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7일 금요일

"광우병사태, 정부태도 안 바뀌면 2008년 재현될 수밖에"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4-27일자 기사 '"광우병사태, 정부태도 안 바뀌면 2008년 재현될 수밖에"'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박원석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당선인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박원석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당선인.

촛불시민 권력의 국회 입성이다. 2008년 전국민적 광우병 촛불, 이른바 '백만민란'을 만들어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었던 박원석 참여연대 전 협동사무처장이 통합진보당 개방형 비례대표 후보로 4.11 총선에서 당당히 당선 깃발을 꽂은 것을 두고 당내외에서 하는 말이다.

공교롭게도 인터뷰를 하던 시점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박 당선인에겐 당연히 민감한 사안이었다. 그는 "2008년 문제가 터졌을 때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다. 광우병 괴담이다'라는 입장으로 일관했는데, 안타깝게도 우려했던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이번 광우병 사태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 "당시에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 수입중단 조치를 취하겠다며 신문광고까지 해놓고, '젖소라서 비정형성이다', '젖소는 수입 안 하고 있다', '안전성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조치를 취하겠다'는 등 그때와 똑같은 논리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당선인은 국회가 오는 5월2일부터 전국적으로 열릴 '광우병 촛불집회'와 보조를 맞춰 수입 중단 조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2008년과 똑같은 사태가 재현될 수밖에 없다"며 "국회는 이번 촛불과 보조를 맞춰 원내외에서 광우병 사태를 정확하게 짚고, 쇠고기 수입 중단 조치와 재협상을 이끌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의 국회 입성은 진보정당의 역사는 물론, 한국 정치사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우선 2008년 광우병 촛불을 기점으로 사회.정치적 세력으로 확고히 뿌리내리기 시작한 촛불시민의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대변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0여년 간 시민운동의 중심축을 형성해온 참여연대 1세대 핵심 멤버의 제도권 진출이다. 진보정당으로선 그동안 노동, 농민에 국한됐던 진보정당의 외연을 대중적 시민단체로까지 확장하게 됐다는 성과를 얻었다.

그의 당선으로 진보정당은 사상 처음으로 시민단체 세력의 의회권력화를 이뤄냈다. 진보당이 10년 넘게 지향해왔던 진보적 대중정당의 구색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게 된 것이다. 박 당선인의 어깨가 무거울 법도 하다.

어깨가 무거우니 얼굴은 경직돼 있을 수밖에 없다. 25일 인터뷰를 시작한 시간인 오후 2시까지 다섯 곳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허겁지겁 약속 장소로 달려온 박 당선인의 표정엔 긴장감이 잔뜩 묻어있었다. 19대 국회는 아직 개회 전이지만 박 당선인은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구축하기 위한 담금질을 하느라 바쁘다. 보좌진 구성은 이미 마쳤고, 현장과 소통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있다.

박 당선인은 향후 국회에서의 역할 설정에 있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 역할에 맞는 보좌진들도 확보했다. 그는 재벌개혁, 민생복지 문제 해결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그는 "반값등록금, 친환경 무상급식, 무상의료, 중소상인 살리기 등 모든 것을 관통하는 구조적 문제 해결의 지점이 재벌개혁"이라며 "보건복지위에서 복지의제를 다시 설정하고, 복지국가 프레임을 정치의 장에서 형성하고자 한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자신을 비롯한 시민단체 인사 100여명이 총선 전 진보당 입당 선언을 한 데 대해 "시민운동의 허리를 이루고 있는 40대 중심의 활동가들이 정치적 진보를 선택한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혁신과통합 일부 세력들이 민주통합당의 통합 과정에 참여한 데 대해선 "기존의 개별적 정치참여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차별성을 강조했다.

박 당선인은 김기식, 송호창 등 함께 시민단체를 일궈왔던 참여연대 1세대들이 민주통합당을 택한 것과 다른 행보를 한 데 대해 "진보정당 내부에 존재하는 일정한 폐쇄성에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시민사회의 대표성이 있는 내가 새로운 경험과 가능성을 만들어 이른바 시민정치의 선택지를 넓혀야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설명했다.

