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2-02-16일자 기사 '조중동은 왜 '프로야구 승부조작'에 열 올리나?'를 퍼왔습니다.
김효재 소환과 맞물린 검찰발 '승부조작' 파문
프로야구 승부조작 파문이 뜨겁다. 지난 해 축구에서 시작된 승부조작 파문이 배구를 거쳐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야구로까지 번지며 거대한 ‘이슈의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다. 언론의 경쟁은 뜨겁다 못해 가히 폭발적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른바 ‘스포츠 찌라시’들이 폭발의 발화점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간지-방송-스포츠지의 완결적 체계를 갖고 있는 조중동이 맨 앞에 서있다.
흡사, ‘바이러스 퍼뜨리기’ 전략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금 조중동의 보도 체계를 보면 일간지는 가장 핵심적 사실(실명)을 스트레이트로 전하며 사실에 권위를 세우고, 이를 방송이 ‘단독’, ‘특종’의 성격으로 받아 전한다. 그리고 이 중간 과정에선 스포츠지를 통해 대중의 말초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확인되지 않은 주변 정황을 퍼뜨리고 있다. 아침 신문, 낮 인터넷, 저녁 방송뉴스를 통해 하루 만에 사건의 ‘볼륨’을 완결 짓고 있는 셈이다.
▲ '프로야구 승부조작' 파문과 관련해 조중동은 15~16일 연일 파급력 있는 보도로 상황을 주도해가고 있다. 15일자 중앙일보는 넥센 문성현의 이름을 깠고, 동아일보는 'LG투수 2명'을 밝혔다. 16일자 조선일보는 LG 투수가 박현준이라고 밝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승부조작 파문 끌고 가는 조중동
조중동이 프로야구 승부조작 파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끌고 가고 있는 형국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15일 중앙일보는 넥센의 투수 문성현이 승부조작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했다고 처음 보도했다. 최초로 실명을 공개한 보도였다. 같은 날 동아일보는 넥센이 아닌 LG를 지목했다. LG 주전급 투수 2명의 이름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를 받아 16일자 조선일보는 LG의 주전 투수는 박현준이라고 못을 박았다. 중앙 보도는 ‘수도권 구단의 누군가’를 ‘넥센 문성현’으로 좁힌 것이며 동아의 보도는 ‘주전급 투수 2명’을 ‘LG 선발투수 2명’으로 구체화해 대중의 호기심에 불을 질렀다. 에이스 투수의 실명을 드러낸 조선의 보도는 사건의 장기 흥행을 보증하는 형국이다.
단, 이틀 만에 아직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유망한 젊은 투수 서너 명이 가장 영향력이 있다는 유력 일간지에 의해 우리시대 ‘거악’으로 지목됐다. 조중동이 이렇게 ‘안전판’을 깔아주자, 받아쓰기로 조회수 장사를 하는 매체들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결코 놓칠 수 없는 아이템이란 전의가 기사 곳곳에서 번뜩인다. 15일부터 지금까지 ‘프로야구 승부조작’과 관련해 쏟아진 기사의 건수는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는 것이 빠를 정도로 무수한 양이다.
프로야구 승부조작 파문 관련 보도는 한국 언론의 부박함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경연장이 돼가고 있다. 언론의 기본을 묻는 정색함이 무색할 정도다. 일단, 확인되지 않은 ‘팩트’가 그야말로 난무하고 있다. 15일 SBS 8시뉴스와 인터뷰 한 구단 관계자는 “40번 정도 똑같은 통화를 하면서 아예 글을 써놓고 읽어 줬는데 기사는 다 다르게 나갔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 증언은 지금까지의 보도가 최소한 확인된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음을 말해준다.
