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30일 금요일

"우리가 제대로 보도했다면 이 지경 안 됐을 것"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30일자 기사 '"우리가 제대로 보도했다면 이 지경 안 됐을 것"'을 퍼왔습니다.
[현장] KBS 노조,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사과

2009년은 한국 노동 운동사에서 두고두고 되새겨야 할 해다. 정리해고에 반대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이 해 5월 22일부터 벌인 77일 간의 공장 점거 파업은 2646명에 달하는 노동자의 집단 정리해고와 96명 구속으로 끝났다. 인체를 심각하게 훼손하다 못해 발암물질 논란까지 일으켰던 CS 최루액과 고압 테이저건이 동원된 강경 진압은 12년 만에 일어난 최악의 공안 사건으로 기록됐다.

방송은 쌍용차 사건을 외면했다. 같은 해 8월 11일 공공미디어연구소가 방송 3사의 보도를 분석한 결과 77일간 방송 3사가 쌍용차 사태를 다룬 건수는 SBS 51건, MBC 50건, KBS 49건이었고, 보도 시간은 SBS가 77분 19초, MBC 75분 53초, KBS 64분 51초였다. 공공미디어연구소는 방송3사가 원인분석과 대안제시에 미흡했고, 보도의 60% 이상을 단순 스트레이트 기사로만 채웠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방송이 문제해결을 위한 공론장의 역할을 하지 못"했고 "(회사 회생방안에 대한) 노조 측의 제안을 보도하지 않"았다고 연구소는 비판했다.

비단 쌍용차뿐만 아니다. 많은 장기 투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현실을 언론이 조명해주길 원한다. 그리고 현 정부 들어 언론의 관심이 줄어들었음을 아쉬워한다.

29일, 그간 외면과 아쉬움으로만 서로의 거리를 깨달았던 언론 노동자와 파업 노동자들이 작은 화합의 장을 만들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위원장 김현석)의 '뚜벅이원정단'은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으로 걸어가 파업 조합원들을 만나고, 이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전남 해남, 부산에서 시작한 시청자들에 대한 사과의 발걸음이 쌍용자동차까지 이어졌다. 동삭교차로에 진입한 KBS 뚜벅이원정단. ⓒ프레시안(최형락)

KBS 노동자, 쌍용차 노동자와 만나

뚜벅이원정단은 지난 12일 전남 해남과 부산광역시에서 출발한 KBS 새노조의 국토 도보순례단이다. 일주일에 닷새, 하루 40㎞가량씩 걷는 이들의 이날 일정은 천안에서 시작해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 앞 희망텐트에서 끝났다.

오후 2시쯤 평택에 도착한 원정단 11명은 2시간가량을 더 걸어 쌍용자동차 공장이 있는 동삭교차로에 진입했다. 검게 탄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카락, 피곤에 지친 얼굴은 방송인의 것이 아닌 듯했다.

그러나 곧 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쌍용차공장 진입로에 미리 나와 있던 조합 집행부가 이들을 반겼기 때문이다. 이들은 반가운 표정으로 악수를 나누고 가볍게 포옹했다.

곧바로 이들은 회사 앞에 차려진 희망텐트로 향했다. 희망텐트는 지난 2010년 해고노동자 9명이 해고자들의 생계유지와 투쟁기금 마련을 위해 회사 앞에 차렸다. 해고자 중 120여명 정도가 '생계투쟁'을 하면서 투쟁기금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제대로 취업하지 못해 투쟁기금 15만 원을 제 때 내는 조합원은 한 달 30여 명에 불과하다. 김득중 노조 부지부장은 "이력서에 '쌍용자동차'가 들어간 것 자체가 주홍글씨"라며 "한 달에 100만 원 이상 버는 조합원이 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해고자 대부분은 막노동판, 카센터, 정육점 등을 전전하고 있다.

조용한 표정으로 이들의 얘기를 듣던 KBS 새노조 조합원들이 조심스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복진선 원정대장(뉴미디어기획부)이 먼저 질문을 건넸다. 곧바로 조합원들이 하나 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이렇게 많이 해고됐으니) 상황이 처참하긴 마찬가지겠네요.""말도 못 하죠. 공장 안에 있는 애들도 스트레스로 2명이 죽었어요.""공장 점거 투쟁이 끝난 뒤에 뉴스, 시사 프로그램에서 다룬 적이 있나요?""공영방송이 누구 못지않게 우리 진실을 밝혀줬으면 좋겠는데 잘 안 되네요. 언론이 분위기를 많이 타서 그런지, 잘 안 돼요.""그러게 말입니다…. 저희가 파업하면서 그간 제대로 보도 못 했던 것 사과도 하고, 그러기 위해 왔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과거 제대로 알리기 위해 왔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사이 공장 퇴근시간인 오후 5시 30분이 됐다. 해고 노동자들은 매일같이 아침과 저녁마다 마이크를 켜고 공장을 출퇴근하는 동료들에게 해고의 부당함을 알리고, 쌍용자동차 기술유출 사태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은 특별히 KBS 새노조 원정대가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선전전을 이어갔다.

복진선 대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수년 간 잡아온 마이크였을텐데도, 리포트와 선전은 다른가 보다. 자주 막히던 말문은 발언이 절정에 올라서야 제대로 틔였다.

"저희가 자본에 맞서기 위해 노력했으나 무력했습니다. 저희가 진실을 보도했다면 사태는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언론이 바로 서지 않으면 제2의 쌍용차, 제2의 KEC, 제2의 재능교육 사태가 터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진실을 알리고, 쌍용차의 진정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그게 미디어가 여러분에게 준 커다란 상처를 씻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마이크를 드는 이 마음, 정말 죄송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KBS의 파업대오도 쌍용차 조합원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때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내시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가 권력의 시녀가 되지 않도록, 여러분의 채찍질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불행히도 퇴근하는 노동자 대부분은 원정대를 격려하지 않았다. 대부분 애써 눈길을 피하거나, 관심 있게 지켜본 후에도 말없이 갈 길을 바삐 옮겼다. 그러나 원정대는 해고 노동자들을 직접 만난 것만으로도, 파업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는 듯했다.

복진선 대장은 "파업을 안 했다면 '정말 나쁜 놈이 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해남에서부터 올라오면서 느낀 게 많다"고 말했다.

평택 시내 여관에서 피곤한 몸을 뉘인 이들은 내일(30일), 오산까지 행군한다. 그리고 파업 한 달째인 다음달 4일에는 서울 여의도 KBS본사에 도착할 예정이다. 파업 24일째, 원정 14일째 날이 저물었다.


▲희망텐트를 찾은 KBS 뚜벅이원정단. ⓒ프레시안(최형락)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퇴근시간에 맞춰 KBS 뚜벅이원정단이 '특별 선전단'으로 나섰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이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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