박 당선인은 또 "진보당으로선 나를 비롯한 시민단체 출신 당원들이 새로운 세력"이라며 "시민사회라는 중요한 인적, 조직적 자산을 갖고 있는 네트워크를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명백한 외연확장이다"라고 자신이 개방형 비례대표로 선정된 데 대한 당위성을 강조했다.

박 당선인은 19대 국회에서 진보당이 13석이라는 사상 최대 의석을 획득한 데 대해서는 "당 차원에서 흔쾌히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었다"면서도 "제3당이 됐기 때문에 향후 정치적 확장성을 가질 수 있는 대안정당으로서의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줬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박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비례선거 부정 의혹, 다수파-소수파 간 합의 구조 개선 등을 당내 해결 과제로 꼽았다. 그는 비례선거 부정 의혹에 대해 "어느 정당에서든 용납될 수 없는 문제다. 중앙선관위 위탁 등 재발방지책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했고, 당내 일각에서 제기한 '당권파의 패권주의'에 대해선 "숫자민주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견해가 최대한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발전된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끝으로 노동자, 농민 중심의 전통적 진보당 지지기반이 부족한 상태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인지,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히 노동자와 농민들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대중조직, 투쟁현장과의 스킨십을 늘려가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박 당선인과의 일문일답.

-선거 결과에 대해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어떤가?= 결과가 나오던 날 당선됐다는 감회보다는 총선 결과에 충격을 좀 받았다. 사실 선거 막판 여러가지 악재들로 인해 쉽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다시 새누리당에 절대과반을 내줬다는 데 대해 충격을 받았고, 당도 흔쾌히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당선 자체만 놓고 기뻐할 순 없었다.

어떻게 보면 MB심판이라는 정치적 반사 이익에 기대 19대 총선을 쉽게 봤고, '민심이나 민의에 대해 단순하게 생각했구나' 하는 반성이 들었다. 그런 차원에서 비전이라는 것에 대해 현재의 MB식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 콘텐츠에 대해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인정을 받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권과 호남을 얻은 대신 전통적 지지기반인 영남을 잃어 당 정체성과 관련해 노동 정치가 사라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전국정당이라는 의미에 있어 여러가지 가능성과 동시에 한계를 남긴 선거결과다. 그럼에도 제3당이 됐기 때문에 향후 정치적 확장성을 가질 수 있는 대안정당으로서의 가능성은 획득했다고 본다. 다만 어떻게 펼쳐가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놓여져 있다.

19대 국회 들어선 진보정당의 정치인으로서, '진보당도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그런 세력이구나' 하는 국민적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진보당이 국정의 일각을 맡아도 불안하지 않은 세력이라는 걸 입증함으로써 '필요하지만 믿을 수 있는 세력은 아니'라는 세간의 불안한 시선을 불식시키고, 믿을 수 있고 맡길 수 있는 세력이라는 걸 입증해내는 게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13석이라는 의석의 무게가 무겁다고 생각한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박원석 공동상황실장은 향후 진로에 대해 "사회운동의 포지션과 진보운동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결과가 어떻든 그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문제들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뒤따르기 마련이다. 비례경선 부정선거 문제에 대한 생각은 뭐고,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하나?= 진보정당이 아닐 지라도 정당이라는 공적 조직 내에서 용납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규명하고, 문제점이 밝혀진다면 책임질 사람들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진보정당이라고 하면서 가장 기초적인 문제를 대충 처리하려고 해서는 절대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모든 언론들이 진상조사 결과와 처리 과정을 주목하고 있다. 어영부영 넘기면 망조가 드는 거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재발방지책을 만들어야 한다. 선거관리 능력이 현저히 취약하다고 느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나도 전략비례로 찬반투표 대상이었는데, 투표용지에 '청년비례'라고 나와 있었다. 즉시 전량 폐기하고 수거해서 다시 하는 게 맞는데, 관계자들이 처음에 '어차피 온라인이 99%인데, 그냥 하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 내 귀를 의심했다. 이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중앙선관위에 위탁하는 게 어떤 논란이나 시비를 불식시키는 길이다.

