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6일 월요일

[사설]또 부는 색깔론, 역풍으로 심판당한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3-25일자 사설 '[사설]또 부는 색깔론, 역풍으로 심판당한다'를 퍼왔습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총선 출마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 이상규 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이 후보등록을 한 것을 계기로 근거없는 색깔론이 또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은 어제 성명을 통해 “서울 관악을은 이 대표의 배후인 ‘경기동부연합’ 몫으로 남게 됐다”며 “(경기동부연합의) 얼굴(이정희) 대신 아예 몸통(이상규)이 나서는 격”이란 진보진영 인사의 평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경기동부연합이란 것에 대해 조직원이라면 성폭력도 눈감아 주는 세력, 김일성 초상화를 걸어놓고 묵념하는 세력이 민주당을 좌지우지하는 통합진보당을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4·11 총선을 계기로 이런 세력에게 국회가 넘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고 묻기도 했다. 

이에 앞서 지난 24일 ㅈ일보는 ‘종북파가 진보당 휘어잡고 진보당은 민주당 끌고가나’란 사설에서 민주당이 이 종북파에 휘둘려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에 반대로 돌아섰다는 논리를 폈다. ㄷ일보는 ‘민주당, 종북세력의 집권전략에 들러리 설 건가’란 사설에서 “소수인 주사파 세력의 협박에 제1야당이 휘둘리는 형국이다”라고 썼다. 이런 글을 접하면 한국 정치 깊숙이 무슨 ‘제5열’ 같은 것이 암약하면서 엄청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착각도 든다. 

이런 언설을 우리는 색깔론 말고 다른 것으로 규정할 방법이 없다. 색깔론은 흑백 이분법, 대중 선동, 확대해석·비약·과장 등 비논리의 요소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반면 이성, 합리, 논리는 없다. 이 비논리성은 폭력적 성격을 띠며 실체가 불분명하고 근거도 빈약한 추측에 의존한다. 경기동부연합이라는, 과거에 존재했던 운동권의 특정 계파를 도마에 올려놓고 온갖 불온 혐의를 마구 씌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근거와 사실이 아니라 소설적 상상력이다. 항상 보아왔듯 색깔론은 폭력적이되 그 폭력성의 책임에서는 자유롭다. 그저 “아니면 말고” 하면 끝이다.

이번 색깔론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다시 전열을 정비한 야권연대를 분열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그 증거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표, 대변인 할 것 없이 나서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면 광화문 광장이 반미집회 아지트가 될 것” “종북시장이 서울 안보를 무너뜨릴 것” 등 무차별적 색깔론을 폈지만 먹히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전철을 피할 줄 알아야 하건만 수구세력들은 거의 관성적으로 색깔론에 의존하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기댈 것은 역시 색깔론밖에 없다는 듯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