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4-08일자 사설 '
구명을 호소하는 절규가 이어지는 1분20초 동안 경찰은 다섯번이나 장소를 묻고 또 물었다. ‘못골놀이터요?’ ‘지동요?’ ‘성폭행당한다고요?’ ‘지동초등학교요?’ ‘주소 알려주세요.’ 심지어 ‘누가 그러는 거죠? 어떻게 알아요? 문은 어떻게 들어갔어요?’라고 물었다. 그 사이 ‘빨리요, 빨리’를 외치던 피해자의 목소리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로 바뀌었고, 곧 비명과 오열 등으로 변했다가 6분쯤 뒤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늑장 부리고 어깃장 놓는 사이 한 선량한 20대 여성은 처참하게 죽어갔다. 비정규직으로 휴일근무에 야근으로 가계를 도우며 키웠던 작은 꿈도 산산조각났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부친의 카드빚을 갚고 동생들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없이 휴대전화 부품 조립에 매달렸던 그의 가녀린 몸은 토막난 주검으로 버려졌다. 그날 경찰이 방치한 것은 한 연약한 여성, 생활에 허덕이던 한 비정규직 노동자만이 아니다. 경찰과 통화하면서 느꼈을 그의 절망은 남은 이들의 절망이었고, 그가 감금돼 사망하기까지 6~7시간여 동안의 공포 역시 국민 모두의 것이었다. 2012년 4월 그날, 한국 경찰이 버린 것은 온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었다.
경찰관들이 줄줄이 달려 나오는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뒤처리에 급급했던 탓일까? 아니면 검찰과 밥그릇 싸움에 몰두하느라 혹은 권력의 하청을 처리하는 데 매달리느라, 오랫동안 제 본분을 잊어버린 탓일까. 정작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에는 무능하기 짝이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신고센터는 신고받은 내용마저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고, 수사팀은 엉뚱한 곳에서 헤맸으며, 그나마 3시간, 7시간 뒤 차례로 늑장 출동했으며, 긴급한 사건임에도 무선망 공동청취(공청)를 하지 않았고, 그 결과 범인을 코앞에 두고도 피해자가 살해되기까지 유원지나 골목길, 학교 운동장 따위를 배회했다. 해당 경찰서 수사과장은 이튿날 오전 9시 현장에 출동하고도 마치 신고 직후부터 현장을 지휘한 것처럼 발표했고, 112센터는 통화 시간과 내용을 거짓 발표했다. 한국 경찰의 맨얼굴은 이렇게 끔찍했다.
어제 조현오 경찰청장이 112운영체계 개선을 지시했다. 그러나 삼척동자도 알지만, 그 근본원인은 경찰 지휘부의 무능과 정치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시국치안에 매몰돼 민생치안은 방치하고, 시민의 생명과 인권보다 검찰과의 밥그릇 싸움에 매달린 결과인 것이다. 조 청장과 지휘부가 대오각성하고 책임을 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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