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8일 토요일

가차없이 도려내야 한다.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4-28일자 기사 '가차없이 도려내야 한다.'를 퍼왔습니다.
암담한 민주·진보 진영의 미래

민주통합당 내에 이해찬계니 박지원계니 하는 말은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두 정치인 모두 실무형 정치인으로서 각인되어 있을 뿐… 필자가 잘 몰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총선에서 이들이 당의 전략적 판단 등에 깊숙이 개입한 흔적 또한 전혀 찾을 수 없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아예 배제되었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총선 결과가 한명숙 전 대표만의 책임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 언급한 두 사람도 아니고, 어떤 일이 있었기에 민주통합당은 마치 표류하는 난파선처럼 총선을 치르게 된 것일까? 속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바깥에서 보았을 때 당의 중심이 거의 해체된 상태에서 총선을 치렀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당의 대표, 총선기획단, 공천심사위 등 수많은 사람이 있었을진대,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서 총선을 치렀다면 과연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그건 아니다.

친노의 이미지를 가진 한명숙 대표는 집단지도체제의 대표였고 당내 세력 분포로 보면 직접적 계보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소양은 언제든지 자리를 내놓을 결심으로 원칙과 상식을 고수하는 총선 지휘가 필수적이었지만, 한 전 대표는 이에 실패했고, 이런 상황을 가져오게 한 수많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이 누구인지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이들은 "공보다 사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일 것이 분명하다. 대가리만 어디에 처박으면 자기가 남의 눈에 안 보이는 줄 아는 꿩 수준의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다.

상왕, 수렴청정 등의 단어가 난무할 때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진상을 알게 된다. 총선이 지난 후 선관위에 요구해 모든 총선후보자의 후원회장 명단을 입수한 후 하나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이것만이 민주통합당 등 정당 내의 계보라면 계보, 또는 주도권의 현재 위치 등을 객관적으로 유추해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취재를 거친 결과, 민주통합당의 공천 과정에는 꼼수가 난무했고, 당의 대표와 공천심사위원 등은 온갖 요구에 시달리다 지쳤음은 물론, 철학 부재는 물론 시의적절한 전략과 마땅한 전술도 하나 없이 총선을 치르다 지리멸렬하는 꼴을 보였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럼에도, 책임을 진 사람은 당 대표와 그나마 총선 중간에 구원으로 등판해 고생한 사무총장뿐이었다는 사실이다. 민주적 절차의 약점을 민주통합당 내 기득권들은 철저히 이용했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실체 없는 ‘보이지 않는 손’에 책임을 떠넘겼다. 사실과 다르니 누구라고는 지적하지 못하고, ‘당의 총선 실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니 ‘대주주’니 하는 말들을 이즈음에도 입에 담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바로 이들, 이들과 몸을 섞은 이들이 이번에는 이해찬, 박지원 두 사람의 만남과 합의를 두고 ‘구태’라는 언급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가리 처박는다고 몸통이 숨겨질까? 이렇게 떠드는 사람들이 바로 실패의 몸통들이며, 깃털들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기자들은 더 잘 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은 사실임에도 입에 담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온갖 인연으로 묶여 있어서이기도 하고, 이해관계에서 사실의 왜곡이 오히려 이익을 얻는 경우 또한 많기 때문이다. 특히 수구 언론들은 그야말로 이때다 싶은지 간만에 민주통합당 관련 기사로 지면을 도배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민주통합당의 최대 문제는 조직의 과잉이다. 과거로부터의 인연에 따라, 대권과 당권의 추이에 따라 온갖 동아리(?)가 존재하는 곳이 바로 민주통합당이다 보니 아마도 의원의 총수보다 더 많은 수의 의원 모임이 존재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곳이 바로 민주통합당이다. 이러니 영이 제대로 설 리가 만무하다. 소집단 이기주의의 온갖 구태가 나열된 전시장이라고 하면 너무도 과한 표현일까?

486이니 하는 그룹으로 분류되는 정치인 중 일부의 꼼수 정치는 이제 신물이 나서 보아주기 어려울 정도에 이르렀으니 생물학적 나이로 구태를 규정하는 것조차도 어려워진 곳이 바로 민주통합당이다. 그들의 무능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이들의 완장 질과 패거리 질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아니면 '완장 운동권 키드의 생애'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면 적절할 정도다.

어제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민주당이 모바일 경선 석 달 만에 이제 체육관 선거로 가느냐.”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원로와 계파 보스들이 밀실에서 대선 후보, 당 대표, 원내대표 등의 자리를 나눠 갖기로 하고, 군사정권 시절에나 있던 '체육관 선거'를 치르겠다니 어안이 벙벙하다"나?

사돈 남 말 하는 것도 아니고 이걸 사설이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사설이 가능하게 한 원인은 고스란히 민주통합당 내에 있다. 바로 이번 총선을 기대에 못 미치게 한 주범들이 바로 그 원인들이고, 그들의 입을 빌려 조선일보가 지껄이니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밤에 난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딱 맞다 할 것이다. ‘상왕’, ‘수렴청정’에서 나아가 ‘대주주’, ‘담합’으로 발전하는 그들의 입놀림은 비민주적 의식 수준을 스스로 자백하는 일일 뿐, 이 바람에 그 원인들은 점차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멀었다는 속담처럼, 총선을 시작하기도 전에 대권이니 당권이니 다음의 일을 미리 걱정했던 정치인들의 입에서 험한 말이 흘러나오는 이유는 대개 똑똑하다 자부하는 사람들이 남이 뭐 하는지는 정작 모르고 헛다리 짚는 경우와 비슷한 것… 이해찬, 박지원, 이들 정도면 그런 것쯤에 흔들릴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은 익히 알 수 있는 일이니, 오늘날 벌어지는 일들은 만시지탄이지만 본질적 문제를 지금이나마 짚어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크게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느낌이다.

전해 들은바 다소 의외이지만, 이 두 정치인은 서로의 나이도 정확히 몰랐으며, 그나마 생전 처음으로 단둘이 마주앉았다고 한다.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후 나이 70에 원내대표 출마를 선언하던 박지원 의원은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민주당의 수위라도 하겠다."라는 심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절박감이 넘쳐나는 말이다.

출마를 선언하면 자동으로 당선되는 것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원내대표 선거는 당선자 전원의 투표로 결정되고, 당 대표 선거는 국민까지 참여하는 대규모 경선을 거쳐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담합이니 뭐니 하는 험담으로 자신들이 속한 정당을 수구 언론의 아가리에 쳐넣어 정치적 손해를 끼치고, 이미 경선에 들어간 와중임에도 최고위원회에서 막말을 늘어놓는 이들은 이미 최소한의 정치적 상식마저 저버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얼굴이 사라진 패거리질, 꼼수가 판치는 정치질이 이제는 도를 넘어 아래위도 몰라볼 정도로 횡행하니, 민주통합당의 장래는 실로 암담하다 할 수밖에 없다. 상대의 시각에서 자기편을 돌아보는 냉정함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은 물론 통합진보당의 부정 경선 논란 등, 오늘날 보여주고 있는 민주·진보 진영의 자화상은 한마디로 추하기 그지없어 창피하다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여기에서 얻은 결론이 있다면 진정한 적은 정작 내부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이참에 가차없이 도려내야 한다. 내 안의, 우리 안의 모순을 보자는 말이다.

끊임없이 혁신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아울러 혁신과 진화는 인간이라는 개체가 생태계에서 생존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 점에서 변하지 않는 개개의 생각들이야말로 진정한 적이고 암적 요소이다. 암은 나이순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박정원 편집위원  |  pjw@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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