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일 수요일

“가슴만 보려하지 말고 언니들 진심을 보세요”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2-01일자 기사 '“가슴만 보려하지 말고 언니들 진심을 보세요”'를 퍼왔습니다.
[이안의 컬쳐필터] 영화 과 ‘나꼼수’ 가슴 논란

명색이 그래도 배구부인 중학생 사내 녀석들이 있다. 그런데 이 녀석들, 여학생들과 시합을 해도 15 대 0으로 지는 형편없는 놈들이다. 여학생들 옷 갈아입는 걸 훔쳐보다 들켜 봉변을 당하거나, 가슴을 만지는 느낌이 어떤 지가 바람을 가를 때 손바닥에 닿는 느낌과 비슷하다는 소리를 듣고 빠른 속도로 내지르면 더큰 가슴을 만지는 느낌이려니 하면서 언덕에서 자전거 타고 냅다 굴러내려 다치건 말건 관심사는 오로지 여자 가슴뿐이다. 그러니 친구들에게든 선생님들에게든 배구부가 아니라 ‘바보부’라고 무시당해도 발끈할 줄도 모른다. 속된 말로 ‘찐따’들이다. 일본 영화 (감독 하스미 에이이치로)의 주인공들이다.
어느 날 새로 부임한 젊은 여자 국어 선생님 테라지마 미카코(아야세 하루카)가 자신이 감명 깊게 읽었다는 시 ‘도정(道程)’을 인용하며 어떤 곳이나 상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의 소중함을 전하는 첫 인사를 하는데 일본어로는 그 발음이 성적으로 순결한 상태를 일컫는 ‘동정(童貞)’과 같다며 킬킬거리다 제 풀에 흥분해 코피 줄줄 흘리는 꼴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사내애들 그 나이 때 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 녀석들은 좀 도가 지나치다. 오죽하면 덜컥 배구부 지도를 맡게 된 선생님이 가슴을 보여준다고 약속하면 1승을 해보이겠노라며 처음으로 연습이라는 걸 다할까. 그것도 ‘가슴, 가슴!’ 구호까지 외쳐대면서.
그깟 가슴 하나 보겠다고 심야 성인 프로그램 시간 기다리고, 성인 도색 잡지 구해 꽁꽁 숨겨서 돌려보고, 생전 관심 없던 훈련이라는 것도 하고, 심지어 재능있는 후배를 부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여태 꼼짝 못하고 받들어왔던 무시무시한 선배한테 떼로 덤벼 두들겨 맞는 용기도 낸다.
미카코라고 난처하지 않을 턱이 없다. 먼저 보여주겠다고 부추긴 것도 아닌데 바보스런 사내놈들 의욕 좀 북돋으려다 느닷없이 가슴을 보여주지 않으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쁜 선생이 되어 버릴 지경이다. 바보 제자들이 그나마 노력이라는 걸 하게 된 마당에 1승을 하는 건 보람되지만, 그 승리에 걸린 약속을 지키는 게 옳지도 당당하지도 않다는 것 때문에 속이 탄다.

영화 <가슴배구단> 포스터.

이쯤 되면 쉬쉬하려 해도 소문이 안 나는 게 이상할 판이다. 소문을 낸 여학생이 내뱉는 비난도, 그 소문의 실체를 확인하고 교사직에서 해고하려는 학교의 처사도 상식적으로 당연하다. 학원 스포츠 코미디 의 바보들도 그 정도는 안다. 그래서 미카코가 교장 앞에 불려가 추궁을 당할 때, 그건 자신들이 바람일 뿐 선생님의 약속이 아니었다고 제법 의젓한 모습도 보이지만, 막상 미카코의 가슴을 볼 희망이 사라진 경기에서 보이는 모습은 풀기 하나 없이 축 늘어진다.
은 남자배구팀 고문을 맡고 있는 한 여교사가 ‘우승하면 부원들에게 가슴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던 사연을 라디오 프로그램에 보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동명소설(미즈노 무네노리 저)이 원작인 영화다. 시대 배경은 가슴 보는 게 어마어마하게 아슬아슬한 경험으로 여겨지던 1979년.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여자 가슴 한 번 보려다 코피 터뜨릴 나이의 애들도 아니고, 결혼 경험까지 있는 아저씨들이 보여 달라던 비키니 차림의 여자 가슴 때문에 시끄럽다.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벌어진 온갖 비리 의혹을 파헤치며 ‘가카가 그럴 분이 아니죠’라든가 ‘역시 가카의 꼼수는 대단하십니다’라고 킬킬대며 로 덜컥 투사 이미지로 대중에게 인기몰이를 하던 아저씨 4인방이 지핀 불씨가 요란하게 번지고 있다.
지난 21일 ‘나와라 정봉주 국민운동본부’ 홈페이지에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한 젊고 풍만한 여성이 가슴 윗부분에 ‘가슴이 터지도록 나와라 정봉주’라는 문구를 적은 비키니 사진을 올렸고, 몇몇 여성이 비슷하거나 좀더 노출 수위가 높은 사진를 올렸다. 이들이 이른바 ‘정봉주 구하기 비키니 인증샷’ 놀이를 한 건 자신의 몸을 부당한 정치 탄압에 반대하는 표현수단으로 내보이는 도발일 수도 있었다.



