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7일 화요일

[사설]대통령 턱밑까지 간 사찰 의혹, 성역 없이 수사하라


이글은 경향신문 2012-03-27일자 사설 '[사설]대통령 턱밑까지 간 사찰 의혹, 성역 없이 수사하라'를 퍼왔습니다.
이제 대통령 턱밑까지 이르렀다.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사건의 실타래가 풀려가면서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의혹의 핵심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청와대 지시로 증거를 없앴다고 밝힌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변호사비 4000만원을 전달한 이가 임 전 실장의 측근인 이동걸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밝혀지면서다. 이 보좌관은 임 전 실장이 노동부 장관일 때 보좌관으로 일했고, 임 전 실장의 팬카페 운영진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앞서 임 전 실장은 이 사건으로 구속된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에게 ‘금일봉’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지난주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이 증거인멸의 ‘몸통’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몸통이 몸통을 자처하는 일이 희귀한 까닭에 그의 주장을 믿는 이는 거의 없다. 이제 이 전 비서관 뒤에 가려진 ‘진짜 몸통’이 실체를 드러내려는 것 같다. 임 전 실장 재임기간 동안 대통령실장 산하 민정수석실·고용노사비서관실에서 청와대의 증거인멸 지시 사실이 새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거액을 뿌린 정황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 전 실장이 금품 전달을 직접 지시하거나 개입하지 않았다 해도 그를 둘러싼 의혹이 벗겨지는 것은 아니다. 장진수씨는 지난해 1월 징계위원회에 출석해 “최종석 청와대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최씨는 대통령실 직원이고, 대통령실의 최고책임자는 임 전 실장이었다. 대통령실 직원이 관련된 사안인 만큼 임 전 실장이 이를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최씨는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고 몇 달 뒤 주미대사관으로 파견을 떠났다. 임 전 실장이 묵인하거나 비호하지 않았다면 있기 힘든 일이다. 장진수씨가 어제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민정수석실은 소송과정을 지켜본 것은 물론 거기에 든 비용까지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실장이 부하 직원들의 갖가지 ‘입막음’ 시도를 알지 못했다면 직무를 사실상 유기한 것이고, 알고도 묻었다면 범죄행위다.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 검찰 수사는 느리기 짝이 없다. 재수사에 착수한 지 11일, 장진수씨가 출석하고 이영호씨가 ‘공개 자백’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 검찰은 오히려 임 전 실장의 금일봉 전달 경위에 대해 “아직 조사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벌써부터 꼬리 자르기에 나서려는 것인가. 검찰이 재수사에서도 변죽만 울렸다가는 또 한 번 ‘부러진 검찰’이라는 조소를 면치 못할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