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대자보 2012-03-09일자 기사 '전교조의 학교폭력 대처, 팔이 안으로 굽나'를 퍼왔습니다.
[정문순 칼럼] 교원평가제에 이은 또 하나의 조직이기주의
고등학생 조카 녀석과 대화하다가 학을 뗀 적이 있다. 대화 중에 서슴없이 전교조 욕을 하는 것이었다. 돈을 해먹는다나, 어쩐다나. 누가 그러더냐고 물으니 조선일보에 그렇게 나와 있단다. 집에서 받아보는 신문이 그것뿐인지라 아이한테는 다른 사고의 여지가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수구언론은 전교조 출범 이후 20년이 넘도록 온갖 중상모략을 가하며 할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오늘날 전교조의 사회적 신뢰도가 예전만 같지 못함은 부인하기 힘들 것 같다. 그 이유가 전적으로 못된 언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철없는 조카에게까지 조선일보의 매도가 먹혀들어간 것은, 전교조가 교원평가제를 놓고 정부와 수년 째 줄다리기를 하고 있고 학부모 단체들과도 틈이 생기면서 제 밥그릇 챙기는 인상을 준 탓이 컸다고 본다.
최근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자살을 막지 못한 교사가 직무유기로 형사 입건되자 전교조는 성명을 냈다. 전교조는 죽은 제자에게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는 말로 운을 뗐다. 도의적 책임이라는 말은 책임 질 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 나오는 말이다. 과연 전교조는 형사처벌이 지나치다고 반발했다. 경찰의 사법 처리는 교사에 대한 책임 전가이고 교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이게 전교조가 낸 성명서가 맞는가 싶었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학생인권조례를 언급한 것만 빼면 교총이 하는 말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었다.
입건된 그 교사는 죽어가는 아이가 벼랑 끝에서 마지막으로 호소했는데도 끝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자신이 살릴 수도 있는 제자의 목숨을 구하지 못한 교사는, 경찰에 불려가는 신세가 되자 상담기록 날짜를 허위로 썼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학교폭력으로 목숨을 끊은 아이들 뒤에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한 교사가 어김없이 뒤에 있었다.
학교폭력에 제대로 손을 못쓴 학교를 원망하면 인성교육 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변명하고, 그럼 경찰력이 개입하겠다고 하면 부당한 간섭이라며 알아서 할 테니 준사법권을 달라는 말이 일선 학교에서 나왔다. 전교조는 이 논리가 앞뒤가 맞다고 생각하는가? 전교조는 제자의 죽음을 구실로 힘을 키우려고 하는 학교를 원망해야 한다. 가해 학생도 제자이니 선도나 교화가 필요하다는 전교조의 말은 예쁘기는 하다. 죽은 아이들도, 지금도 어디에선가 어른의 무관심 속에 가슴에 한을 키우고 있는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학교폭력 뉴스를 접하면 단발머리 중학생 시절이 떠올라 가슴에 불이 일어난다. 내 행동이 느리고 허술해 보이는 것을 구실 삼아 괴롭힌 아이, 내 약점을 가해 아이에게 일러바치며 은근히 즐기던 아이 몇 명……. 어른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은 악마들에게 에워싸여 있던 나로서는 불가능했다. 가해자도 비인간적인 교육제도 속에서 구조적으로는 피해자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피해 학생에게 가해자는 화해하고 싶은 친구이기는커녕 절대악에 가까운 존재라는 사실은 경시된다.
폭력은 이유를 불문하고 사회 전체가 개입해야 할 범죄다. 아내를 폭행하는 남편이 발생하는 순간 그것은 부부간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인 것과 같다. 학교 공간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교사 역량에 맡겨놓을 일이 아니다. 학교폭력 대처에서 중요한 것은 교사나 학교의 입장이 아니며, 유일한 진실은 피해 당사자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교조의 성명서에 죽은 제자에 대한 배려가 한마디라도 묻어나는가.
노동조합은 이익단체가 맞다. 직무여건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교원의 정치적 독립성을 추구하고 권력이나 자본에 대응하는 전교조의 행동을 지지할 수 있는 이유는, 전교조가 추구하는 교원의 권리 신장이 궁극적으로 사회 정의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순수한’ 이익단체인 교총과의 차이점이다. 그러나 전교조의 교원평가제 거부 움직임이나 학교폭력에 대한 태도에서 어떤 사회 정의를 캐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런 모습에서 전교조는 정규직의 이익만 보호하고 비정규직은 내팽개친다는 오명을 듣는 민주노총과 닮은 점이 많다. 초창기 수난 시대를 벗어나 조직이 안정되면서 일어나는 느슨함 때문일까.
* 본문은 3.8. 경남도민일보에 게재한 글을 손본 것임.

* 필자는 편집위원이며,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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