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30일 월요일

꽃 한송이에 온 우주가 들어있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4-30일자 기사 '꽃 한송이에 온 우주가 들어있다'를 퍼왔습니다.
[포토에세이] 봄꽃

▲ 튤립 붉은 색은 강한 유혹의 빛깔이다. 자연의 빛깔은 신비스럽기만 하다. ⓒ 김민수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좁쌀 한 톨에 온 우주가 들어있다'고 했다. 햇살과 바람과 비와 흙과 농부의 손길이 가장 적절하게 작용함으로써 생명을 품은 좁쌀 한 알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작은 좁쌀 한 톨에 삼라만상이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 팥꽃나무 얼핏보면 라일락과 비슷하지만, 다른 종류다. 같은 햇살과 바람과 빗속에서 저마다의 색깔을 드러내는 꽃은 신비요, 기적이다. ⓒ 김민수

언제 봄이 오나 싶더니만 나목투성이었던 산에 연록의 새싹이 무성하다. 그 연록의 색도 한가지 색깔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색이다. 그 사이사이 벚꽃과 복사꽃이 어우러져 연록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딱딱한 나무줄기에서 연한 새순이 올라온다는 것은 기적이다. 기적은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 늘 함께 있다고 나는 고백한다. 꽃 한 송이 피어나는 것도 기적이며, 똑같은 햇살과 바람과 비와 흙에 기대어 저마다 다른 색깔의 꽃을 피워내는 것도 기적이다.


▲ 복사꽃 개복숭아가 열릴지 제대로된 복숭아가 열릴지 알 수 없으나 분홍빛 꽃만으로도 황홀하다. ⓒ 김민수

자연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따스하다. 자연은 우리가 배운 교과서와는 다르다. 적자생존이 아니라 더불어 삶이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살아간다. 사람도 본래 그런 존재였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본래 그런 존재임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런 이들이 잘나가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길게 보면, 결코 그들이 잘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알면, 조금은 삶이 부드러워지고 넉넉해진다.

▲ 흰민들레 서양민들레가 판을 치다보니 토종민들레는 물론이요, 흰민들레를 보기도 쉽지 않다. ⓒ 김민수

흔하던 것들이 흔치 않은 시절을 살아간다. 몇 해 전부터 꿀벌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싶었는데, 올해는 여지껏 단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자연에 둔감하던 이들도 "올해는 꿀벌이 보이질 않아요"라고 한다. 많은 이유가 있을 터이다. 혹자는 휴대전화 전자파가 그 원인이라고 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우리에게 닥칠 재앙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 재앙을 피하기 위해 우리 인간은 휴대전화를 포기할 수 있을까? 길들여진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휴대전화가 일상화된 것이 언제라고, 이젠 없으면 못 사는 시대가 되었는가?


▲ 피나물 옹기종기 모여 꽃밭을 이뤘다. 초록과 노랑의 조화, 이파리와 줄기의 색깔이 다른 것도 신비스럽지 아니한가? ⓒ 김민수

좁쌀 한 톨, 꽃 한 송이, 이슬 한 방울, 돌멩이 하나, 나무 한 그룻, 아주 작은 사람... 모두 삼라만상 온 우주를 품고 있는 존재다. 더불어 살면, 우주의 질서대로 살아갈 수 있다. 지금 우리의 시대가 아픈 이유는 그 더불어 삶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일상이 되면 작고, 느리고, 못생기고, 약하고, 천한 것들이 귀하게 여김을 받는다. 누군가 함께 해줘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들, 용기를 복돋워주고 붙잡아 주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온전해 져야 비로소 온전한 충만이 이뤄지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 충만은 '텅 빈 충만'이라고 한다.


▲ 자목련 그곳은 약간 추운 곳이라 자목련이 한창 피어있었다. 가는 봄 아쉬워 눈물 뚝뚝 흘리듯 떨어지는 목련의 이파리가 지고나면 여름이 오는가? ⓒ 김민수

▲ 앵초 자연 상태에서 앵초가 이렇게 군락을 이루고 피어난 것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 김민수

▲ 토끼풀 꽃은 아직 없지만, 연록의 빛깔만으로도 꽃보다 아름다운 당신이다. ⓒ 김민수

저마다 다른 색깔, 다른 모양, 그러나 해마다 같은 모양으로 피어나는 들풀과 풀꽃은 시(詩)이며 노래다. 자기와 다른 꽃을 피우기에 어우러지고, 자기와 다르기 때문에 함께 한다. 어느 것끼리 함께 두어도 어울리지 않는 법이 없다. 

남을 시기하는 법 없이, 자기를 피워내되, 뽐내거나 기죽지 않는 삶, 얼마나 멋진 삶인가?


▲ 줄딸기 줄딸기 피어나면 곧 여름이 온다는 신호다. ⓒ 김민수

꽃 한송이 피어나는 과정에도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피어난 꽃도 있지만 단 하루의 햇살도 만끽하지 못하고 내년을 기약한 꽃들도 있고, 아예 뿌리째 뽑혀져 이 땅에서 영영 사라진 꽃들도 있다.

▲ 복사나무 참으로 근사한 복사나무였다. 뿌리 내린 곳 어디에서나 최선을 다하는 자연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 김민수

살면서 만난 복사나무 중에서 가장 멋들어진 친구였다. 멀리서 분홍빛 꽃을 피운 복사나무를 보고는 돌고돌아서 걷고 또 걸어서 만난 친구다.

나무는 완벽했다. 그러나 배경과 날씨와 햇살과 카메라장비 등은 조금씩 부족했다. 오늘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그 완벽함을 그냥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담아둘 수밖에 없었다. 누가 보지 않아도, 주변의 다른 것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지 못한다고 투덜거리지 않고 가장 멋진 모습으로 그곳에 서있는 나무, 그 나무 한 그루에 온 우주의 기운이 충만하다. 그 기운을 나눠 받은 느낌이다. 좋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가 정식기사로 채택이 된다면 2천 번째 정식기사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김민수 (d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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