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9일 일요일

계속 되어야 할 작은 교회 이야기


이글은 한겨레신문 휴심정 2012-04-25일자 기사 '계속 되어야 할 작은 교회 이야기'를 퍼왔습니다.

『작은 교회 이야기』라는 책을 읽으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강원도 원주 단강 마을이 그려진다. 그리고 시골로 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꼭 단강교회를 방문하고 싶어진다. 단강교회와 지역 주민들과의 아름다운 만남,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이야기, 그것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러면서 저 자신의 목회현장을 돌아보게 된다. 단강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 주위에 살고 있는 이웃을 보는 기회가 되었다. 나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성도들과 이웃들의 이야기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의미로 단강교회 이야기는 단강에서 출발하여 이 땅 구석구석을 돌아 세계 구석구석에서 울려 퍼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기에 ‘작은 교회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고, 계속 되어야 하는 이야기이다. 단 작은 교회일 때 이것이 가능할 것이다. 작기에 성도들의 삶의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고, 이웃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작은 교회는 다 이런 교회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작은 교회의 장점을 이해하고 그 작아짐의 의미를 바로 알고 살아가는 교회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일 것이다. 

루스 A. 터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작은 교회』라는 책을 통해 “교회를 성공의 발판이나 은퇴의 자리쯤으로 여기지 말고 영성 계발을 위한 수도 공간으로 만들어보라. 교회가 농촌의 흙길이 끝나는 외진 곳에 있느냐, 복잡한 도심에 있느냐는 아무 상관없다. 교회는 영적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교회가 영적 피난처로써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작은 교회가 훨씬 유리할 것이다. 교회가 작기에 성도들의 영적 피난처가 될 수 있고, 이웃의 영적 피난처로써 기능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작은 교회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대형화된 교회 이야기는 많이 있는데 작은 교회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교인의 숫자가 목회의 성공의 잣대가 되어 버린 이 시대에 작은 교회의 이야기를 통하여 진정한 교회의 존재 목적을 다시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감동을 주는 이야기일 것이다. 

단강교회는 1987년 봄에 창립되었다. 총각 전도사가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고, 힘없고 병약한 노인 분들이 남아 있는 마을에 단강교회를 세웠다. 저자는 15년 동안 단강교회를 사역하였는데 교인들은 고작 스무 명 정도이다. 그러나 단강교회 성도는 그 지역의 모든 이웃이었다. 단강교회에서 매주 발간하는 주보는 이웃들의 이야기가 담겨졌고, 단강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단강교회의 주보인 ‘얘기마을’은 단강마을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줬다. 강원도 원주시 단강이라는 작은 마을의 이야기가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었고 하나님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팔레스틴의 작은 땅 한 구석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이야기는 인류를 구원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들에게 보여 주신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이야기가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 아니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처럼 단강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가 된다. 오늘날 황폐해진 농촌의 모습이 마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처럼 비추어졌고, 농사 일로 지친 농부들의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런 일상의 삶을 바라 봐 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줄 때 오늘 우리들은 내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단강교회가 1987년 시작되었듯이 우리 너머서교회도 2007년 12월 9일에 시작되었다. 너머서교회를 시작하는 시점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더러운 물이 가득 고여져 있는 큰 웅덩이에서 열심히 물을 퍼내고 있는 나를 보았다. 열심히 퍼내어도 더러운 상태로 있는 웅덩이를 보면서 점점 지쳐갔다. 결국 지쳐서 포기하려고 할 때에 한쪽 구석에서 작은 샘물이 흘러 들어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그 작은 샘물을 보면서 저렇게 작은 물줄기가 언제 이 더러운 웅덩이를 맑게 할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런데 아주 작은 샘물이 어느 순간 더러운 웅덩이를 맑게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는 꿈을 통해 하나님의 샘물이 되는 작은 교회가 되어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교인들과 교회 철학을 세우는 작업을 통해 작은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그것이 바로 분가였다. 너머서교회는 성도들이 100명이 되면 분립위원회를 구성하고 150명이 되면 분립하는 것을 정관에 명시하였다. 성도들의 숫자에는 어린아이들까지 포함하였다. 만 명이 모이는 한 교회보다 100명이 모이는 100개의 교회가 더 의미 있을 것이다. 