-선거 결과와 관련해서 '당권파 패권주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더라. 어떻게 생각하나?= 패권에 대해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다수가 소수의 견해나 참여를 보장하지 않고, 권력을 배타적으로 점유하고 행사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당 내에서 전혀 없었던 것이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통상적 수준에서 어느 당에나 있는 계파와 의견그룹의 갈등을 확대해석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그걸 합리적으로 다루는 규칙 같은 게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당은 숫자민주주의였다. 진보정당에서 숫자민주주의는 수준이 낮은 거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견해에 대한 공론의 장들이 형성되고, 최대한의 합의를 이끌어내고, 일정하게 참여를 보장하는 발전된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 물론 모든 것을 다 안배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통합의 시대를 걸어가고 있는 지금 시점은 굉장히 중요하다. 

앞으로 있을 당 지도부 구성에서도 이 점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결과는 다수의 승리로 나오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혁신을 주도할 것인지, 성찰하고 단절하고 발전시켜야 할 건 무엇인지, 여러 의견들의 장점을 열어놓고 논의해야 한다. 

-총선 전부터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의 '색깔론'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대응해나가야 하나?= 선거 때부터 우리가 그 문제를 소극적으로 대했다. 보수언론이 프레임을 짜는 데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를 했어야 했는데, 쉬쉬하는 경향도 있어 보였다. 내부에서는 '그냥 무시하자'는 분위기도 있었는데,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조중동이 거는 색깔론은 당의 분열, 야권연대 분열이라는 정치적 목표가 분명한 것이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에 입각해서 저런 식의 색깔론은 용납해선 안 된다는 당의 단호한 의지를 표명하는 게 중요하다.

저쪽에서 제기하는 색깔론은 북한 문제에 대한 우리당의 입장을 걸고 넘어지는 게 핵심이다. 이에 대해선 이슈 별로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 권력승계 문제같은 건 내부 문제라 미주알고주알 비판하는 건 괜한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고, 다만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문제는 한반도 평화와 직결된 문제라 비판할 부분이 있으면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뭔가?= 2008년 촛불이 가장 컸다. 예상하지 못했던 폭발적인 시민의 에너지를 경험했는데, 당시로서는 그 결과물로 이뤄낸 게 없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하라고 했는데 안 됐고, 그렇다고 이명박 정부가 소통 방식을 바꾼 것도 아니다. 표면상으로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분출됐고, 그 한복판에 서 있으면서 여러가지 감동과 민주주의의 새 가능성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그러한 국면에서 한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정치의 부재를 느꼈고, 동시에 당시 운동의 주체였던 스스로에 대한 무기력함을 느꼈다. 정치의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을 느끼고 감옥에 갔다 왔다. 총선.대선을 앞두고 정치에 참여하는 게 이 시대의 진보적 시민운동을 했던 사람의 중요한 전망이고 목표라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 정치참여에 대한 의지가 뚜렷했고, 통합 논의가 일어나는 시점에 '진보의 합창'이라는 통합을 위한 시민정치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비례대표에 들어온 것도 가장 효율적으로 제도권 정치에 진입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양지웅 기자 '진보의합창' 국민제안 기자회견 현장에서 박원석 당선인.

-2월달에 시민단체 회원 100여명과 함께 입당한 건 어떤 의미를 갖나?= 지방선거 이후로 시민정치 담론이 형성됐고, 관련한 여러 시도들이 있었다. 민주통합당 내로 혁신과통합 일부가 시민사회그룹으로 참여했는데, 이는 기존의 개별적 정치참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김기식, 송호창 당선자로 대표되는 일부 활동가들을 제외하곤 시민사회 사람은 몇명 안 된다. 백만민란쪽 친노 세력은 냉정하게 말하면 시민사회라고 보긴 힘들지 않나. 그것과 비교하기 곤란하다. 

