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5일 일요일

캐나다 교수 “ISD, 한국은 우리 실수 반복말길”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3-21일자 기사 '캐나다 교수 “ISD, 한국은 우리 실수 반복말길”'을 퍼왔습니다.

FTA 깨어진 약속 ③ 재협상은 가능한가외국 법률가들 “한국법원이 ISD중재 재심할 수 있게 바꿔야”
2010년 8월31일 미국·영국·싱가포르 등 9개국의 법률가 53명이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정부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검토해 폐기하거나 축소하고, 국내 사법제도를 강화해 투자자를 포함한 시민과 공동체에 이익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1960년대에 태어나 지난해까지 2676개 투자협정(BIT)에 도입됐지만, 중재사건이 급증한 것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이 발효된 1994년 이후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나라는 미국으로, 전체(390건)의 31.5%를 차지한다. 거스 밴 하튼 캐나다 요크대 교수(오스굿 홀 로스쿨)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본을 수출하는 국가인데다 문화적으로도 소송에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반대하는 국가들도 생겨났다. 오스트레일리아가 2004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이 제도를 제외시켰고, 브라질 의회는 입법주권을 제한하는 제도라며 투자협정의 비준 동의를 줄곧 거부하고 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포함된 투자협정 81건 가운데 독일·일본과의 협정을 제외한 79건을 국회 비준 절차 없이 행정부가 발효시킨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흑인과 백인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한 흑인우대정책이 2007년 다국적 기업의 공격을 받고 난 뒤에, 인도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공격으로 복제약 출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 탓에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더는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또 미국 투자자에게 호된 신고식을 치른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등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협약에서 잇따라 탈퇴했다.
이들 국가는 어떻게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맞설 수 있었을까? 는 지난달 2~10일 캐나다와 미국의 전문가 13명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국제환경단체인 ‘지구의 벗’의 윌리엄 워런 연구원은 “정부의 의지에 따라, 특히 선거 결과가 재협상이든 폐기든 결정한다”고 말했다. 캐나다 자동차 산별노조(CAW) 소속 경제학자인 짐 스탠퍼드는 “정부는 협정을 철회할 힘이 있지만 대기업으로부터 끊임없이 압박을 받고 있다. 국민이 크고 분명하게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1998년 캐나다 정부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며 집권했지만 여론이 잠잠해지자 1992년 나프타를 체결해 버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 대해 미국 시민사회는 미국의 주 정부들이 지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시민단체 ‘퍼블릭 시티즌’의 토드 터커 연구원은 “대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커졌다”며 “정치환경은 10년 전보다 우호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주 정부는 “한국의 사법제도가 발전돼 있다”며 “미국-오스트레일리아 자유무역협정처럼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제외하자”는 소수의견을 의회에 밝힌 바 있다.
“중재인 독립성 등 확보해 캐나다 실수 반복 말길”남아공·인도, ISD 수용 중지…에콰도르 등은 탈퇴대기업 규제 필요 인식 미 주정부도 재협상 우호적
하튼 교수는 지난해 9월 발표한 연구논문 ‘투자자-국가 소송제 개선’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첫째,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처럼 중재인의 임기를 정하고 다국적 기업의 변호사를 겸임할 수 없도록 한다. 둘째, 무작위로 중재인을 선정해 당사자와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도록 독립성을 보장한다. 현재는 양 당사자가 중재인을 1명씩 지명하고 의장을 맡을 나머지 한 명은 양쪽이 합의해 선임하기 때문이다. 셋째, 투자자의 무분별한 청구를 방지할 사전심사제를 도입한다. 이밖에도 캐나다 정부를 변호했던 스티븐 슈리브먼 변호사는 “중재 판정이 내려지면 국내 법원이 절차와 결과를 검토하고, 중재 판정을 뒤집을 수 있는 재심제를 도입하는 게 급선무”라고 조언했다. 하튼 교수는 “우리는 힘든 과정을 거쳐 교훈을 얻었다”며 “한국은 캐나다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처음부터 잘 해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워싱턴 오타와 토론토/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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