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6일 월요일

한일병원 식당노동자들 "삭발까지 했지만 달라진 것 없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3-24일자 기사 '한일병원 식당노동자들 "삭발까지 했지만 달라진 것 없다"'를 퍼왔습니다.

ⓒ민중의소리 한일병원 식당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천막

서울 쌍문동에 위치한 한일병원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자 '노동자의 어머니'로 불리는 고 이소선 여사가 영면한 곳이다. 고 이소선 여사가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해 한일병원으로 옮겨진 이유는 생전 20년 동안 이소선 여사의 주치의였던 김응수 병원장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노동자의 어머니'를 치료했던 김응수 원장은 82일째 병원 앞 천막 농성 중인 식당노동자들에게 '타도의 대상'이 돼버렸다. 19명의 한일병원 식당노동자들이 지난 1월 1일 해고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총력결의투쟁 후 병원 측 "직접 고용되고 싶으면 20년 후에 와라"

봄이 왔음을 느끼게 하는 3월 21일 한일병원 입구를 바라보고 오른쪽에 위치한 식당노동자들의 천막은 위태로워 보였다. 바로 옆에서 포크레인과 트럭차가 보도블록을 새로 깔고 있었다. 천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가자 8명의 식당노동자가 둘러앉아 허리를 숙인 채 리본에 글씨를 쓰고 있었다. 한 식당노동자는 리본에 ‘김응수 나쁜 놈’이라는 글을 쓰고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자 “지난 16일 총력결의투쟁 때 얼마나 나쁜 놈인지 알았다”고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이어 그는 “당시 여기저기에서 연대하러 와서 사람 수도 많았고 홍희덕 의원까지 와 있었다”며 “그 때 병원 실장이라는 사람이 의원님한테는 ‘대화하겠다’, ‘잘 풀겠다’고 말해놓고 그 날 협상에서 한 말은 ‘직접 고용받고 싶으면 20년 후에 와라’는 말이었다. 결국 그 사람 입장이 책임자인 김응수 원장 입장 아니냐”라고 설명했다. 

표면적으로는 김응수 원장의 책임은 없다. 노동자들은 병원이 아닌 ‘아워홈’이라는 용역업체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병원은 2011년을 끝으로 ‘아워홈’과 계약 해지하고 ‘CJ프레시웨이’를 새로운 사업자로 선택했다. ‘아워홈’ 측은 노동자들에게 한일병원이 아닌 다른 사업장으로 가라고 했다. 하지만 새로운 사업장은 강남. 대부분 의정부에서 사는 노동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2시간이나 걸리는 곳이었다. 정희순(63)씨는 "새벽 5시까지 출근하려면 3시에는 지하철 타야 하는데 그 때는 지하철도 다니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결국 노동자들은 전보를 거부했고 회사는 이들을 해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당노동자들이 김응수 원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탁업체에서 일했지만 실질적으로 병원의 지시를 받아 일했기 때문이다. 1999년 병원 직영에서 한화로 위탁운영을 맡긴 후 13년 동안 여러 용역업체가 계약을 해왔지만 식당노동자는 병원에서 고용한 영양사와 용역업체에서 고용한 영양사 양 쪽에서 작업지시를 받으며 일해왔다. 지난달 23일 대법원의 '현대차 불법 파견' 판결에서는 현대차가 작업 지시를 내렸다는 이유 등으로 현대차를 직접 사용자라고 명시했다. 

최저임금에 불과한 임금이었지만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는 계속 이어져 왔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식당노동자들은 그동안 초과수당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점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은 것에 반발해 노조를 만들었다. 한씨는 "우리가 스스로 노조에 자발적으로 연락해서 찾아갔다"며 "초과수당 못 받은 것도 있지만 마치 우리를 하녀 부리듯이 부려 먹는 영양사 밑에서 더는 일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노조를 만든 그 해를 넘기자마자 19명의 식당노동자는 모두 해고통보를 받았다.

"내가 머리 자르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1993년부터 19년 동안 일해온 고정화(52)씨는 “처음 여기 왔을 때 아들이 3살이었는데 지금은 군대 가있다”며 “그 때 월급이나 지금 월급이나 차이가 없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이어 그는 커피를 건내며 “오히려 직영으로 운영될 때는 상여금이 400%였고 아이 유치원비까지 나왔었다”며 “현재는 최저임금 그 규정만 지키도록 주고 있다”고 씁슬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고 씨는 애써 웃으며 “군대에 있는 아들이 힘내라고 군 월급을 모아 홍삼을 샀다고 한다”며 “안 그래도 힘들 텐데 아들이 이 일 때문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29일 삭발을 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삭발을 한 이유에 대해 그는 “내가 머리만 자르면 다 복직될 줄 알았다”며 “하지만 그 때 당시에만 잘 풀겠다고 말하고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성토했다.


ⓒ민중의소리 한일병원 식당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천막 내부

고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옆에 앉아있던 정 씨는 “말도 마. 그때 정말 다들 눈물바다가 돼서 얼마나 억울하고 서러웠는지 몰라”라고 거들었다.

정 씨는 1998년 입사해 자녀 같은 영양사가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도 회사에서 표창장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그 역시 해고를 당해야 했다. 그는 “솔직히 내가 이 나이에 여기서 일해봐야 얼마나 더 일하겠느냐. 길어야 2년이다”라며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엄동설한에 감기 걸려 가며 싸우는 것은 우리 후배들을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지금까지 고용승계 됐었다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앞으로 후배들은 계약기간마다 쫓겨나도 아무 말도 못할 것 아니냐”라고 성토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일반노조 조합원이 들어와 “오늘 CJ프레시웨이와 병원이 협상한다고 한다”며 “괜히 저 쪽 자극할 수도 있으니까 나무에 건 리본 때자”고 말했다.

식당노동자들은 “왜 맨날 우리만 법을 지키고, 규칙을 지켜야 하냐”고 투덜거리면서도, 리본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날 CJ프레시웨이와 한일병원이 노조에 전해준 회의 내용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 뿐이었다. 김모(53)씨는 “그렇면 그렇지. 지들이 우리 문제 해결해주려면 진작에 해결했겠지”라며 “당장 말만 뻔지르르하게 하고 실제로는 우리가 스스로 힘 빠지게 하려는 수작”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병원 관계자는 "노조 입장에서는 추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좋게 풀어가자'는 우리의 의사를 교환한 것"이라면서도 "아직 어떤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김 씨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우리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제는 억울해서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천막 밖으로 나오자 점심 때 한창 공사 중이었던 보도블록이 새로 깔려 말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배웅나온 고 씨는 “우리들 복직도 저 보도블록처럼 빠른 시일 내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인사 대신 건넸다.

김대현 기자kdh@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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