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시사인 2012-02-03일자 기사 '석패율제? 이름도 어려운데 합의는 더 어려워'를 퍼왔습니다.
석패율제 도입을 놓고 야권이 소란하다. 민주통합당은 ‘하자’ 하고 통합진보당은 ‘안 된다’ 한다. 총선은 다가오는데, 지역주의를 극복할 묘안은 여전히 요원하다.
“저녁 약속 잡아놓고 오후 4시에 짜장면을 왜 시켜먹어야 하나!”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이 도입 논의를 진행 중인 ‘석패율제’에 대해 이렇게 촌평했다. 지역주의와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극복하려면 ‘독일식 정당명부제’라는 더 맛난 밥상이 있는데, 왜 그런 어정쩡한 제도를 도입하려고 하는 것이냐, 간식 줘놓고 저녁밥을 포기하게 만들려는 거대 정당의 ‘꼼수’ 아니냐, 이런 의미다.
이에 대해 대구 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의 반응은 육두문자와 함께 나왔다. “XX, 지역주의 최전선에 한번도 서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절박감을 죽어도 모른다. 이렇게 해서라도 지역주의에 구멍을 내야지, 안 그러면 불모지에서는 후보조차 구할 수가 없다.”
ⓒ뉴시스 1월27일 대구를 찾은 민주통합당 지도부. 김부겸 최고위원(왼쪽 일곱 번째)을 비롯한 영남 출마자들은 석패율제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석패율제’ 도입을 둘러싸고 정치권에 논란이 거세다. 여야보다 야권 내부에서 더 논쟁이 치열하다. 통합진보당은 “민주통합당이 석패율제를 도입한다면 야권연대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라며 배수의 진까지 치고 나왔다. 도대체 이름도 어려운 ‘석패율제’가 뭐기에 야권 연대에까지 비상이 걸렸을까.
석패율제는 말 그대로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아깝게 떨어진 후보를 비례대표로 미리 중복 등록했다가 구제하는 제도’다. 현재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는 각 당이 취약 지역에서만 이 제도를 적용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이를테면 이렇다. 한나라당이 비례대표 4번을 광주 지역 출마자에게 배정하고 이 지역 출마자를 대상으로 비례 후보 명단을 만든다. 광주 지역 출마자 전체가 명단에 오를 수도 있고, 원하는 사람만 올릴 수도 있다. 투표 결과, 광주에서 한나라당 지역구 당선자가 3분의 1 이하(중앙선관위 안, 여야 합의에 따라 더 낮출 수도 있다)로 나오면 이 리스트에 올라 있는 낙선자 가운데 10% 이상 득표를 하고(최소한의 득표력은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장 아깝게 떨어진 후보를 비례대표 4번으로 구제하는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비례대표 6번은 전남, 8번은 충남 등에 배정할 수 있다. 원래 각 당이 비례대표 아무 번호나 석패율제 대상으로 배정할 수 있으나 홀수 번호는 여성 몫으로 되어 있어 이를 보장하려면 자연스레 짝수 번호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같은 방식으로 민주당은 2번에 대구, 4번에 부산, 6번에 경남 식으로 배정할 수 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대안?
석패율제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김부겸 최고위원처럼 “이렇게라도 지역주의 완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석패율제를 도입하면 각 당의 불모지에서도 후보들이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선거운동을 할 수 있으며, 적으나마 1~2석은 지역구 당선자를 낼 수 있고, 어차피 각 당에 배분될 전체 비례대표 숫자가 변동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소수당에도 절대 불리할 게 없다는 논리다. 민주통합당에서 가장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김부겸 최고위원은 “석패율제 얘기가 나오니까 대구·경북 후보들 눈이 반짝반짝해지고 있다. 만약 석패율제 도입이 좌절된다면 민주당으로 출마할 영남 후보들은 다 후보직을 반납하겠다고 할 정도로 이 제도에 대한 기대가 크다”라고 말했다.
당초 석패율제에 대해 부정적이던 문재인 상임고문과 문성근 최고위원도 찬성 쪽으로 돌아섰다. 부산·경남 쪽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이 지역에서 야당 생활을 오래 한 인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안전판’에 대한 열망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를 감안해 문재인·문성근·김부겸 같은 영남 사령탑들은 비례대표 명단에서 자신 이름은 빼겠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지역에서 오래 고생한 원외 위원장들에게 먼저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안 찍어줘도 비례대표 될 수 있는 것 아니냐” 하며 지지자들 사이에서 동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측면도 있다.
ⓒ뉴시스 통합진보당 대표단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주장했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180도 다른 시각에서 석패율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가장 강조하는 논리는 석패율제가 지역주의 완화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천호선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지금 나오는 안대로라면 한나라당이나 민주통합당이 열세 지역에서 구제할 수 있는 의석수가 많아야 2~3석이다. 민주통합당이 대구·경북에서 한두 석 얻는다고 지역주의가 완화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지역구 출마자가 비례대표 일부를 잠식함으로써 직능 대표나 소외 계층을 대변해야 할 비례대표의 근본 취지가 훼손된다”라거나 “지역구 주민에게 1차 심판을 받은 후보를 다시 국회의원으로 끌어올리는 건 주민들 의사에 반하는 처사다”라는 논리도 있다. 반대파가 석패율제의 폐해를 강조하기 위해 동원한 이른바 ‘전여옥 부활론’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흐름이라면 서울에서 한나라당이 완패한다. 그러면 서울도 석패율제 대상이 되고 아슬아슬하게 낙선한 전여옥이나 나경원이 비례대표로 부활할 수 있다”라는 것이 반대파의 주장이다.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석패율제에 동조하는 것은 호남보다 수도권에 대한 염려 때문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석패율제는 한나라당 호남 진출, 수도권 중진 기사회생, 영남 야권연대 저해…. 민주당이 야권연대 중시하면 합의 깨야 맞다”라고 트위터에 날렸다.
석패율제 반대론자들은 대신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수를 1대1로 하고, 각 당의 의석수가 각 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정확하게 배분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오랫동안 이 제도를 연구해온 노회찬 대변인은 “그래야 유권자의 표심을 의석수에 정확하게 반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소수당의 경우 이 제도가 도입되면 지금 같은 승자독식 구조에서보다 의석수 확보에 훨씬 유리해진다. 문제는 이 제도를 도입하려면 지역구를 대폭 줄이고 비례대표는 크게 늘리는 대대적인 구조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독일식 정당명부제에 호의적인 민주통합당 인사들조차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다”라고 손사래를 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사정을 통합진보당도 모를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19대 총선에 출마하는 야권 단일후보가 모두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공통 공약으로 내세운다면 이번에 석패율을 양보할 수도 있다”라는 절충안이 나온다. 하지만 이 역시 출마자들이 스스로 자기 지역구를 없앨 수 있다는 데 동의해야 하는 것이라 합의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 총선은 다가오는데, 석패율제는 이름만큼이나 합의도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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