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5일 일요일

제주 강정 마을과 한국의 사회적 자본


이글은 한겨레신문 hook 2012-03-13일자 기사 '제주 강정 마을과 한국의 사회적 자본'을 퍼왔습니다.

미국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유럽에서 잠시나마 일을 해본 유학생. 학업을 마친 후의 미래는 오리무중.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살며 일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사람. 세계에서 살고 싶지만, 아직 한국말도 잘 못하는 사람. 트위터: @TellYouMore


다시 한 번 한국 사회는 갈가리 찢기고 있다. 사회적 갈등을 풀어가는 한국 사회의 처참한 수준이 강정 마을 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제주 해군 기지 건설 이외의 문제에서 국가의 방향과 정책에 연대할 수 있었던 시민들은 해군 기지라는 단일 주제로 서로 비난하고 냉소하며 평생을 보지 않을 원수처럼 돌아선다.
사실 매번 이랬다. 새만금, 부안 핵폐기장, 4대강, FTA 그리고 제주 해군 기지까지 한국 사회 내 주요 쟁점들은 사회 구성원 간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난 후에야 어물쩍 넘겨져 왔다. 사회의 규범과 네트워크, 그리고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를 나타내는 사회적 자본의 축적은 국내 정치 지도자들의 불필요한 추진력과 일방향적 리더쉽에 밀려 매번 찬밥 신세에 머물렀다.삼성경제연구소가 2009년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세계 72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사회적 자본 수준에서 한국은 세계 25위, OECD 가입국에선 22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제주 해군 기지 건설. 표면적으론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묶고 연좌 농성을 벌이는 주민 및 활동가와 불법을 서슴지 않는 공권력, 이와 더불어 구럼비 바위로 대표되는 환경 보호와 경제 개발이라는 대립적 가치가 갈등의 핵심인 듯 보인다. 하지만 사실 제주 해군 기지 건설엔 이 문제들과 함께 수많은 사회적, 국제적 갈등 요소들이 얽혀있다. 이 모두 사회 구성원 간 논의와 양보를 통해 합의로 풀어야 했던 점들이었다.
너무 늦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라도 강정 마을의 핵심 갈등 요소 두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지금 제주 해군 기지 갈등의 범위를 확장시켜 갈등의 강도를 낮추지 않는다면 타협과 합의는 요원할 뿐이다.
첫째로 중앙 정부의 일방향적 리더쉽이 문제였다.
강정 마을 해군 기지 건설은 총 예산 9,770억 원이 들어가는 국책 사업이다. 하지만 부지 결정은 불과 한 달여 만에 내려졌다. 이제 강정 마을 주민의 대부분은 해군 기지 건설 정책에 전문가가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주민들은 6년 전 정부의 일방적인 의사 결정 과정을 들며 “난 전혀 몰랐던 일”이라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만큼 당시 정부와 찬성파에게 가졌던 배신감과 불신이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상대방을 신뢰할 수 없다면 양보와 타협은 있을 수 없다. 신뢰는 사회의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필수요소. 세계은행은 1997년 보고서에서 사회적 신뢰가 10% 높아질 때 경제 성장은 0.8%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한국 정치 지도자들의 추진력은 종종 사회적 갈등 문제의 초기 갈등 비용을 회피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후 더 큰 갈등을 촉발해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여 사회적 자본을 갉아먹는다.
둘째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벌이는 한국 균형 외교의 축이 무너질 수 있다.
KBS 김용진 기자의 저서 에 드러난 위키리크스 미국 대사 비밀문서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 대사는 문서에서 중국을 괴물로 표현하며 “중국 파워의 부상에 직면하여, 아시아 본토에 유일하게 주둔하고 있는 우리 군대를 철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라는 미국의 입장을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낸다. 또한 버시바우 대사는 남북한이 통일된 이후에도 주한 미군 기지 철수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표명한다. 이런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 볼 떄 제주 해군 기지는 미국이 중국 견제용으로 용이하게 사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제주 해군 기지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도 역사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KBS 김용진 기자의 조사에 따르면 1947년 이승만이 제주를 미군기지로 1969년에는 박정희가 제주를 오키나와 대신 미군 핵 기지로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중국이 제주 해군 기지의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한 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한미, 한일 무역 교역량의 합을 넘어선 한중 무역량이다. 한국의 중국 경제 의존도가 점점 더 커지는 상황에서 제주 해군 기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벌이고 있는 한국 균형 외교의 축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이런 복잡하고 전략적인 문제를 단순히 반미주의자에 소행으로 밀어붙이는 일부 극우 신문의 행태는 사회적 갈등의 기폭제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위원장은 국익을 언급하며 강정 해군 기지의 지속적인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에겐 민주주의에 핵심 가치인 타협과 신뢰를 바탕으로 둔 사회적 자본에 축적보단 당장 눈앞에 있는 총선이 우선이다. 해군 기지로 국민을 갈라치기 하여 재벌 개혁, 정권 심판론, 측근 비리, 그리고 정수 장학회마저 모두 덮어버릴 심산이다. 지난 10일 “국민의 방송” KBS가 네이버 톱 1면으로 올린 “제주 해군 기지 총선 쟁점화” 기사는 이 두 정치인의 의도에 화답하는 듯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한국 사회는 갈등 그 자체에만 집중할 뿐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선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갈등의 해결 과정은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축적된 사회적 자본에 기반을 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9년 발간한 에서 “사회적 자본은 저성장 및 양극화 시대에 접어든 한국 사회에 새로운 발전 모델을 제시해준다.”라고 주장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결과보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 수백 년 동안 주민의 노력과 믿음을 바탕으로 쌓아온 강정 마을의 공동체가 제주 해군 기지 건설 갈등으로 한순간에 파괴됐다. 이미 신뢰라는 본질이 무너진 상황.
도대체 우린 무엇을 위해 갈등하고 반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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