신광은 목사는 그의 저서인 『메가처지 논박』에서 “현대 교회는 모든 성장의 한계가 무너진 상황에 처해 있으며, 성장을 위한 모든 수단을 소유하고 무한 성장을 추구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교회가 무한 성장을 추구할 때 교회안의 한 사람의 이야기와 이웃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교회성장 이론가들에 의하면 단강교회는 성장하지 못한 교회이다. 15년 동안 교인들의 숫자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단강교회는 참으로 많은 성장을 이룬 교회인 것이다. 성도들의 변화가 성장이고, 이웃들이 바라본 교회의 모습이 변화된 것이 성장이다. 저자가 15년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 전 마을 사람들이 “우리들이 모두 교회에 나올 테니 떠나지 마라”고 한 이야기가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오늘날 도시에서는 예배당을 건축하려고 하면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극심하다. 그런데 단강마을에서는 목사가 유학을 가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이 가지 말라고 만류하면서, 오히려 자신들이 교회에 나오겠다고 말한다. 벌써 이들은 단강교회 교인들인 것이다. 이런 교회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일 것이다. 

우리 너머서교회는 건물 중심적인 교회의 모습을 반성하면서 ‘건물 없는 교회’ 즉 ‘예배당 전용 공간을 갖지 않는 교회’를 추구한다. 그래서 4년 동안 학교 음악실과 강당을 빌려 예배를 드리고 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실천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성도들이 건물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시점에 성도들에게 설문 조사를 실시하였다. ‘너머서교회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대부분 성도들이 ‘성도들’이라고 대답하였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우리는 배웠다. 너머서교회는 예배당이 없으니 교인들의 머리 속에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임을 확실히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보면 ‘없는 것’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이 있다. 그리고 최근 학교에서 나와서 새로운 예배처소를 찾게 되었다. 공공기관과 학교, 복지관 등 여러 곳을 문의했지만 장소를 개방해 주는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들의 장소 문제를 위해 고양여성민우회와 시의원이 도와주었다. 그들은 너머서교회 교인들이 아니다. 너머서교회는 고양여성민우회에서 운영하는 공부방과 성폭력 쉼터를 5년째 지원하고 있다. 그런 만남이 계기가 되어 그들은 우리가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교회가 세상을 섬기면 세상이 교회를 섬기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세상과 소통하는 기쁨이다. 

너머서교회는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린다. 어린아이부터 나이 많은 어르신들까지 함께 모여 매주일 오전11시에 예배를 드린다. 어린이들도 예배 순서를 맡아서 봉사한다. 초등학교 4학년이상이면 제자훈련을 받고 ‘어린이 집사’가 된다. 그리고 중고등학생은 제자훈련을 통하여 세례를 받게 된다. 어린이 집사와 청소년들은 주일예배 시간에 대표기도와 성경봉독 등의 순서를 맡아서 봉사한다. 가끔 어린이들이 예배시간에 대표기도를 할 경우에 어른들의 마음을 울릴 때가 있다. 그리고 매년 ‘영적 입양식’을 가진다. 성도들 중에 고등학생 이하의 성도들은 멘티가 되고, 성인들은 멘토가 되어서 서로 멘토링을 하게 된다. 새해 첫 주일에 영적 부모를 정하게 된다. 한 해 동안 그 아이들의 영적인 부모가 된다. 새로운 가족으로 만나게 된다. 마가복음 3장 35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새번역)”라는 말씀을 실천하고 있다. 

장소는 다르지만 역시 이곳 도시에도 성도들이 있고, 이웃이 있다. 책에서 보았던 ‘광철씨, 김영옥 집사, 허석분 할머니, 승학이 할아버지, 종순이 등’ 단강교회 교인들과 이웃이 바로 내 교회 성도들이고 이웃 주민들이다. 

