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2-02-05일자 사설 '[사설]대법원은 석연찮은 법관 임용탈락 해명해야'를 퍼왔습니다.
사법연수원을 최상위권 성적으로 수료한 변호사가 지난해 말 경력법관 임용에서 탈락한 사실이 경향신문 보도로 확인됐다. 대법원은 구체적 탈락 사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법조계에선 그가 한때 진보신당 당원이었고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상근한 점이 문제가 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법관을 뽑을 때 연수원 성적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해당 변호사는 연수원을 마칠 때 성적 4위로 연수원장상까지 받았다. 판사로 임관될 수 있었지만 뜻한 바 있어 변호사를 택했다가 지난해 법관 임용에 지원했다. 그는 국선 전담 변호인으로 활동할 때도 실력과 인품 모두 호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이 변호사를 면접하며 정당 가입 경력과 활동을 주로 물었다고 한다.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사법부가 사상 검증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만하다.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의 월급은 일반 로펌 변호사의 절반에 불과하다. 연차가 올라가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진다. 경력법관 임용에서 탈락한 변호사는 대학 시절 쪽방촌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것이 계기가 돼 민주노총에서 일하게 됐다고 한다. 경력법관 제도의 취지가 무엇인가. 연수원을 나오자마자 법대에 앉은 판사들이 시민적 상식을 반영하지 못하고 기계적 판결을 내린다는 비판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가진 법조인을 법관에 임용하자는 것 아닌가. 이번에 탈락한 변호사야말로 제도의 취지에 어울리는 인물이다. 대법원이 진보신당 가입을 문제삼았다면 그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 실정법상 공무원의 정당 가입이 금지돼 있음을 감안한다 해도, 한때 정당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공직 임용을 거부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이다.
더욱이 내년부터는 경력법관 제도에서 더 나아가 전면적인 ‘법조 일원화’가 시행된다. 신규 판사 전원을 변호사·검사 등의 경력이 있는 법조인 중에서만 뽑게 된다. 만약 이번과 같은 밀실임용이 되풀이된다면 법조 일원화는 사법개혁의 성과가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대법원장 또는 그 대법원장을 임명한 정권의 ‘코드’에 맞지 않는 이는 임용에서 배제되고, 반면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 특채 때처럼 ‘현대판 음서제’의 혜택을 받는 이가 나올지 모른다.
대법원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는 엊그제 법조 일원화에 따른 법관 임용의 구체적 기준과 절차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조속한 시일 내에 투명하고 공정한 임용 기준을 만들어 논란의 여지를 차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먼저 해야 할 일은 지난해 말 경력법관 임용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이다. 오늘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소통 2012 국민속으로’ 같은 행사도 의미가 있지만, 사법 불신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려면 ‘바로잡을 수 있는 오류’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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