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9일 목요일

[MB가 파괴한 한국] 강정마을, 마을도 마음도 파괴됐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3-28일자 기사 '[MB가 파괴한 한국] 강정마을, 마을도 마음도 파괴됐다'를 퍼왔습니다.

ⓒ민중의소리 시공사측 용역직원이 '해군기지 반대' 깃발을 뜯는 모습을 보이면서 평화활동가와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같은 모습은 강정마을에서 더이상 특별한 모습이 아니다.

26일 오후 3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사업소 정문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평화활동가 3명이 농성을 하고 있었다. 3시 5분 사업소 정문이 열리고 시공사측 용역 직원 4명이 공사장 밖으로 나왔다. 검정색 트레이닝복에 머리를 벌겋게 물들인 용역 직원이 가던 길을 멈추고 ‘해군기지 반대’라고 적힌 깃발을 뜯는 시늉을 했다.

새벽부터 농성중이던 평화활동가 문승연(33)씨가 “깃발 찢지 마”라고 제지를 하자 용역 직원도 이에 질세라 문씨에게 다가가 “당신 뭐야”라고 응수했다. 몸싸움이 발생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한 여성 활동가가 “싸우지마. 괜히 시비 걸고 싸움 일으키는 게 쟤들 수법이야. 넘어가선 안돼”라고 만류를 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이 같은 장면은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더이상 특별한 상황이 아니다. 경기, 광주 등 육지에서 온 경찰이 상주한 이후에는 경찰과 다투고 공사가 시작한 이후에는 해군과 시공사인 삼성물산, 대림건설 직원과 다투는 게 이제 일상이 됐다.

평화롭던 강정마을, 2007년부터 모든 상황은 달라졌다

평화롭던 강정마을에서 위기가 찾아온 것은 2007년이다. 1930명이 살던 마을에서 87명이 총회를 열고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일방적으로 내렸다. 당시는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와 안덕면 화순리가 해군기지 건설 장소로 거론될 때로, 대부분의 주민들은 해군기지에 대해 관심조차 없을 때였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된 주민들은 총회를 주도한 마을회장을 탄핵하고 해군기지 반대위원회를 만들었다. 해군기지 찬반 주민투표도 진행했다. 1050명의 유권자 가운데 725명이 참여한 선거에서 주민의 94%가 ‘해군기지 반대’를 선택했지만 한번 선정된 결과는 뒤바뀌지 않았다.

공사는 이명박 정부 들어 본격화됐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도보순례 등을 하며 '해군기지 반대'를 외쳤지만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2009년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도의원들은 구럼비 일대에 대해 ‘절대 보존 지역’ 지정을 해제하면서 정부에 힘을 보탰다.

야5당으로 구성된 제주해군기지조사단이 제주해군기지 사업의 재검토를 촉구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지난해 국회는 제주 해군기지 관련 예산을 정부 원안인 1327억원에서 43억원으로 대거 삭감시키며 사실상 공사를 중단시켰지만, 이명박 정부는 2011년 집행되지 않은 국방부 예산을 활용해 기지 건설에 들어갔다. 주민들의 반대 속에 강정마을 일대에 공사장 펜스를 쳤던 정부는 화약운반에 대한 승인이 떨어지자 구럼비 일대를 하나둘씩 파괴시키고 있다.


ⓒ민중의소리 강정마을 곳곳에는 경찰 병력이 24시간 내내 상주해있다. 사진은 강정포구로 경찰들은 주민이나 시민의 용무를 확인한 뒤 길을 열어줬다.

정부의 공사 강행으로 가장 피해를 본 것은 마을주민이었다. '살기 좋은 1등 마을'이라 해서 '일강정'이라 부르던 강정마을은 더이상 예전의 '일강정'이 아니다. 명절마다 노인회관에 모여 함께 제사를 지내던 풍습도, 제사가 끝나면 강정초등학교에 모여 민속놀이를 하던 풍경도 모두 다 사라졌다.

이제 해군기지 반대측 주민들은 찬성측 주민이 운영하는 게이트볼장에 가지 않는다. 해군기지 문제로 몸싸움이 일어나 마을 주민끼리 소송을 하는 일도 빈번해졌다. 삼촌, 조카 사이가 갈라졌고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이 사라졌다. “해군기지 반대해서 승진이 안됐다더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마을 주민 김모(56)씨는 “해군기지 공사가 시작된 이후 서로 의지하며 살던 강정마을은 사라졌다. 저부터 찬성측 주민이 운영하는 슈퍼에가지 않았다. 그 집 주인하고 말도 섞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평생 교통법규 위반 벌금 딱지 한번 받지 않았던 주민들은 범법자가 됐다. 주민들은 공사를 반대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연행이 되고 벌금을 선고받았다. 강동균(54) 마을회장은 업무방해, 공유수면관리법 위반 등으로 벌금 1천만원을 선고 받았고 조모씨도 500만원을 선고 받는 등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이 내야하는 벌금은 모두 합쳐 2억7천만원에 달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시공사측은 주민 37명을 대상으로 3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등 주민들에 대한 압박수위는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우리 마을을 파괴시켰다"


ⓒ민중의소리 기자가 강정마을을 방문한 26일에도 구럼비 해안가 일대에는 9차례 발파작업이 진행됐다.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입만 열면 이명박 정부에 대해 성토했다. 강정마을에서 밀감농사를 하는 김모(56)씨는 “강정마을 해군기지는 첫단추부터 잘못 꿴 사업”이라며 “첫단추부터 잘못 꿰다보니 오류가 줄줄이 발생하고 무리수가 많았는데도 이명박 정부는 일방적으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모(74)씨는 "이 작은 마을에 경찰이 몇 명이 있는지 모르겠다. 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대신,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만 연일 반복하고 있다. 강정마을 앞바다는 강한 바람과 조수간만 차이로 15만t 크루즈 선박은 물론 대형 군함도 입출항이 어렵다는 내용이 담긴 2009, 2010년 해군 보고서가 뒤늦게 공개됐지만 정부에서는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제주도가 “15만t급 크루즈 선박 2척이 접안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나올 때까지 공사 정지 명령을 검토한다”고 했지만 정부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제주도가 청문 절차가 들어간 상황에서도 정부는 구럼비 일대를 폭파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21일 구럼비 발파에 사용된 화약만 1.5t이었다.

구럼비 바위 발파로 산산조각 난 것은 바위뿐만이 아니다. 그간 어떻게든 마을을 지키고자 했던 주민들의 가슴도 산산조각이 났다. 74세의 한 노인은 "마을이 둘로 갈라지는 상황에서도 해군기지를 끝까지 반대할 수 있었던 것은 후손들 때문이었다"며 "마을을 지키고자 했던 꿈이 이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겨우 마음을 다잡은 주민들은 공사를 강행하는 정부를 상대로 해군기지 건설을 끝까지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26일에도 주민들은 제주도청 앞에서 '공사 중지'를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강동균 회장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강정마을이 예전처럼 주민들간 오순도순 살아가는 마을로 되돌아 가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고 말했다. 이양준(70)씨도"우리 마을이 평화롭던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민들이 마지막으로 기대하는 것은 4.11총선이다. 지금의 여대야소가 여소야대로 바뀔 경우 국회가 주민의 편에 설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한조각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때쯤이면 철옹성 같던 정부도 달라질 수 있을까. 김원효(56)씨는 “우리의 의견을 묵살하는 정부한테 더 이상 기대를 하는 것은 없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서 우리를 도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혜규 기자jhk@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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