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30일 금요일

[특파원 칼럼] 원전사고는 ‘인재’가 아니다 / 정남구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2-29일자 기사 '[특파원 칼럼] 원전사고는 ‘인재’가 아니다 / 정남구'을 퍼왔습니다.
몇몇 사람에게책임을 덮어씌우고원전 자체의 위험감추려는 ‘인재’론

정남구 도쿄 특파원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닷새째 되던 지난해 3월15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그레고리 야스코 위원장이 하원 청문회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난) 4호기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 수조의 물이 모두 말랐다”며, 큰 우려를 표시했다. 수조엔 대량의 핵연료가 들어 있었다. 거기서 나는 열로 물이 끓어올라 수조가 이미 말랐다면, 핵연료가 손상돼 사태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을 위험이 있었다. 그런데 이틀 뒤 공중에서 물을 뿌리기 위해 날아오른 헬기에서 살펴보니, 4호기 수조엔 물이 많이 고여 있었다. 어찌된 일일까?
이 지난 8일 보도한 것을 보면 그것은 ‘천운’이었다. 2010년 11월 정기점검에 들어간 4호기는 운전 개시 33년 만에 큰 공사를 하느라 원자로 압력용기와 그 위의 원자로 웰이란 곳에 물을 가득 채웠다. 평소엔 물을 넣지 않는 곳인데, 공사 과정에서 작업원의 피폭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대지진과 해일로 원전이 전원을 모두 잃고 냉각기능이 마비되자, 핵연료 저장 수조는 핵연료에서 나오는 열로 물이 말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원자로 웰과 핵연료 수조 사이 벽에 균열이 생겨, 원자로 웰에 채워진 물이 수조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애초 이 물은 3월7일 빼낼 예정이었는데, 작업 공구에 약간 문제가 있어 늦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천운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3월14일 노심 용융을 일으킨 2호기의 압력이 설계치의 2배에 이르는데도 발전소장은 손쓸 길이 없었다. 그는 원자로가 파손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해, 필수인력만 남긴 채 직원들을 모두 철수시킬 준비를 했다. 실제 2호기는 그 뒤 격납용기 어딘가가 파손돼, 후쿠시마 사고에서 새나온 방사능의 90%를 내뿜었다. 하지만 격납용기가 안에서부터 대폭발하는 가장 우려했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그나마 지금의 수준에서 그친 데는 자비로운 신의 손길이 미쳤다고 나는 믿는다. 같은 이유로 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인재’라는 지적에도 반대한다.
물론 사람들의 잘못된 행위가 몇 가지나 겹쳐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거대한 지진해일이 밀려올 가능성을 무시하고 해안의 낮은 곳에 원전을 지었고, 비상용 발전기를 지하실에 설치하는 잘못이 있었다. 이런 문제점에 대한 많은 경고를 정부와 전력회사가 외면한 것도 용서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런 실수를 되짚어 대책을 마련하면, 원전 사고는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
원전은 수많은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 핵연료 피복관과 압력용기, 격납용기 등으로 이뤄진 이른바 ‘5중의 벽’이 방사능 유출을 막고 있고, 모든 전원이 끊겨도 작동하는 비상용 냉각장치가 몇 겹으로 설치돼 있다. 이를 고려하면 대량의 방사능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스리마일에서, 체르노빌에서, 그리고 후쿠시마에서 대사고는 실제 일어났다.
신이 아닌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다루는 기계는 반드시 사고를 낸다. 사고 규모를 키웠든 줄였든, 거기에 작용한 ‘우연’적인 요인들에 견주면 원전 사고와 연결된 인간의 행동은 사소하다. 몇몇 사람에게 책임을 덮어씌우고, 원전 자체가 갖고 있는 치명적 위험을 감추려는 ‘인재’론이 거북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원전 사고가 인재라는 주장은 원전을 짓는 그 행위 자체에 대해 책임을 물을 때만 합리성을 갖는다.
얼마 전 고리 1호기가 12분간 모든 전원이 끊기는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켰다. 책임지울 사람을 찾기 전에, 인간의 한계를 먼저 돌아볼 일이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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