우리의 집단입당은 시민사회의 허리를 이루고 있는 40대 중심의 활동가들이 정치적으로 진보를 선택한 의미있는 사건이다. 우리가 진보정당과 시민사회 간 가교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선인은 진보정당과 매우 가까운 참여연대 인사 중 한명이었다. 사실상 개방형 비례대표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일각의 의견도 있었다.= 그런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 '진보당 바운더리'라는 건 굉장히 주관적인 견해였다. 솔직히 말하면 진보당이 시민운동에 결을 준 적이 없다. 폐쇄적 자기 생산을 해왔다.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선 과감한 문호개방을 해야 하고, 그걸 세력으로 만들어가야 하는데, 이번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새누리당, 민주당처럼 대중영합적으로 '반짝' 하는 인물을 공천하는 게 외연확장이라는 견해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진보당의 조직적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그다지 전략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게 어떤 정치적 효과, 어떤 세력을 얻었을까 생각해 보면 전략적이지 못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입당을 선언한 건 혼자가 아니었다. 규모가 작더라도 하나의 세력이 입당을 한 것이었다. 진보당으로선 사실상 새로운 세력이 정식으로 당에 참여한 것이다. 시민사회라는 중요한 인적, 조직적 자산을 갖고 있는 네트워크를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명백한 외연 확장이다. 

100명 이상의 공개지지는 시민운동 역사상 최초의 일이고, 역사적 사건이며, 시민운동이 정치발전을 이끌 수 있는 실마리를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제가 비례대표 출마를 한 것이나 집단입당을 한 것을 두고 '진보당 바운더리에 있던 사람들'이라고 규정하는 건 동의할 수 없다. 지금도 여전히 정치적 저변을 확대하려면 시민운동의 성과를 끌어와야 하고, 사람들을 끌어와야 한다. 

-광우병 촛불 당시 진정한 '백만민란'을 이끌어내면서 촛불시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현실정치에서 촛불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광우병, 등록금 촛불이 있었는데, 이게 바로 생활정치다. 구체적인 생활에 대한 요구, 이해관계, 문제점을 들고 거리로 나온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통치 방식이 그런 걸 부른 것이다.

혹자는 거리 정치를 정당 정치와 대립적으로 보는 관점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촛불은 가장 적극적인 정치 참여 방식이었다. 다만 선거와 선거 사이에 일어나는 행동이다 보니 당장 정치적, 제도적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지방선거 결과로 수렴이 됐고, 2011년 등록금 촛불은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결과로 수렴됐다. 

통상 정치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평균적 인식은 '그놈이 그놈'이라는 것이다. 정당끼리 다투고, 계파가 권력을 나눠먹는 그런 게 정치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촛불에서 보여줬던 시민정치, 참여정치를 통해 정말 우리 스스로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발언하고, 실천하고, 행동했다. 이런 게 바로 현실정치의 진짜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촛불시민들의 기대에는 어떻게 부응하고자 하나?= 시민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생활정치의 의제를 대변하면서 제도권에서 관철되기 위한 권력 감시와 정책 대변의 역할을 했었다. 그런 것들을 관철해내기 위해 국회에 들어온 것이다. 그런 요구를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복지사회, 복지국가의 실현이다.

친환경 무상급식, 의료민영화 반대,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서 촛불의 뜻이 이뤄지고 실현될 수 있도록 여전히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심정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 '촛불'이라는 박원석 만의 트레이드마크를 결코 내려놓을 이유가 없다. 기존 정치인들과 똑같은 자세로 자기 이미지를 만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다.

또 시민사회가 기반인 만큼 시민운동의 정책적, 운동적 성과와 자원들을 진보정당 안으로 끌어와야 한다. 이를 통해 외연을 넓히고 내용을 풍부화시키는 역할을 책임있게 할 것이다.


