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30일 월요일

수급자 가족해체 부추기는 기초생보제도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4-29일자 기사 '수급자 가족해체 부추기는 기초생보제도'를 퍼왔습니다.

부양의무자 아닌 형제·손자녀 함께 살면 혜택 못받아
특례조항 있어도 제도적 허점…사실상 세대분리 조장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ㄱ(51·프리랜서 작가)씨는 장애인 어머니(84)와 장애인 언니(54)를 모시고 본인 명의의 집에서 살고 있다. 언니는 심각한 간질발작과 정신지체 때문에 누군가 온종일 돌봐야 하고, 연로한 어머니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문제는 언니가 2009년부터 받아오던 기초생계비 30만원이 2011년 9월부터 끊기면서 생겼다. 부양의무자(1촌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도 아닌 동생의 재산·소득 기준에 걸려 언니의 생계비가 깎인 것이다. ㄱ씨는 “정부가 법적으로 부양의무자는 1촌 직계라고 하면서 2촌 사이(형제자매)를 사실상 부양의무자로 보고 있다. 혼자서 넉넉지 않은 돈을 벌어 어머니와 언니를 돌보기가 너무 힘들다”며 울먹였다.
동주민센터 직원은 “기초생활수급 관련 지침이 잘못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추후에 알게 돼 바로잡았을 뿐이며, 언니의 수급 자격을 유지하려면 엄마를 별도의 가구로 분리(세대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보장의 단위는 ‘가구’다. 수급자가 소득·재산이 일정 기준을 넘어서는 가족과 함께 살 경우, 그 가족이 부양의무자가 아니더라도 수급자의 급여가 줄어들 수 있다. 반면, 이들 가족과 따로 살면 수급자가 온전히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중증 장애인 등 지속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경우 함께 살아도 따로 사는 것으로 인정해주는 ‘별도가구 인정 특례’ 지침을 만들었다. 그러나 ㄱ씨 가족은 이 특례에서도 제외된다. 장애인이 형제자매 집에 살더라도 부모가 함께 사는 경우는 장애인이 수급을 받을 수 없도록 한 단서조항 때문이다. 동주민센터 직원의 말대로 만약 엄마가 따로 산다면, ㄱ씨와 언니는 한 집에 살면서도 언니의 수급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까다로운 수급 기준이 기초생활수급자 가족의 족쇄가 되고 있는 셈이다.
ㄱ씨 가족과 같은 사례가 잇따르면서, 가난한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겠다며 만든 국민기초생활제도가 제도적 맹점 탓에 빈곤 가정의 해체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ㄱ씨 가족의 발목을 잡은 ‘세대 분리’ ‘동일보장가구’(법적으로는 부양의무자가 아니더라도 한 가구를 이루고 살면 사실상 부양의무를 부과하는 것) 규정은 기초수급자들과 사회복지사들 사이에선 이미 널리 알려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이다.
이 때문에 (외)조부모와 손자·손녀가 함께 사는 조손가정 기초수급자들의 경우, 손자나 손녀가 부양의무자가 아니지만 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 조부모의 생계비가 깎이거나 수급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한다. 단, ‘세대 분리’가 되어 따로 살면 조부모의 수급을 유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함께 살아도 세대 분리로 인정해주는 특례를 만들어뒀지만, 조부모의 경우 ‘손자·손녀의 집’에 거주하는 65살 이상의 외조부모라는 단서가 있어, 수급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세대를 분리하는 경우가 많다.
지방의 한 자치단체 복지조사팀 담당자는 “조손가정이나 2촌은 부양의무자가 아니지만, 함께 살면 이처럼 피해를 볼 수 있고, 세대 분리를 하면 각각 수급을 받을 수 있어 가족해체를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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