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레프트21 2012-04-14일자 기사 '총선 결과가 보여 준 것 ― 우파 결집과 진보 전진으로 나타난 정치 양극화민주당에 대한 여전한 불신, 박근혜는 이를 잘 이용했을 뿐'을 퍼왔습니다.
이번 총선 결과는 노동계급의 선진 대중과 진보 염원 청년들의 낮은 투표율에서 드러났듯이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이 이들의 급진화와 열망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함을 보여 줬다. 덕분에 이득을 본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승리할 수 있었다. 민주당이 수용하지 못한 급진화는 통합진보당의 전진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사회 양극화는 좌우 정치 양극화를 낳고 있다.
민주당의 한계가 뚜렷이 드러났다. 정치 양극화 속에서 기회주의적 중도세력의 입지가 줄어든 것이다. 지난해 말 일부 NGO 리더들과 양대 노총 전 위원장들까지 끌어들이는 ‘좌클릭’을 하며 새 출발을 할 때만 해도 민주당의 앞날은 밝아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다.
ⓒ사진 이윤선
포퓰리스트(계급 동맹적) 자본주의 정당이라는 민주당의 기본 성격은 변하지 않았고, 과거 정부 10여 년 동안 민주당 세력이 저지른 배신도 너무 최근의 일이어서 대중의 기억에서 쉽게 지워질 수 없었다. 게다가 민주당은 예컨대 김진표 공천 등 공천 과정에서 진보 염원 노동자ㆍ청년의 실망만 자아냈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한미FTA 발효,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우파의 정면돌파에 부딪히자 말바꾸기와 갈팡질팡만 거듭했다. 그래서 많은 반우파 노동자ㆍ청년은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이번에 투표율이 비교적 낮은 수준에 머문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현 정부의 주요 우파적 정책들에 사실상 반대하지 않는 민주당의 알맹이 없는 ‘정권 심판’론에 많은 노동자ㆍ청년들이 굳이 투표소에 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민주당에 투표했을 때 과연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에 대한 믿음을 그들에게 주지 못한 것이다.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를 통해 민주당의 부족함을 메우려 한 것도 대세를 바꿀 수 없었다.
2010년 지방선거 때도 사람들은 민주당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천안함 북풍 국면에서 수구 냉전 회귀 위험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에 투표소로 몰렸다. 지난해 말 서울시장 선거 때는 NGO 리더 박원순이라는 대안이 있었던 것이 주효했다. 반면 이번에는 그런 요소들이 없었다. 천안함 때와 달리 이번 북한 위성 발사 문제는 진보 지지층의 냉전 위기의식을 크게 일으키진 않았다. 제국주의 압박의 직접적 결과이기보다는 북한 관료의 국내 지배용이라는 점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KBS 파업 노동자들이 폭로한 불법 사찰 사건도 민주당은 활용할 수 없었다. ‘노무현 때도 사찰했다’는 청와대와 박근혜의 물타기에 설득력 있는 변명을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파의 ‘김용민 막말’ 마녀사냥에도 기회주의적이고 수세적인 태도만 보였다.
그래서 많은 진보 염원 노동자ㆍ청년은 굳이 투표소에 갈 동기와 의욕을 갖지 못했다.
민주당의 꾀죄죄함에서 득을 본 박근혜
디도스와 돈봉투 사건이 잇달아 터진 지난해 연말 우파의 위기는 심각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 뻔뻔스런 뒤집기 시도에 나섰다.
먼저, 조기등판한 박근혜가 ‘쇄신’ 사기극과 간판 바꾸기를 하며 이명박 색깔 빼기를 했다. 이제 우파의 얼굴과 실질적 주인은 박근혜가 됐다. 이어서 정권은 한미FTA 발효,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을 강행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반우파 정서를 뒤집지 못할 바에야 우파 지지층이나마 확실하게 결집시키려 한 것이다.