언론 부박함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경연장
언론이 최대한 대중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실과는 동떨어지더라도 흥미 위주로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모든 언론의 관심이 ‘관련되었다는 그 선수가 누구이냐’ 외엔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비극이기도 한데, 지금 언론에게 승부조작과 관련한 ‘팩트’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선수의 이름을 밝혀도 될 수준인가, 아닌가의 여부만 관건이다. 구단 관계자와의 통화는 이 여부의 간을 보기 위한 요식 행위일 뿐 구단이 뭐라고 말하는지는 전혀 개의치도 중요하지도 않은 상황이다.
두 번째 문제는 검색에 의한 기사와 베껴 쓰기의 문제다. 지금 포털을 장식하고 있는 기사의 상당수는 유명 야구 사이트들에서 누군가 작성한 글을 토대로 그럴듯하게 상황을 추리하고 있는 유형의 것들이다. 앞선 기사를 무작정 베껴 쓴 것으로 보이는 기사도 상당수다. 이러한 기사쓰기 방식은 정보의 정당함과는 상관없이 이미 ‘그럴 것이다’고 추론되고 있는 풍문과 소문들을 언론이 뒤따라 ‘사실’로 추인해주는 방식이다. 소문이 기사화되고 이미 기사화된 소문이 다른 매체의 숙주가 되면서 스스로 진화해가는 전형적인 황색 저널리즘의 구현이다. 프로야구 승부조작 파문이 갓 알려진 시점부터 확산될 때까지의 기사들을 검색해보면, 결국, ‘그랬다더라’는 소문이 무한 반복 재생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현장 확인도 전혀 되지 않고 있다. 이 정도 파급의 이슈라면 응당 관계자와 현장에 대한 구체적 확인과 검증은 필수적이다. 사실을 잘 못 확정지을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되고 연루자는 이름이 거론되는 것만으로 치명적 피해가 불가피하다. 그래서 정론이라면 거론되고 있는 해당 선수는 물론이고 구단 및 협회 관계자 및 수사 기관 그리고 범죄 사실에 등장하는 현장에 대한 취재가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지금까지 언론에 등장한 건 ‘구단 관계자’와 ‘협회 관계자’의 인터뷰 정도뿐이다.
그나마 이들은 모두 익명이었으며 강하게 혐의를 부인했다. 현재까지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근거라고 할 만한데, 언론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대신에 언론은 대구지검이 수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 역시도 어느 언론에 따르면 더 수사할 계획이 없다고도 한다. 뭐가 뭔지 모를 상황이다. 해당 선수는 사실을 부인하고 또 다른 선수는 연락조차 되질 않는 상황에서 선수의 심경까지 전하는 언론도 있다.
사실관계 없이 선수 이름 장사에만 열 올리는 언론
상황이 이렇다보니 당연히 어느 사이트에서 어떤 방식으로 ‘승부 조작’이 이뤄졌다는 것인지 확인조차 되지 않았다. 첫 볼넷, 첫 실책, 첫 안타 등의 항목들에 베팅이 이뤄졌다고 하더라는 것뿐이다. 이는 그 자체로는 이번 승부조작 혐의와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다. 하지만 언론은 이를 ‘불법 도박 사이트’와 ‘승부조작’이라는 부정적 이름으로 호명하며 그 자체를 이번 사건의 개연성 문제로 바꿔치고 있다.
지금 사건을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 가운데 해당 선수가 있는 일본으로 출국한 이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아니면 최소한 불법도박 사이트에서 프로야구와 관련한 베팅이 얼마나 있었고, 그 양상이 지금 얘기되고 있는 것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파고 있는 이가 있는지 묻고 싶다. 16일 언론이 박현준 선수의 실명을 공개한 것은 LG의 백순길 단장이 일본으로 출국했다는 사실에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바로 그런 것이다. 정황만 갖고 확정짓는, 직접적 취재가 아니라 간접적 추론으로 판단을 해버리는 몹쓸 관행이다.
