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4일 일요일

안개 속 겨울도시의 풍경


이글은 한겨레신문 hook 2012-03-02일자 기사 '안개 속 겨울도시의 풍경'을 퍼왔습니다.

서울 석관동에 산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연출전공 3학년. 트위터 @mkmodus

며칠 전 지하철을 타고 닿는 거리에 있는 어느 도시에 들린 적 있었다. 두꺼운 잠바에 귀마개, 내복바지까지 단단히 무장했지만 뼛속까지 스며드는 날카로운 추위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들었다. 여느 지방도시에서나 그렇듯 늦저녁 역전 한복판은 바삐 걸어가는 퇴근길의 노동자들로 복작거렸고 광장에는 술 취한 노숙인이 쭈그려 앉아 있었다. 나는 가까스로 현금인출기를 찾아 몇 장의 지폐를 뽑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이 도시와 내가 대체 무슨 인연이기에 이리도 자주 무거운 발걸음으로 오게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맨 처음 이곳에 왔던 6년 전보다 이곳은 더 화려해졌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 빨라져있었다.
버스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은 어느 때보다 더 낯설게 느껴졌다. 몇 번이고 갔던 길이지만 항상 처음 같았다. 생경한 풍경에 눌려 자꾸만 내가 작아지는 것만 같았고, 무기력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이유에서건 그곳에 가야했고 그곳에 간다면 아직은 내가 세상에 ‘냉소’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강박증적인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버스가 한창 안개 속을 누비며 달리고 있을 때 갑자기 30대 중반 가량의 한 남자가 운전수에게 욕지거리를 쏟아냈다. 자신이 내릴 곳이 어디냐고 몇 번이고 물었는데 대체 왜 대답하지 않느냐는 게 그의 폭발적 분노의 원인이었다. 좋은 말로 그를 말리고 싶었지만 뚜껑 열고 역정을 내는 그 우락부락한 사람을 저지할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며 통탄했던 김수영의 시구가 귓가에 어른거렸다. 친구와 싸우다가 칼로 찔러 죽였다는 저 흔한 사건사고 레퍼토리도 떠올랐다. 그날만 해도 벌써 서너번 그런 광경을 본 것 같았다.
목적지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기 무섭게 나는 형언키 어려운 감정에 휩싸였다. 마치 예술영화전용관의 스크린 속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그곳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희망’을 말했고,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말했고, 두려움 없이 행동을 도모해 “이 썩어빠진 세상을 바꾸자”고 소리쳤다.
그곳은 다름 아닌 쌍용자동차 공장 앞이다. 이 ‘반전’의 도시는, 평택이다. 나는 마치 뿌옇고 차가운 겨울안개 같은 세계에서 하나의 따뜻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그곳에 서서 사람들과 함께 소리치고 또 춤을 추었다. 그곳에 모인 수천명의 사람들은 분노마저 조각조각 파편화시키는 세상에 대해 저마다의 목소리를 냈다. 정리해고 박살내자, 비정규직 철폐하라, 무원칙한 야권연대 기만이다, 신자유주의 끝장내자!
많은 죽음들이 있었다. 대추리의 “가을바람 머물다간 들판”과 “붉게 물들어 가는 저녁놀”을 노래한 고즈넉한 풍경은 이제 동요로만 남았다. 2006년 당시 한명숙 총리의 행정대집행에 의해 이곳에서 평생 농사짓던 주민들의 절규와 함께 모조리 사라진 것이다. 또 우리는 2009년 여름 언론과 대중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정권이 자행한 무자비한 폭력으로 짓밟힌 쌍용차 노동자들의 77일간의 항쟁을 알고 있다. 그 공장에서 난 2012년 신차는 “스타일은 젊어지고 디테일은 깊어졌다”지만, 지난 2월 15일부로 해고 1000일을 맞은 노동자들의 삶은 보다 더 끔찍한 안개 속에 파묻혀왔다. 그러나 들판의 노을을 뭉갠 장본인이나 “해고는 살인이다” 절규한 노동자들을 밀어낸 장본인이나 누구도 그 죽음들에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모두가 ‘복지’를 운운하고 정의를 모사하지만 자신들이 저지른 폭거는 애써 모른 척하는 것이다.
복작거리던 공장 앞에서의 밤이 끝나고 다시 사람들이 썰물처럼 사라지면 어디선가 다시 끔찍한 소식이 들려왔다. 세 번째 희망텐트촌의 밤이 지나고 이틀 후, 스물한번째 죽음의 소식이 들렸다. 이제는 말문이 턱 막혀 어떤 말도 내뱉기 힘들다. 어떻게든 이 죽음의 행렬을 끝장내야 한다는 생각이 온종일 맴돌 뿐이다. 더 많은 이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우리 안에 내면화된 공포의 안개를 뚫고 나아가야 할 때다.
http://alllookzine.net/index.php/archives/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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