ⓒ민중의소리 2008년 광우병 촛불 당시 '촛불수배자 농성단'으로 조계사에서 농성을 하던 당시의 모습. 오른쪽 첫번째가 박원석 당선인.

-공교롭게도 오늘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 2008년에 문제가 터졌을 때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다', '광우병 괴담이다'라는 태도로 일관했는데, 안타깝게도 우려했던 일이 발생한 것이다. 지금도 정부는 '젖소라 비정형성이다', '어차피 국내 수입이 안 된다'며 똑같은 논리로 일관하고 있다. 

그때 '문제가 생기면 즉각 수입중단 조치를 취하겠다'고 정부 발표도 하고, 신문광고까지 내놓고, 이제와서 안전성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중단하겠다는 건데 그 판단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먼저 조치를 해놓고 후에 안전성을 확인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5월2일부터는 전국적으로 촛불이 들고일어난다고 한다. = 여전히 정부는 미국쪽 논리를 대변하며 과거의 약속마저 삼켜버리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미 여론은 들끓고 있다 .국민 다수가 우려하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당연히 2008년과 똑같은 사태가 이번 촛불에서 재현될 수밖에 없다. 

촛불과 함께 국회는 원내외에서 보조를 맞춰나가야 한다. 새누리당조차도 수입 중단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국회에서 문제를 명명백백히 따져나가야 하고, 정확하게 짚어내야 한다. 결과적으로 쇠고기 수입 중단 조치는 물론, 쇠고기 재협상에 나서도록 이끌어내야 한다.

당시 주변국 상황을 봐서 수입 조건을 재설정하겠다고 했는데, 이미 중국, 대만, 호주, 뉴질랜드 등 주변국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안 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안전 인식 수준이 그렇다. 저렇게 정부가 미국 눈치보기를 하면서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외면하고, 심지어 검역주권마저 스스로 포기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거센 저항에 직면할 것이고, 정권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복지 아젠다' 설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우선은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 생존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제일 시급하다. 그동안 1% 정치라고 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치가 특권 자본과 재벌에 막대한 이익을 몰아줬다. 99%를 대변하기 위해선 서민들 다수가 함께 사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시점에서는 여러 과제들이 한국사회에 펼쳐져 있다. 반값등록금, 친환경 무상급식, 무상의료, 중소상인들 살리기 등 이 모든 걸 관통하는 구조적인 문제 해결의 지점이 재벌개혁이라고 본다. 재벌개혁을 통해 양극화된 경제구조를 흐트러뜨려서 1%에 집중된 부와 자본을 99%로 이전하게 만들도록, 구조적 고리를 푸는 것이 경제 민주화고, 복지의 기초다. 결국 재벌개혁 없이는 복지사회의 물적 기반이 형성될 수가 없다는 말이다. 

한국사회에서 지배권력화된 재벌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19대 국회의 최대 과제이자, 다음 세대가 직면한 최대 과제 중 하나다. 다양한 의제를 만들어서 운동을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때의 의제들을 잘 살려서 재벌개혁에 대한 대안을 만들고, 그것을 실현하도록 하겠다.

-참여정부 때도 재벌개혁이 국민들의 중요한 요구 중 하나였다.= 재벌개혁은 제도적 대안보다는 정치적 의지 문제다. 그래서 더 어렵다. 참여정부 시절에 왜 재벌개혁이 안 되고, 오히려 후퇴를 했냐면 정치적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아젠다를 그대로 받아서 적용한다던가 하는 오류 속에서 참여정부 권력의 성격이 결정됐다. 

중요한 건 전사회적인 합의 내지는 요구를 어떻게 이끌어내느냐. 국회가 이를 어떻게 수렴하느냐의 문제다. 과거에 소액주주운동을 하면서 권려감시나 절차적 정당성의 맥락에서 1차적 재벌개혁 운동이 있었다면, 이제는 우리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고 상생하는 사회로 가는 목표를 갖고 제2의 재벌개혁 운동이 전사회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거기서 중요한 역할은 국회가 해야 한다.