그 이후가 문제였다. 나꼼수 3인방이 이를 두고 ‘정봉주 의원은 현재 성욕 억제제를 복용하고 있으니 마음 놓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시기 바란다’거나, ‘가슴 응원 사진 대박이다. 코피를 조심하라!’거나, 심지어 자위 뒤처리용 휴지로 쓰지는 않겠다거나 하는 발언을 한 것이 어줍잖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집어삼킬 불길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 <가슴 배구단>.

비키니 인증샷 놀이가 걸그룹들 엉덩이며 가슴 끈적끈적하게 내보이는 것보다 뭐 더 자극적인 것도 아니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도배된 온갖 성인 사이트 광고보다 더 음란한 것도 아니다. 딱 걸린 건 ‘나꼼수’는 ‘진보’여야하고, ‘진보’는 ‘엄숙’해야 한다는 오해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저씨들이 과연 진보인가? 언제는 엄숙했었나? 가령 이 아저씨들이 걸핏하면 입에 올리는 구호가 ‘쫄지마, 씨바’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쫄다’는 증발하여 적어진다는 뜻의 ‘졸다’에서 나온 비속어다.
그런데 ‘씨바’는 성행위를 한다는 것을 일컫는 ‘십 할’에서 나왔다. 그러니 이 아저씨들의 구호는 남성 성기가 겁먹고 위축돼 성불능이 될까봐 두려워하는 거세공포에 대한 음담이었다. 그 거세공포는 여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남성 사회의 상징 질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의 중학생들이 여자 가슴 한 번 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땀 흘리고, 눈물 흘리다가 이뤄야할 무언가를 찾게 되는 것과는 애초에 다른 얘기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남성으로 성장한다. 그런데 비키니 인증시위 논란은 알 것 다 알고, 볼 것 다 본 어른들이 닥치고 유치찬란하게 놀다 벌어진 일이다. 뭐 대단한 목적이나 성장을 바란 것이 아니라, 지금 탄압 받으면 성불구 될까봐 겁나 죽겠으나 정력 센 놈처럼 보이고 싶다는 허세 놀이가 일으킨 파장이다. 사실 나꼼수 4인방은 ‘원래 그런 분’들이었고, 방송 내내 시덥잖은 성적 농담을 즐겨왔건만 새삼스레 문제가 되는 건 우습고 한심하다.
나꼼수 아저씨들이 비키니 인증샷을 통해 보게 되는 것이 의 변태 영감 무천도사처럼 여자 가슴보고서 코피나 팡팡 터뜨리는 자극이 아니라면 ‘휴지 운운’하는 발언 정도는 좀 삼갔어야하지 않을까? 의 남학생들이 가슴을 보고자 했을 때, 미카코가 보여주게 된 건 커다란 젖가슴의 시각적, 물질적 쾌락이 아니라 그 가슴 안에 담긴 진심이었다. ‘가슴이 터지도록’ 나오라는 게 설마 결혼도 다 해봤던 아저씨들의 코피겠는가? 그 아저씨들이 제대로 정치적 저항을 계속하라는 진심이겠지.

이안·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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