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31일 토요일

[사설] 이명박 정부의 불법사찰, ‘정권 탄핵’ 대상이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3-30일자 사설 '[사설] 이명박 정부의 불법사찰, ‘정권 탄핵’ 대상이다'를 퍼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명박 정권의 비열한 진면목이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실체가 드러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 실상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국회의원, 언론, 재벌, 노조 등 닥치는 대로 뒤를 캤다. 시·분 단위로까지 행적을 정리해 놓은 치밀함, 전 정권 출신 ‘표적’ 인사들에 대한 집요한 추적, 철저한 ‘충성 성적표’ 매기기 등 곳곳에서 “이럴 수가…”라는 신음이 절로 나온다. 그렇게 해서 이 정권은 언론을 장악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공직자를 내쫓고, 공직과 무관한 시민까지 괴롭혔다.
사찰 문건에 넘쳐나는 불법·탈법 행위를 보면 과연 이 정권에 ‘정부’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사찰을 맡은 총리실 공무원들은 권력의 지시에 따라 냄새를 맡고 물어뜯는 사냥개였다. 검찰은 법과 정의의 수호자는커녕 범죄 은폐와 꼬리 자르기에 급급한 정권 보위대였다. 청와대부터 시작해 총리실, 검찰 등 어디를 둘러봐도 사건에 연루된 ‘피의자’들뿐이다.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맡길 곳조차 마땅히 없는 현실에서 어떻게 정상적인 국가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겠는가.
이 사건의 몸통이 어디며 누가 책임을 져야 할지도 더욱 분명해졌다. 사찰 문건에 선명히 박힌 ‘BH 하명 사건’이라는 여섯 글자가 웅변한다. 방송사 낙하산 인사 개입 등 청와대가 남긴 권력남용의 발자취는 너무 뚜렷하다. 이제 청와대는 무엇을 ‘하명’했고, 어떤 보고를 받았으며, 사후처리를 어떻게 했는지 소상히 밝혀야 한다. 많은 국민이 이 사건을 접하면서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 그리고 닉슨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을 겹쳐 떠올린다. 이 대통령이 침묵과 거짓말로 어물쩍 넘어가기에는 너무 많은 불법 사실이 드러났다.
권력의 불법적인 사찰은 단순히 이명박 대통령을 넘어 여권 전체의 책임이다. 사찰의 계기가 된 촛불사태 이후 끊임없이 색깔론 공세를 펴며 이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바로 한나라당, 지금의 새누리당이다. 권력의 언론장악 기도에 맞장구를 치며 도와준 것 역시 여당이며, 그들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낙하산 경영진’을 변함없이 지원하고 있다. 권력 내 비선조직에 의한 국정농단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여당이 청와대 눈치만 살필 때부터 비극은 이미 잉태됐다. 심지어 정두언·정태근 의원 등 여당 동료 의원들이 사찰을 호소했을 때 친박계 역시 친이계 내부의 권력다툼이라는 시각에서 느긋이 즐긴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새누리당의 이상일 선대위 대변인은 어제 이 사건에 대해 “과거 김대중 정권이 정·관계 인사, 언론인 등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자행했던 불법도청을 연상케 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전형적인 물타기 발언이다. 현 정권과의 단절을 그토록 강조해온 여당 ‘신권력의 입’에서 고작 그런 수준의 말이 나온 것에 실망을 금하기 어렵다. 역시 가재는 게 편이다.
정치권 등에서는 이번 사안이 총선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고 말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사찰 사건은 ‘쟁점’이 될 수 없다. 국민의 존엄성을 짓밟고 국기를 문란하게 한 행위를 놓고 무엇을 다툰다는 말인가. 이 사안은 결코 선거의 유불리 차원에서 얄팍하게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권력의 사전에서 사찰이라는 단어를 영원히 지움으로써 이 땅의 어느 누구도 다시는 사찰의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하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현 정권에 몸담은 사람 모두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탄핵을 자청해도 모자랄 상황이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고 빠져나갈 궁리에만 바쁘다. 불법사찰의 비극을 넘어서는 또다른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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