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6일 목요일

전교조 학교에 폭력 많다? 조선일보의 놀라운 상상력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4-26일자 기사 '전교조 학교에 폭력 많다? 조선일보의 놀라운 상상력'을 퍼왔습니다.
[권재원의 교육창고] 엉터리 설문조사의 함정, 상한 재료로 만든 요리는 쓰레기일 뿐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주관하고 한국교육개발원이 시행한 '학교폭력 전수조사'가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이 조사의 졸속성, 이로 인한 26억이라는 예산 낭비를 지적하고 있는데, 유독 조선일보만 이 졸속 조사결과를 가지고 창의적인 해석을 곁들인 기사들을 연일 생산해 내고 있다. 

"전교조가 주도하는 혁신학교 일진있다 응답비율 높아"(4월 21일), "학교폭력 경험 중소 시군이 대도시의 3배"(4월 25일) 등이 그것이다.


조선일보 4월 21일자 8면

조선일보 4월 25일자 3면

이 기사들의 요지들은 시종 일관되는데, 
1.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하다.
2. 학교폭력 문제는 일진회라는 폭력배가 날뛰기 때문이다.
3. 이들을 제압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이렇게 진행되며,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교총은 교사에게 사법권을 달라는 요구까지 하고 있다.

이 주장들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사실 논란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교과부가 발표한 전수조사 결과를 가지고 이런 주장을 할수는 없다는 것이다.사회조사방법론의 속담 중 GIGO(Garbage in Garbage out)란 말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즉 들어간 것이 쓰레기이면 나온 것도 쓰레기, 즉 애초 투입된 재료가 상한 재료라면 아무리 요리를 잘 해도 그 결과는 상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상한 음식에 대해서는 맛이 좋은지 나쁜지, 영양가가 높은지 낮은지를 따지지 않는다. 그냥 상한 음식일 뿐이다. 활용방법도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버리는게 답이다.

이번 교과부의 학교폭력 전수조사가 부실한 조사라는 것에 대부분의 언론사가 동의하고 있으니 이는 상한 재료에 해당된다. 그러니 이 상한 재료를 가지고 아무리 기사를 잘 쓰고 훌륭한 논변을 끌어낸다 하더라도 이는 상한 음식일 뿐인 것이다.

이번 조사가 왜 상한 재료인가 따져보자. 사회조사에서는 모집단 설정, 표집틀 설정, 표집, 측정도구, 응답률, 응답의 질 등에서 문제가 있으면 그 이후 과정을 따지지 않는다. 그냥 잘못된 조사다. 그리고 이번 전수조사가 여기에 해당된다. 

우선 20%대에 불과한 응답률이 문제다. 만약 표집 조사이며 그 표집과정이 확률표집방법을 충실히 따랐다면 전체의 2%만 조사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모든 학교 모든 학생을 전수조사하기로 했는데 20%대만 응답한 것이다. 즉 모든 학생들이 설문지를 받을 확률이 20%인 상태에서 20%가 선정되어 응답한 것이 아니라 모두 설문지를 받은 상태에서 20%만 설문지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집단만 응답하고, 특정한 집단은 응답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즉 확률표집이 되지 않는 것이다. 
확률표집이 중요한 까닭은 그래야 오차범위를 예측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확률표집이 아니라 망친 전수조사일 경우에는 표집오차를 예측할 수 없다. 오차범위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어떤 통계분석 기법도 무용지물이다. 그냥 쓰레기인 것이다.

다음은 자료 수집을 위한 측정 도구의 문제다. 이번 조사 설문지는 학교폭력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애매한채로 진행되었다. 문항을 보면 지난 일년간 이런 저런 폭력을 당한적 있느냐고 물어보고 있는데, 1년 중 단 한번 욕을 듣거나 얻어 맞았다면 이것은 학교폭력인가 아닌가? 어떤 학생은 이걸 사소하게 넘어갈수 있지만, 어떤 학생은 이걸 폭력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 세계적인 학교폭력 측정도구인 올베우스 척도에서는 자신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상대로부터 한 달에 2~3회 정도의 빈도로 폭력이 반복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번 교과부 조사에서는 대체 학교폭력의 하한선을 무엇으로 보고 있나? 친구끼리 싸우다가 얻어맞거나 욕설을 들은 경우는 학교 폭력인가 아니면 그냥 싸움인가? 애정남이 필요할 지경이다. 결국 ㄱ학교폭력을 당한적 있다고 응답한 학생들이 전혀 다른 현상을 생각하면서 응답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진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너의 학교에 일진회가 있느냐 이렇게 단순하게 물어 보았다. 하지만 학생들 중에는 일진을 상대적 개념(학교에서 어쨌든 제일 센 학생들)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혹은 절대적 개념(어떤 일정 수준 이상의 폭력배)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전자라면 일진 없는 학교는 있을 수 없다. 어느 학교나 제일 센 학생은 있을 수 밖에 없으니. 따라서 후자의 경우만 정확하게 응답받아야 하는데, 이번 조사 문항으로는 그럴 방법이 없다. 단순히  "너희 학교에 주먹 센 놈이 있느냐?" 수준으로 이 문항을 해석하고 응답한 사례들을 가려낼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결국 표집이 잘못되고, 측정도구가 잘못되었다. 한 마디로 조사 자체가 잘못되었다. 그러니 그 결과에 대해서는 진위나 가치를 논할 이유가 없다.원자료가 엉터리이기 때문에 이걸 아무리 멋지게 가공한다 한들 그건 상한 음식이다. 이 조사 결과에 대해 교과부가 해야 할 가장 합리적인 행동은 이 결과를 공표하고 멋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 조사를 실시한 한국교육개발원에 엄중한 배상금을 청구하고 담당 연락관을 문책하는 것이다. 

이 조사 결과에 대해 조선일보가 해야 할 가장 합리적인 행위는 그냥 폐휴지 통에 던져 넣는 것이다. 상한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조선일보는 자중하기 바란다. 

권재원 풍성중학교 교사 | hagi8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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