언론 파업에 대해서도 무지막지한 탄압을 지속했다. 이런 문제들에 힘을 집중해서 정면돌파하려고 다른 전선에서는 양보를 했다. 학생들의 분노 폭발 위험을 의식해 등록금 찔끔 인하와 청소 노동자 임금 인상 부분 수용을 한 일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우파는 민주당이 한미FTA 등을 시작한 장본인이고 진정으로 반대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나아가 총선이 다가올수록 북풍 몰이, 마녀사냥, 색깔론 등 온갖 구태의연한 수구적 방법으로 우파 결집에 매달렸다.
막판에는 나꼼수 김용민이 예전에 성인방송에서 한 말을 맥락에서 떼어내 공격 소재로 삼았다. 5년 동안 전방위적 개악과 수구적 작태를 자행한 우파 정권에 대한 심판 선거를 난데없이 8년 전 김용민의 실수 심판으로 바꿔치기하려 한 것이다. 여기저기서 흙탕물을 튀기고 악취를 풍기며 젊은층이 ‘더러워서 투표 안 한다’는 심정을 갖도록 애썼다.
우파의 새 얼굴로 등장한 박근혜는 손에 붕대를 감고 전국 ‘대장정’ 유세를 하며 안간힘을 썼다. 박근혜는 부패하고 탐욕스런 1퍼센트만의 대변자라는 ‘이명박근혜’의 본질을 숨긴 채, 우파 지지층의 향수와 동정심, 지역주의 등을 자극하며 표를 결집시켰다. 청년층의 정치적 급진화 속에서도 노동계급의 계급투쟁 수준이 충분히 높지 않은 상황이 지역주의가 먹힐 틈을 제공한 것이다.
우파 거물들의 퇴출
그러나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얻은 성적과 영향력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 우파는 이번에 진보 지지 노동자ㆍ청년들이 충분히 투표장에 나가지 않으면서 패배를 모면한 것일 뿐이지 힘을 키운 게 아니다. 실제로 18대 총선과 비교하면, 우파의 득표는 오히려 줄었다.
당시 주요 우파 정당이던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자유선진당은 1백85석을 얻었고, 정당비례에서 9백85만여 표를 얻었다. 그러나 이번에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의 의석은 합쳐서 1백57석이고, 정당비례 득표는 두 당을 합쳐 9백81만여 표에 그쳤다. 투표율이 늘었는데도 정당 득표는 오히려 약간 줄어든 것이다.
우파의 이 성적은 한두 가지 이슈에서 ‘좌클릭’을 하고 빨간 잠바를 입고 다니면서 겨우 지켜낸 것이다. 도 이번 선거에서 “우파 이슈의 실종 사태”를 한탄했다. 홍준표, 홍사덕, 전여옥 등 우파 거물들의 패배와 퇴출도 반가운 일이다.
이 모든 일들은 2008년 촛불항쟁 이후 계속돼 온 급진화의 결과로 진보진영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특히 한국 정치의 중심이고 키를 쥐고 있는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은 거의 2004년 탄핵 때 수준으로 참패했다. 박근혜 대세론을 위협해 온 ‘확장성의 한계’가 여전한 것이다. 박근혜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가 매달렸던 부산에서도 문재인과 야당 세력이 어느 정도 부상했다.
민주당은 18대 총선 당시 88석에서 이번에 1백27석으로 늘었고, 정당 득표는 당시 4백30만여 표에서 이번에 7백77만여 표로 늘었다. 진보정당의 성장은 더 두드러진다. 18대에 진보정당들은 의석 5개와 정당 득표 1백47만여 표를 얻었는데, 이번에는 의석이 두 배가 넘는 열셋이 됐고, 정당비례 득표율도 2백54만여 표로 4년 전보다 1백만 표가 넘게 늘었다.
현재 불균등한데다 아직 충분히 좌경화되지 못한 청년층 급진화는 박원순, 나꼼수 등으로 상징되는 민주당 왼쪽 스펙트럼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마지못해 차선, 심지어 차악 선택이라는 심정으로 민주당에 투표했을 것이다. 반면 일부 사람들은 급진화 정서를 진보정당과 후보에 대한 지지로 표출했다. 그래서 통합진보당이 제3당으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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