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8일 수요일

피해자 쪽박 차도 은행은 안전


이글은 시사인 2012-03-28일자 기사 '피해자 쪽박 차도 은행은 안전'을 퍼왔습니다.

중소기업 ㄱ사는 1개월 뒤 해외 업체로부터 수출대금 100만 달러를 받을 예정이다. 그러나 고민이다. 달러화 가치가 내려가고 있기 때문. 현재 환율(1달러당 940원으로 가정할 경우)에서 100만 달러는 9억4000만원이지만 한 달 뒤에는 9억1000만원(1달러당 910원)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위험을 ‘헤지(hedge:방어)’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은행과 ‘선물환 계약’을 하는 것이다. 한 달 뒤 환율이 어떻게 변동하든, 은행이 ㄱ사의 100만 달러를 예컨대 9억3000만원(1달러당 930원)에 사도록 계약하면 된다. 기업이 ‘일정한 규모의 달러화를 일정한 가격으로 은행에 팔 수 있는 권리(풋옵션)’를 매입한 것이다. ㄱ사는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위험 중 일부(예컨대 920원으로 환율 하락)를 은행으로 떠넘긴 것이고, 그 대가로 일정한 수수료를 지급한다.

키코는 이런 선물환 계약을 변형한 상품이다. 예컨대 은행 직원이 ㄱ사로 찾아와 달러당 940원을 ‘약정 환율’로 보장해주겠다고 한다. 풋옵션을 주겠다는 이야기다. 다만 이에는 복잡한 조건들이 붙어 있다. 왼쪽 그림을 보면, 환율이 달러당 900~940원인 경우에만, ㄱ사는 은행에 달러당 940원으로 100만 달러를 팔 수 있다. 한 달 뒤 환율이 900원이라도 키코 계약자인 ㄱ사가 풋옵션을 행사하면 100만 달러로 9억원이 아니라 9억4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키코 덕분에 4000만원이라는 수익이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키코 계약은 한 달 뒤의 실제 환율이 낮을수록 기업이 이익을 보고 은행은 손해를 보는 구조다. 그런데 은행의 손실에는 한계가 설정되어 있다. 만약 1달러가 녹아웃(Knock-Out) 환율인 900원 이하로 떨어지면 키코 계약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환율이 940~960원에서는, 실제 환율이 약정 환율보다 높으므로 기업이 굳이 풋옵션을 행사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환율이 녹인(Knock-In) 지점인 960원을 넘어서는 순간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계약금액인 100만 달러의 2배인 200만 달러를 약정 환율인 940원으로 은행에 인도해야 한다. 키코 계약에는, 은행이 ‘일정한 규모의 달러를 일정한 환율로 기업으로부터 살 수 있는 권리(콜옵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기업은 달러당 960원(실제 환율)으로 200만 달러(19억2000만원)를 사서 약정 환율인 달러당 940원(18억8000만원)으로 은행에 팔아야 한다. 기업엔 당장 4000만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더욱이 키코 계약은 환율이 내릴 때와 달리 오를 때는 소멸되지 않는다. 그래서 환율이 1000원이 되면, 기업의 손실은 1억2000만원, 1500원인 경우는 11억2000만원으로 올라간다. 결국 기업은 수수료를 내지 않는 대신 엄청난 환율 위험을 떠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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