물론, 프로야구 승부 조작이 있었을 수 있다. 제안을 받았다는 선수까지 나온 마당에 언론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복무하는 것은 당연하다. 프로야구의 경우 워낙 대중적 관심이 높은 종목으로, 이 과정에서 일부 과잉된 열기와 추측된 사실이 등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 정도가 아니다. 모호한 실체를 두고 언론이 연일 부피를 최대로 키워가며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어느 사이트를 통해서 어떤 방식으로, 누가, 언제, 어떻게 승부조작을 한 것인지, 기사의 요건이 되는 사실 관계들이 거의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선수 이름 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많은 전문가와 현장 관계자들이 야구에 있어 승부조작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 역시 승부조작이 ‘있다, 없다’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아니다. 하지만 야구의 경우 타 종목과 달리 지켜보는 눈이 워낙 많고, 선수의 플레이가 거의 매 순간 느린 화면으로 반복 중계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또한 수십 년 야구를 해 온 전문가들 수십 명이 양측 덕 아웃에서 쌍심지를 켜고 선수의 플레이를 지켜본다.
투수 1명을 매수해서 원하는 조작의 결과를 내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첫 타자 볼넷의 경우 선발 투수를 매수하면 가능할 것 같지만 이는 야구에 대한 초보적 이해일 뿐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투수의 투구 역시 전혀 칠 수 없는 볼을 스트레이트로 던진 것이 아니다. 스트라이크를 잡으며 기술적으로 볼넷을 내주는 것인데, 타자가 볼을 쳐버리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간다. 이는 어느 선수에게 볼이 갈 지를 예측할 수 없는 첫 실책에 대한 베팅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미 예정된 결론에 상황을 꿰맞추면 다 그럴듯한 개연성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베팅이 확률 게임이란 점에서 매우 낮은 확률에 대해 섣부른 추측을 해선 곤란하다. 야구의 경우 누굴 매수하고 매수하지 않고를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단 얘기이다.
그래서 구체적 증거가 나오기 전에 정황만으로 상황을 단정 짓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은 이런 기본적인 언론의 자세와 역할 그리고 책임에는 관심이 없다. 대중을 더 세게 자극할 무엇, 오로지 선수의 실명만 궁금할 따름이다.
▲ 16일자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검찰에 소환된 사실을 거의 '누락'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비중으로 뒤로 미뤘다. 중앙일보는 16면에 박스 기사로 배치했고, 조선일보는 10면 사이드에서 다뤘다.
검찰발 승부조작 파문, 이면의 문제는 없는 것인가?
그래서 혹시 뭔가 너머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프로야구 승부조작 파문이 언론에 알려진 것은 공교롭게도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사퇴한 시점, 검찰 소환이 이뤄진 시점과 맞닿아 있다. 지난 몇 년간 이 정부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검찰 발 언론 플레이를 활용해왔다. 프로야구 승부조작 파문 역시 태초의 출발은 검찰발 뉴스다. 하지만 검찰은 이상하게도 사건을 찔끔 흘려 놓곤 의혹이 꼬리를 물어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오히려 관망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슈의 소용돌이를 불러 언론을 쑥대밭을 만들어 놓곤 태연하기 그지없다. 신속한 수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힐 의지도 없어 보이고 사실 관계 입증에 자신도 없어 뵌다.
이런 검찰의 애매모호함을 조중동이 덥석 물어 상황을 요리조리 굴려가고 있다. 한편에선 조회 수 장사를 하고 다른 한 편에선 김효재 수석 건을 밀어내고 있다. 대중성과 정파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일거양득, 꿩 먹고 알먹는 보도인 셈이다.
16일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김효재 수석 관련 보도를 거의 단신 처리했다. 대부분의 매체들이 모두 김 전 수석의 검찰 소환을 1면 보도한데 비해 조선과 중앙은 10면과 16면에서 박스 기사로 처리했을 뿐이다. 김 전 수석이 빠진 조선과 중앙의 1면에는 프로야구 승부조작 관련 기사가 들어갔다. 이 역시 너무 결과론적 해석, 지나치게 정치적인 지면 보기라고 해야 할 것인가? 조중동의 승부조작 파문 보도에 비하면 그렇게 과한 것 같지는 않은 지적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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