작년 6월에 너머서교회 교인인 박종일 집사님의 장례식을 집례하였다. 우리가 처음 너머서교회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한 분이다. 박집사님 아들이 있는데 약 7년 동안 신장 투석을 하고 있다. 이런 아들을 지켜보는 가족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었다. 그런데 이 아들이 버스를 타려고 가는 도중에 심장마비가 왔다. 그래서 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심장이 멈추어 버린 것이다. 응급조치를 했지만 심장은 뛰지 않았다. 나도 응급실로 달려갔는데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의사가 30분 동안 실시했지만 심장은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의사가 가족들을 불러 놓고 더 이상 희망이 없으니 준비하라고 했다. 그 순간 박집사님은 의사의 발을 잡고 무릎을 꿇고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셨다. 언제나 당당하고 무뚝뚝한 집사님이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무릎을 꿇고 애원했던 것이다. 그러자 의사가 20분만 더 해보겠다고 해서 다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17분 만에 박집사님 아들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살아난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이 죽어가는 아들을 살린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뇌의 손상도 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깨어난 것이다. 박집사님은 그런 아들을 붙들고 얼마나 울면서 감사해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6개월도 안되어서 본인이 간암 말기로 판명되셨다. 6개월의 투병 기간 동안 나는 매일 병원을 방문했고, 집에 있는 경우는 모든 교인들이 그 집에서 기도회를 했다. 그런 투병 생활 가운데 박집사님은 나의 손을 잡고 “아들하고 놀이공원 간다고 약속했는데 못 지켜서 미안하다”라고 하셨다. 박집사님께서 마지막 운명하실 때 온 가족들과 나는 찬송을 부르면서 집사님을 하나님께 보내드렸다. 너무나 해맑은 모습으로 돌아가신 모습이 지금도 눈에 그려진다. 박집사님 장례식을 집전하면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정말 많이 울었다. 그리고 입관예배를 드릴 때는 어린 아이들까지 예배에 참석해서 박집사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관에 넣어드렸다. 지금도 해맑은 미소로 아이들에게 껌과 사탕을 나눠주시고 손잡아 주시던 박집사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랑하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응급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오열하며 애원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다. 지금도 박집사님 부인인 권사님은 나를 보기만 하면 남편이 그립다고 우신다. 다른 장례식에 참석할 때마다 서럽게 우신다. 바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의 눈물이고 같은 아픔을 겪는 자들을 향한 사랑의 눈물일 것이다. 

단강교회 성도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여기에도 있다.
크게 일어나 부흥하고 성장하고 높아지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너무도 쉽게 꺾이고 잘리고 만 불쌍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이 땅에 남아 있는 담배 꽃처럼 잘려 버려진 사람들 곁에, 주님은 바로 그들과 함께 꺾인 모습으로 계셨던 것이다. 꺾인 담배 꽃으로 계신 주님, 단강의 주님이 계신 자리가 바로 그곳이었고, 그 자리야말로 버려진 이웃과 함께 선 뜨거운 자리였다.

담배 꽃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웃이 있다. 주님은 그들과 함께 계신다. 성도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 그럴 때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심방을 가면 보통 2시간가량을 함께 한다. 그리고 가끔 한 가족을 집에 초청해서 식사를 하고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없어서 외로워한다. 그러기에 나는 내가 말을 하기보다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어느 날은 3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야기를 마친 후 일어나자 성도는 “목사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한 것은 같은 마음으로 들어 주었고, 그의 입장에서 함께 느낀 것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그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러기에 목사는 많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인 것이다. 이와 같이 『작은 교회 이야기』는 이웃의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책이다. 그런 삶의 일상에서 주님은 함께 하시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하시는 분으로 다가온다. 

존 F. 캐버너가 쓴 『소비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이란 책에는 “인간의 몸과 영혼까지 상품으로 간주하고 사고파는 최악의 소비 사회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인격 형식의 복음이다. 인격형식의 복음은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소비사회를 사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한 『작은 교회 이야기』라는 책을 시작으로 더 많은 ‘작은 교회 이야기’가 소개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함께 나누기를 바란다.


안해용 l 목사는 풀러(Fuller)대학교에서 목회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너머서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으며,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과 교회2.0목회자운동 실행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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