-상임위는 어디로 생각하고 계신가?= 보건복지위원회다. 거기서 정치권의 복지의제를 다시 설정하고, 복지국가 프레임을 정치의 장에서 형성하고 싶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본다. 

10년 넘게 복지운동을 했고, 그 과정에서 전문가 그룹, 시민사회단체, 이해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사회복지 종사자들, 노조 등과 네트워크를 완벽하게 형성했다. 의정활도이라는 게 의원 하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밖에 있는 인적, 조직적, 정책적 자원들을 코디네이팅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국회 입성 후 가장 우선적으로 하고자 하는 건 뭔가?= 18대 한나라당 독점 국회가 결국 폐기한 민생법안들을 부활시키는 게 중요하다. 대표적인 게 반값등록금 법안이다. 사회복지 영역에서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상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게 있고, 고용 영역에서는 고용보험법을 개정해 사각지대를 커버하는 법률안을 부활시켜야 한다. 부자감세에서 증세로 전환하는 법률안도 부활시키는 게 우선적 목표다. 

의회권력이라는 건 위임된 권력이다. 국민이 주인이 돼야 한다. 4년 간 대표자를 뽑아서 위임된 권력인 국회의원에게 맡기는 건데, 그러다 보니 주권자와 위임된 권력 대리인 사이에 간극이 발생한다.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이것을 최소하시키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하고, 국회라는 위임 권력에 시민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민과 함께 하는 박원석의 국정감사나 예결산 심사'와 같은 것을 내가 가진 모든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실현해가려고 한다. 촛불에서 찾았던 생활정치, 참여정치라는 걸 국회에서 구현하겠다는 차원이다.

-진보당이 제3당이 되면서 국회에서 사실상 캐스팅보트 역할을 맡게 됐다. 역할이 커진 만큼 진보운동의 중심 축이 진보당 쪽으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무게중심의 변화 속에서 진보당이 보여줘야 하는 건 뭔가?=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정당정치가 잘 되는 나라와 잘 되지 않은 나라의 차이는, 정당정치가 잘 되는 나라일 수록 오히려 사회운동의 역할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게 나쁜 건 아닌데, 그만큼 정당의 무능력함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정치가 자기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19대 국회에서 진보당의 사명이기도 하다. 

또 수권능력과 국가운영 능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보여주고 싶어도 의석수가 적어서 못 보여줬는데, 이제는 그런 핑계로 도망갈 수가 없다. 제3당이 주는 무게감이 크다. '우리는 소수로 다수를 대변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때문에 당연히 인정받아야 한다'는 태도는 안 된다. 지금까지 일정하게는 그런 경향이 있었다고 본다. 

이제 자기 능력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노동, 공공부문, 복지 등 다양한 분야들이 진보정당 안에서 정치적으로 살아나면서 진보의 국정운영, 수권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저항하는 게 능력이었다. 그건 운동권의 능력이다. 이젠 저항을 넘어 책임지고 국가를 운영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정치를 해야 한다. 

-현 시점에 당선인이 갖고 있는 약점은 뭐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할 건가?=노동, 농민이라는 진보당의 전통적 조직적 기반 위에서 국회에 진출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더 긴장이 되는 측면이 있다. 노동.농민 쪽으로 스킨십이나 인적 네트워크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나는 시민사회 출신이니 시민운동만 커버하겠다'는 생각은 안 된다.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은 당연히 노동자와 농민의 대표자가 돼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 의정활동도 잘 해야겠지만 현장 목소리를 대변하려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지난주 쌍용차 추모행사 할 때 평택에 제일 먼저 갔다. 두시부터 아홉시에 해산할 때까지 비 맞으면서 현장을 지켰다. 대중조직의 투쟁 현장에서 '박원석이는 시민사회 출신이라 이런 데 안 오고 뺀질대더라'는 이야기 안 들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이중삼중의 과제를 안고 가야 한다. 이런 걸 각오하지 않았다면 오지도 않았다.

강경훈 기자 qwereer@vop.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