 국적을 취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세미나 연사들이 이른바 성공적인 투자자의 전략 사례로 꼽았던 것은 인도의 Dabhol 전기발전소를 둘러싼 케이스였는데, 이는 미국 기업이 네덜란드와 모리셔스에 법인화된 자회사를 매개로 인도와 네덜란드, 인도와 모리셔스간 체결된 양자투자협정을 이용해 인도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포럼쇼핑의 위험성을 드러낸 것은 Tokios 케이스다. 우크레이나를 상대로 한 이 ICSID 소송은 우크레니아 자국민이 지분의 99%를 보유한 기업에 의해 제기됐다. 실질적으로 외국투자자라고 칭하기 마땅찮은 이 기업의 소송권을 중재재판소는 인정했는데, 그 이유는 이 회사가 서류상으로 우크레니아와 투자협정을 체결한 리투아니아에 법인화됐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포럼쇼핑이 시스템 남용의 차원을 넘어서 노골적인 모순으로 이어진 사례는 바로 체코를 상대로 한 Lauder/CME 케이스다. 미국인 랄프 로더(Ralph Lauder)는 미국과 체코가 체결한 양자투자협정을 이용해 체코를 상대로 투자자국가소송을 제기하는 동시에 자신의 회사인 네덜란드 기업 CME를 원고로 내세워 네덜란드와 체코간 양자투자협정 하에 또 하나의 투자자소송을 제기했다. 이 두개의 판박이 소송은 런던과 스톡홀롬에서 각기 진행됐고, 불행히도 두 중재재판소는 동일한 사실관계를 놓고 서로 상반된 결론에 도달하는 촌극을 벌였다.


국제투자중재는 2000년대 들어 그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투자자국가소송제도에 있어 일관성의 결여라는 문제점을 더욱 첨예하게 부각시키는 것은 모순과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항소심의 부재다. 워싱턴 협약(ICSID Convention)을 통한 국제투자중재의 경우 중재재판소의 판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른바 취소절차(annulment proceeding)라고 불리는 경로를 통해서인데, 이러한 취소는 항소와는 달리 해당 중재의 과정과 절차가 적합하게 이루어졌는지를 검토할 뿐 실질적인 법률적 오류는 검토의 관할 밖이다.
ICSID 외 기타 국제투자중재의 경우, 중재재판이 진행되는 곳 또는 승소한 원고가 중재판정을 집행하는 곳의 법원이 제한된 법률심사권 (jucidial review)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중재판정을 뒤집을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는 법률심사가 보통 뉴욕협약 (New York Convention)에 명시된 몇가지 영역에 한정되어 있으며 ICSID 취소절차와 마찬가지로 실절적인 법률 오류를 검토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중재판정에서 승소한 원고는 지급판정을 집행함에 있어 중재판정에 최대한 친화적인 사법권을 선택하기 마련이니, 한번 내려진 중재판정은 아무리 법률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해도 바로잡는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다.
지난 학기 수강했던 국제투자협정 수업에서 알게 된 사실 중 충격적이었던 것은 많은 국가들, 특히 개발도상국들이 투자자국가소송조항의 법적 성격과 파급효과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교열 정도의 검토를 거쳐 투자협정을 체결했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파키스탄 정부는 스위스 회사인 SGS가 ICSID 소송을 제기한 2001년 이전까지 파키스탄이 큰 고민없이 체결해왔던 투자협정이 어떤 식으로 뒷덜미를 잡을지 알지 못했다. ICSID로부터 SGS사가 1억 달러가 넘는 배상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는 서신을 전달받은 파키스탄 법무장관은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ICSID”과 “BIT”(양자투자협정)를 구글로 검색했다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투자자국가소송조항이 주요 이슈로 대두되고 이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모습은 그런 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제도를 둘러싼 많은 토론이 “글로벌 스탠다드” “을사늑약”류의 공허한 캐치프레이즈와 정파간 싸움으로 비화된 것도 사실이다. 자극적인 문구로 언성을 높이기 전 선행되어야 할 것은 제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이며, 이에 동반되어야 할 것은 비판과 대안, 성찰과 전략이 짝을 이룬 생산적 담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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